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6월호

뮤지컬‘몬테크리스토’의 여인 옥주현

“무대는 연애상대 아닌 내 인생… 아름다운 소극장 무대 꿈꿔요”

  • 최영일│문화평론가 vicnet2013@gmail.com│

    입력2010-06-03 12: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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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뮤지컬‘몬테크리스토’의 여인 옥주현
    인터뷰 시간이 부족했다. 스타 옥주현은 몹시 분주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4월 말까지 뮤지컬 ‘시카고’로 전국순회 공연을 마쳤고, 서울에 올라와선 곧바로 새 작품 ‘몬테크리스토’로 다시 무대에 올라 열연 중이라고 했다. 이제는 신인 뮤지컬 배우라는 딱지를 떼고 무대 5년차가 됐고, 티켓파워를 지닌 몇 안 되는 스타급 뮤지컬 배우로 성장했다. 한 번 찍으면 몇 번이고 상영되는 영화나 TV 드라마와는 달리 매회 무대에 올라 공연해야 하는 뮤지컬 배우에겐 체력유지와 자기관리가 필수 요건이다.

    그런데 옥주현은 공연 외에도 CF 촬영, 그리고 가을부터 방영될 드라마 ‘더 뮤지컬’ 준비까지 동시에 진행 중이었으니 몸이 여러 개라도 감당하기 힘든 스케줄이 아닐 수 없다.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질문을 던질 생각에 마음이 바빴지만 인터뷰를 시작하고선 옥주현이 리드하는 여유로운 흐름에 모든 걸 맡겼다. 요정과 함께하는 마법의 시공간은 물리적 제약마저 뛰어넘었다.

    걸그룹에서 뮤지컬 무대로

    ▼ 요즘은 가히 걸그룹 전성시대라 할 만합니다. ‘소녀시대’‘원더걸스’‘애프터스쿨’‘티아라’‘2NE1’‘f(x)’ 등 끝없는 행렬이 이어지고 있는데요, 옥주현씨는 원조 국민요정 ‘핑클’의 멤버셨죠. 이효리씨는 아직까지 댄스가수로 활발히 활동 중이고, 성유리씨는 연기자로 활동하죠. 이진씨는 좀 뜸한 편이죠? 그런데 옥주현씨만 특이하게 뮤지컬 무대로 진출했고, 이제는 완전히 자리를 잡았습니다. 뮤지컬을 하게 된 동기가 따로 있나요?

    “공연을 좋아했어요. 어떤 공연이든, 음악 콘서트든 뮤지컬이든 연극이든 제 공연이 아니어도 공연을 볼 때, 또 보고 나올 때 행복감을 느끼죠. 지금도 그래요. 도전하고픈 마음이 늘 있었는데 감사하게도 기회가 주어졌던 거예요. 출신이 가수였으니 노래를 부르는 것도 좋아하고, 또 연기를 하는 것도 좋아요. 무엇보다 뮤지컬이 좋은 것은 혼자 잘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상대 배우, 출연진 전체, 연출과 음악, 다양한 스태프가 모여 함께 만들어가는 작품이라는 것이죠. 그래서 관객의 찬사를 받고 잘 마쳤을 때 이런 협력의 결과물에 더 큰 성취와 감동을 느끼게 되는 것 같아요.”



    ▼ 무대를 사랑하십니까? (이 짧은 질문에 옥주현은 잠시 입을 닫고 곰곰이 자신의 마음을 더듬었다. 갑작스러운 질문이었지만 당황하는 기색은 없었다.)

    “무대를 사랑한다고 섣불리 대답드릴 수는 없어요. 처음 무대에 설 때 용기와 노력이 필요했고, 지금도 노력 중이고, 앞으로도 노력해야 할 거예요. 열정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무대는 끊임없는 도전을 요구해요. 어느새 쌓여온 뮤지컬 배우로서의 지난 5년에 그저 감사할 뿐이죠. 하지만 아직도 갈 길은 멀다고 생각해요. 무대는 연애 상대라기보다는 제 인생과 같은 것 아닐까 싶어요.”

    ▼ 겸손하시네요. 뮤지컬 스타로 국내에서는 정점에 올라 있는데.

    “아니에요. 아시다시피 무대엔 NG나 ‘다시’, 또는 ‘재방송’이라는 것이 없잖아요. 한 회의 막이 지나가면 모든 게 끝나는 거죠. 가수로 음반을 내서 돈을 벌 수도 있겠지요. 요즘 같은 시대에 음반을 사주는 분들도 대단한 문화애호가이신 거고요. 하지만 뮤지컬 공연은 음반 값의 열 배를 내고, 거기에 더해서 세 시간 이상 시간을 내서 특정장소에 모여주시는 열의를 가진 분들을 위한 공간입니다. 전 그게 어떤 가치인지 잘 알아요. 1000개가 넘는 객석을 채운 분들 앞에서 실수하면 너무나 죄송한 일이잖아요. 관객이 알아채지 못해도, 크고 작은 실수가 많았는데도 인터넷에 잘했다고, 즐거웠다고 좋은 공연 평을 올려주신 관객들의 글을 보면 너무나 감사하고 또 남몰래 자책감을 느낄 때도 많아요.”

