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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에서 발견한 삶의 해답

  • 고승철│저널리스트 koyou33@empas.com│

법정에서 발견한 삶의 해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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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에서 발견한 삶의 해답

‘우는 사람과 함께 울라’
윤재윤 지음/ 좋은생각/ 352쪽/ 1만2000원

언론정보학과, 미디어학부, 언론홍보영상학부…. 과거 ‘신방과’라고 하면 통했던, 대학의 이런 과에서는 전공 필수과목으로 기사 작성법을 가르친다. 흔히 전·현직 언론인이 강사로 나선다. 필자도 여러 학교에서 이 과목을 가르쳤다.

수강생 대부분은 기사를 잘 쓰는 ‘술(術)’을 배우려 하지만 필자는 ‘도(道)’를 가르치려 한다. 다양한 유형의 인간이 살아가는 사회를 세심히 살핀 다음, 본 대로 들은 대로 간결 명료하게 정리하도록 연습시킨다. 학생들은 학교 구내 구두수선공 아저씨에게 다가가 인터뷰를 시도하거나 노숙자를 심층취재하기도 한다. 유명한 연예인을 인터뷰하는 데 성공하는 학생도 가끔 있다.

형사재판 르포르타주를 작성하는 것도 과제의 하나다. 대다수 학생은 생애 처음으로 법정에 가본다. 떨리는 가슴으로 법정에 들어선 학생들은 수의(囚衣)를 입은 피고인을 보고 충격을 받는다. 온실에서 자란 대학생의 눈에 ‘인생 막장’에 몰린 형사범은 어떤 인간으로 비칠까? 성범죄자는 비난의 대상으로, 생계형 좀도둑은 연민의 대상으로 투영된다. 여러 학생은 “법정에서 인생 공부를 하니 세상 보는 시야가 넓어졌다”고 털어놓는다.

수강생에게 읽어보라고 추천할 만한 ‘우는 사람과 함께 울라’란 책이 나와 눈이 번쩍 뜨였다. 법정에 가볼 일이 없는 분들이 읽어도 진한 감동을 얻을 수 있다. 책의 부제가 두 개인데, ‘눈물의 현장 법정에서 찾아낸 삶의 해답’과 ‘윤 판사가 보내는 치유와 희망의 메시지’가 그것이다. 사형 현장을 지켜본 경험 등에서 발견한 삶의 지혜가 담겨 있다. 실제 있었던 사건을 씨줄로, 저자의 다양한 독서 편력을 날줄로 엮어 흥미진진하면서도 깊이가 있다.

사랑의 결핍이 만든 범죄

저자는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로 법관 생활 30년차를 맞았다. 프로필을 보니 몇 가지 특이점이 보인다. 1985년 한국에서 처음으로 비행청소년과 시민을 연결해 보호하는 ‘소년자원보호자제도’를 만들었다. 청소년잡지인 ‘십대들의 쪽지’에 청소년의 고민을 상담하는 글을 썼다.

저자는 서문에서 “범죄, 재산 분쟁, 관계의 갈등 등 삶을 해치는 어두운 것들은 서로 연관이 없어 보이지만 근본적으로 하나의 공통된 원인을 가졌다”면서 “그것은 바로 사랑의 결핍과 거부, 즉 자기 속에 있는 연약한 어린이를 제대로 품어주지 않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라 설명했다.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하면 혼란이 생기는데 이 혼란이 자신을 향하면 정신장애가 되고 남을 향하면 난폭해지거나 범죄자가 된다는 것이다. 주변 사람과 자주 충돌하는 까다로운 사람도 사실은 필사적으로 사랑에 목말라 하는 외로운 사람이라는 것.

저자는 1980년 12월 사법연수원생 시절에 서울구치소에서 교수형을 참관했다. 사형수를 의자에 묶고 목에 올가미를 건 다음 그 의자를 지하실로 떨어뜨리는 집행 방식이다. 검사, 교도관, 신부, 의사 등이 참석한 가운데 강도살인범인 청년 사형수가 나타났다. 그는 살인을 했을까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온순하게 보였다.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피해자에게 사죄했다. 교도관이 그의 얼굴에 가리개를 씌우면서 “공포감을 줄이려면 ‘할렐루야’를 계속 외치라”고 했다. 그는 천주교 영세를 받은 신자였다. 그의 외침은 잠시 후 ‘덜컹!’하는 소리와 함께 사라졌다. 두 번째 사형수는 남편을 독살한 40대 여성이었다. 몸을 떨면서 울음 섞인 ‘할렐루야’를 외치다 지하실로 떨어졌다. 세 번째 사형수는 30대 중반의 강도살인범이었다. 신앙을 가지면서 매우 온화한 성품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남을 위해 헌신하는 행동도 보였다. 그는 평화로운 미소를 띠고 의연하게 죽음을 맞았다. 저자는 구치소를 나와 서울역까지 혼자 걸으며 죄와 벌, 법, 죽음, 믿음 등에 대한 상념에 잠겼고 인간은 진실로 존엄한 존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훗날 법관으로 숱한 흉악범에 대해 판결을 내렸지만 그들이 존엄하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다고 한다.

저자가 맡은 재판 가운데 몸이 왜소한 장애인인 A씨 살인 사건이 있었다. A씨는 음식점에서 10여 년 동안 숯불 피우기, 청소 등 허드렛일을 하면서 눈칫밥을 먹었다. 어느 날 주인이 밥도 주지 않고 야단을 치자 그날 밤 잠든 주인 부부를 칼로 찔러 살해했다. 오랜 세월 모욕을 받은 그가 마음에 상처를 받고 증오를 키운 결과였다. 저자는 이와 비슷한 사례들을 들면서 “모욕당하고 무시당한 이들에게 주위에서 조금만이라도 따뜻한 태도를 보여주었다면 그토록 끔직한 결과는 피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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