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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가족의 초상

  • 함정임│소설가·동아대 문예창작과 교수 etrelajiham@empal.com│

21세기 가족의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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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가족의 초상

‘고령화 가족’
천명관 지음/문학동네/292쪽/1만원

여기 한 가족이 있다. 집에는 주정뱅이 아비와 열네 살짜리 딸(‘나’)이 살고 있고, 엄마는 집에서 쫓겨나 근처 함바집에서 기거하고 있다. 화자인 딸이 전하는 아비라는 작자는 1년에 수백 건의 민원을 제기하는 민원제조공장이며 전문 고발꾼이다. 허구한 날 고발로 먹고사는, 한마디로 제 배 채우기 위해 남 괴롭히는 일을 일삼는 인간 말종이다.

어느 날, 집 나갔던 오빠가 택배회사 직원이 되어 뒤꽁무니에 어린 여자를 달고 집으로 쳐들어오듯 기세 등등 돌아온다. 아버지와 오빠의 일대 격전이 벌어지고, 어머니와 딸은 은근히 냉소의 눈으로 그들의 치열한 전투를 구경한다. 몇 년 전 열여섯 살의 오빠가 걸핏하면 패는 아버지를 참지 못하고 집을 나갈 때까지, 그리고 오빠가 집에 없는 몇 년 사이, 이 집은 아버지의 세상이었다. 그런데 애송이 소년에서 갓 스물의 혈기 방장한 사내가 되어 오빠가 돌아온 뒤, 이 집은 더 이상 아버지가 아닌 오빠, 곧 아들의 천하가 된다.

2000년대 소위 ‘콩가루 집안’의 진상을 소설로 신고한 김영하의 ‘오빠가 돌아왔다’(2004)의 도입부다.

오빠의 귀환, 고개 숙인 아버지

오빠가 돌아왔다. 옆에 못생긴 여자애 하나를 달고서였다. (중략) 아빠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둘을 바라보다가, 내 이 연놈들을 그냥, 하면서 방에서 야구방망이를 들고 뛰쳐나와 오빠에게 달려들었다. (중략) 오빠는 악, 소리를 지르며 무릎을 꺾었다. 못생긴 여자애도 머리를 감싸며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계속 당하고 있을 오빠가 아니었다. 아빠가 방망이를 다시 치켜드는 사이 오빠는 그레코로만형 레슬링 선수처럼 아빠의 허리를 태클해 중심을 무너뜨렸다. 그리고는 방망이를 빼앗아 사정없이 아빠를 내리쳤다. 아빠는 등짝과 엉덩이, 허벅지를 두들겨맞으며 엉금엉금 기어 간신히 자기 방으로 도망쳐 문을 잠갔다. 나쁜 자식, 지 아비를 패? 에라이, 호로자식아. -김영하, ‘오빠가 돌아왔다’,문학과지성사

비록 아비가 먼저 야구방망이를 들었을망정, 결과적으로 그 방망이로 아비를 팬 자식은 나쁜, 호로 자식이다. 그런데 이 자식이 집안을 콩가루로 만드는가 싶더니 옆구리에 끼고 온 못생긴 여자애와 콩닥콩닥 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어른 구실, 아비구실 못하는 아비의 자리를 대신한다. 여동생의 공부 뒷바라지를 약속하며 격려하지를 않나, 쫓겨난 어미가 슬그머니 들어올 빌미를 제공하지를 않나, 급기야 하나같이 마주 보기 민망한 가족들을 한데 묶어 소풍을 나가기까지 한다. 오빠는 산산이 조각난 가족을 ‘한 핏줄 식구’로 봉제하는 임무를 수행하며 ‘콩가루 집안 블루스’를 해피엔딩으로 끌고 간다.

서울로 돌아오던 길에 오빠가 어느 여고 앞에 차를 세웠다. 그러더니 우리 모두 차에서 내려 기념사진을 찍어야 한다고 했다. 어디에서? 오빠는 스티커 사진 부스를 가리켰다. 엄마는 얼굴이 큰 데도 맨 앞에서 찍어서 얼굴이 타이어만하게 나왔고 오빠와 여자애는 뒤에서 찍어서 쪼다처럼 나왔다. 나는 좀 예쁘게 나왔는데 여자애는 그게 조명발 덕이라고 구시렁거렸다. (중략) 그럼 아빠는? 아빠는 그때까지도 술이 안 깨 짐칸에서 내리지도 못했다. 아빠는 그대로 집까지 실려와 문짝이 부서진 자기 방에 부려졌다. -김영하, ‘오빠가 돌아왔다’에서

어딘가에 있을, 달리고 있는 아버지

여기 또 한 가족이 있다. 집에는 엄마와 딸, 단둘이 살고 있다. 아버지는? 없다. 아니 어딘가에 있다. 그는 딸이 엄마 배속에서 세상 밖으로 나오기 전날 집을 나가서는 돌아오지 않고 있다. 엄마가 딸에게 들려준 바에 따르면, 아비는 세상 어딘가에서 달리고 있다.

내겐 아버지를 상상할 때마다 항상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그것은 아버지가 어딘가를 향해 열심히 뜀박질하고 있는 모습이다. 아버지는 분홍색 야광 반바지에 여위고 털 많은 다리를 가지고 있다. (중략) 내 상상 속의 아버지는 십수년째 쉬지 않고 달리고 있는데, 그 표정과 자세는 늘 변함이 없다. (중략) 아버지는 뛰고 또 뛰었다. 상기된 얼굴로 장발을 휘날리며, 계단을 넘고, 어둠을 가르며 바람보다 빨리. (중략) 내겐 아버지가 없다. 하지만 여기 없다는 것뿐이다. 아버지는 계속 뛰고 계신다. -김애란, ‘달려라 , 아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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