    국민요정에서 여인으로

    뮤지컬‘몬테크리스토’의 여인 옥주현
    ▼ 지금 하신 말씀은 제가 알아온 옥주현씨 이미지와 많이 다르네요. 항상 자신감 넘치고 늘 당당한 모습으로 보이거든요.

    “알아요. 그렇게 말씀하시는 의미를. 저 스스로 대중의 눈에 비친 저의 이미지가 어떤 것인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변 분들도 제가 무대 위에서 불안해한다고 말하면 놀라세요. 그런데 제가요, 의외로 여리고 상처를 잘 받는 성격이에요. 옥주현이 무대에서 긴장하고, 드레스 속에서 떨고 있다고 하면 다들 안 믿으시죠? 하지만 이런 모습도 분명한 제 모습입니다.”

    ▼ 뜻밖이네요. 알고 보면 원래 신중한 성격이셨던 건지, 아니면 30대로 접어들면서 성숙한 성격으로 변해가는 것인지 궁금하네요. 어느 쪽이세요?

    “아주 털털하고 적극적인 면에서 소심하고 여린 면까지 다 제 모습인 것 같아요. 성격의 범위가 좀 넓다는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경험이죠. 20대엔 정말 열심히 달렸어요. 막 달리다보니 넘어지는 일도 많았고 당연했죠. 넘어지고 우여곡절을 겪고, 시행착오가 많았던 것 같아요. 그땐 너무 솔직해서 당하기도 하고. 그런데 30대가 되니 쌓인 경험도 있고, 세상을 보는 새로운 시각도 생기고, 하여간 세상을 사는 지평이 좀 넓어졌다고 할까요?”

    ▼ 20대 청춘보다 30대가 된 지금이 더 행복하세요?

    “네. 분명히 그래요. 그때가 나빴다거나 싫다는 뜻이 아니라 모르던 세계가 더 있었구나 하는 느낌, 지금이 더 행복하고 앞으로 나이가 들어가면서 더 행복해질 것 같은 기대감이 커요. 솔직한 심정이에요.”

    ▼ 공인이 아닌 개인으로서 구체적으로 뭘 할 때가 제일 좋고 행복해요?

    “어린 나이일 때는 이런저런 이벤트에 막 좋아하고 행복했었어요. 그런데 이젠 일상의 소소한 분위기를 음미할 때 행복을 느껴요. 예를 들어 흐린 날 커피를 마신다든가. 전 흐린 날을 좋아해요. 커피향이 더 짙게 느껴지고, 피어오르는 막연한 그리움을 느껴볼 수 있죠. 또 좋은 날씨에는 산에 오르는 것도 좋아하고. 집에서는 이것저것 뭔가를 만들어요. 요리도 좋고, 바느질도 좋고. 엄마는 저를 보고 ‘너는 왜 가만히 있지 못하고 늘 꼼지락거리니?’라고 자주 핀잔을 주세요.(웃음)”

    ▼ 이제 행복한 30대를 시작한 옥주현씨가 20대 핑클 시절의 자신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그냥 최선을 다하라고요. 물론 저는 그때 최선을 다했던 것 같아 후회는 없어요. 또 순간을 즐기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시행착오를 겪게 되겠지만 피해가라고 하지는 않겠어요. 다 필요한 것일 테니, 그것들이 쌓이고 쌓여서 현재가 있는 것이죠. 우리가 인터뷰를 막 시작한 것 같은데 이미 시간은 이렇게 흘러가고 있잖아요? 과거의 아이돌이 지금의 아이돌에게 주는 말이라고 해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겪어야 할 일을 겪되 후회 없이 그때그때 최선을 다하는 것만이 정말 최선인 것 같아요.”

    ▼ 끝으로 묻겠습니다. 옥주현씨가 그리고 있는 미래비전은 무엇입니까?

    “감사하게도 지금까지는 어릴 때 제가 그리던 꿈들이 예정대로 잘 이루어져왔습니다. 말씀드렸던 대로 곡절이야 있었지만 차근차근 잘 온 것 같아요. 앞으로의 꿈이요? 제 가슴속에 담겨 있죠. 여러 가지가 있어요. 하지만 지금까지 제가 깨닫고 배운 것 중 하나가 소중한 것일수록 말을 아껴야 한다는 것이에요. 때가 될 때까지는 담아두고 있을래요. 때가 되면, 말하게 되겠지요. 아직은 기다림이 필요해요.”

    ▼ 언젠가 그 꿈을 꼭 듣고 싶은데요. 인터뷰를 다음에 한 번 더 해야겠는걸요.(웃음) 그럼 정말 끝으로 돌발질문 하나 할게요. 옥주현이 가장 싫어하는 것은 뭐죠?

    “인터뷰요.(좌중 폭소) 죄송해요.(웃음) 그런 게 아니라 제가 솔직하게 얘기하면 매체에 나갈 때는 늘 이상하게 다른 뉘앙스로 변질되더라고요. 요즘도 어떤 왜곡된 기사 때문에 속상해 있었어요. ‘신동아’는 믿어요. 잘 부탁드립니다.(웃음)”

    뮤지컬 ‘몬테크리스토’ 관람기

    봄바람이 싱그러웠던 5월4일. 어린이날을 하루 앞둔 이날도 옥주현은 뮤지컬 무대가 기다리고 있었기에 인터뷰 자리를 떠나야 했다. 우리는 그녀의 초대로 유니버설 아트센터 공연장으로 향했고, 뮤지컬 ‘몬테크리스토’를 관람했다. 이 작품은 알렉상드르 뒤마 원작으로 우리에게도 익숙한 작품인 ‘몬테크리스토 백작’을 뮤지컬로 각색한 것이었다. 그날은 주인공 에드몬드 단테스 역에 엄기준, 그의 필생의 연인 메르세데스 역에 옥주현이 등장했다.

    1막이 오르자 첫 장면부터 모습을 드러낸 에드몬드의 청초한 약혼녀 옥주현은 아름답게 빛났다. 섬세한 표정과 거침없는 가창력으로 무대와 관객을 압도했다. 이어진 2막에서도 옥주현은 에드몬드를 모함한 원수이자 악당에게 속아 결혼까지 하게 되고, 젊은 아들에게 희망을 걸고 불행하게 사는 귀부인으로 다시 등장한다. 이 작품 속에서 옥주현은 갓 스물의 앳되고 아름다운 처녀에서 청년이 된 아들을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중년의 어머니 역까지 폭넓은 나이 대를 소화했다.

    공연도 역동적이었고 드라마틱했지만 역시 관심대상은 옥주현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옥주현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관찰했다. 아니, 눈을 뗄 수 없었다. 그런데 저 무대 위의 여인은 몇 시간 전 만나 인터뷰했던 그녀가 아닌 듯 느껴졌다. 전혀 다른 여인이 무대를 지배하는 느낌을 받았다. 어떻게 저렇게 몰입할 수 있을까? 정말 대단한 집중력과 감정조절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가능할까. 오래전 읽었던 일본만화 ‘유리가면’이 연상됐다. 만화 속 주인공인 소녀 마야는 무대 밖 현실에서는 평범하고 덜렁거리는 아이지만 무대 위에 올라가면 전혀 다른 인물, 극중 배역과 하나가 되곤 했다. 그래서 관객을 극 속으로 끌어들이고야 마는 마력을 발휘하는 캐릭터였다. 옥주현이 꼭 그랬다.

    ‘몬테크리스토’는 브로드웨이 최고의 연출가로 꼽히는 로버트 요한슨이 연출을 맡았고, 국내에서도 베스트셀러 작품인 ‘지킬앤하이드’의 작곡가 프랭크 와일드혼이 참여한 작품이다. 특히 음악작업을 한 와일드혼은 옥주현의 노래를 듣고 감탄하여 그녀의 가창력과 성량을 염두에 두고 작곡을 했다고 전해진다. 1막 에드몬드와 메르세데스의 이중창으로 울려 퍼지는 타이틀 곡 ‘언제나 그대 곁에’를 노래하는 옥주현을 보노라니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이 전율마저 느껴졌다. 옥주현의 소속사인 아시아브릿지컨텐츠 공연사업팀장인 이혜숙씨는 “몬테크리스토를 더 한국적 정서에 맞도록 각색하는 작업을 꾸준히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옥주현이 살짝 밝힌 미래의 꿈 중에는 대형작품이 아닌 소극장 무대에 대한 애정도 포함되어 있었다. 관객을 끌어 모으는 티켓파워를 지닌 스타 옥주현이기에 소극장에 대한 지향이 더 어려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언젠가 꼭 ‘더 라스트 파이브 이어스(The last five years)’와 같은 아름다운 소극장 작품에 출연하고 싶다는 의지를 보였다. 우리나라에는 아직까지 잘 알려지지 않은 이 작품은 일리노이에서 초연되어 오프-브로드웨이로 진출한 단막 2인 뮤지컬이다. 브라운관 속 요정의 이미지를 벗고 무대 위로 뛰어올라 노래하고 있는 이 여인은 어쩌면 앞으로 관객과 더 가까운 거리에서 함께 호흡할 계획을 가다듬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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