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9월호

영화 ‘인셉션’으로 본 일본과 할리우드의 조우

싸구려가 바다를 건너면 걸작이 되어 돌아오나니

  • 김봉석│대중문화평론가 lotusid@naver.com│

    입력2010-08-31 11: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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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자(莊子)가 나비의 꿈을 꾸는가 나비가 장자의 꿈을 꾸는가. 최근 개봉된 ‘인셉션’의 경우처럼 꿈과 현실의 그 아슬아슬한 경계를 묻는 영화들이 21세기 할리우드의 한 흐름으로 자리 잡은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1980년대 일본 대중문학과 애니메이션의 위력에 사로잡혔던 미국의 ‘오타쿠’들이 오늘날 미국 영화계의 대표적인 작가군(群)을 형성했기 때문. 흥미롭게도 무라카미 하루키로 대표되는 일본의 작가들은 거꾸로 1960~70년대 미국 대중문화의 지배 속에서 성장했다. 태평양을 오가며 이어져온 일본과 할리우드의 상호교배의 역사를 되짚는다.
    영화 ‘인셉션’으로 본 일본과 할리우드의 조우

    영화 ‘인셉션’의 한 장면. 상대의 가장 은밀한 비밀을 찾아내기 위해 들어간 꿈속의 꿈이다.

    지금 나의 의식을 그대로 가진 채 다른 세계로 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7월21일 개봉해 화제를 모으고 있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인셉션’은 타인의 꿈속에 들어가 기억을 빼내거나 심는 것이 가능해진 가까운 미래를 그린 SF영화다. 깊이 감추어둔 기억을 훔치기 위해서, 꿈속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누군가의 꿈속으로 들어가기도 한다. 꿈속의 꿈, 꿈에서 깨어나도 다시 꿈이라는 모호한 상황이 반복되면서 ‘인셉션’은 리얼리티에 대한 확신을 뒤틀어버린다.

    꿈과 현실, 가상현실과 현실의 경계를 지우는 영화가 할리우드에서 유행이 된 지는 이미 오래지만, ‘인셉션’을 본 관객 일부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를 연상하기도 했다. 지금 ‘1Q84’를 통해 일본과 한국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1985년에 발표한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는 주인공이 현실과 자신의 무의식이라는 두 개의 세계에 공존하며 병렬적으로 진행되는 기묘한 스토리를 가진 소설이다. 꿈을 통해 자신의 무의식 가장 아래에 있는 기이한 세계로 내려가는 ‘인셉션’의 주인공 코브의 여정은 분명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와도 흡사하다는 느낌을 준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이 미국에 꽤 많이 번역되긴 했어도, 크리스토퍼 놀란이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를 직접 읽었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 만약 소설을 읽었고 그 영향을 받았다 해도 굳이 감출 이유는 없다. 크리스토퍼 놀란은 ‘인셉션’에 영향을 끼친 영화로 ‘블레이드 러너’ ‘매트릭스’ ‘다크 시티’ ‘13층’ 같은 영화를 직접 언급했으니, 소설을 하나 둘 끼워 넣어도 이상할 건 없다. 하지만 ‘인셉션’과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의 유사성은 분명히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두 작품의 직접적인 연관성보다는, 1980년대 이후 일본 대중문화와 미국 할리우드의 상호교류, 혹은 상호교배에 근거를 두고 있다. 일본의 대중문화가 할리우드를 중심으로 하는 미국 대중문화에 스며든 일련의 흐름이 그것이다.

    ‘오타쿠’와 ‘아니메 팬’

    1999년 개봉한 워쇼스키 형제의 ‘매트릭스’는 단순한 흥행성공을 벗어나 전세계에 문화적인 충격을 안겨주었다. 세계 곳곳의 신화와 종교적 상징을 무차별적으로 차용하고, 일본과 홍콩 등 동양 대중문화를 직접적으로 인용하며, 테크놀로지에 대해 도발적인 주장을 펼치는 등 ‘매트릭스’에는 세기말에 어울리는 모든 것이 잡탕으로 섞여 들어가 있었다. 이후 ‘매트릭스’는 3부작으로 만들어지면서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고, 철학적인 상징과 은유가 가득한 스토리와 인물들을 분석한 철학책도 나왔다. 동시에 ‘매트릭스’는 쿠엔틴 타란티노의 ‘킬 빌’과 함께 일본 애니메이션과 홍콩 액션영화를 가장 직접적으로 활용한 영화로서도 각광받았다. 거칠게 ‘매트릭스’를 설명한다면 동서양 대중문화는 물론 철학과 종교까지 망라한 잡학사전 같은 영화라고 할 수 있다.



    ‘매트릭스’가 엄청난 성공을 거두면서, 워쇼스키 형제는 수많은 인터뷰를 통해 자신들의 영화적 원류를 드러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오타쿠’였다. 워쇼스키 형제는 자신들이 일본 만화와 애니메이션의 열광적인 팬, 즉 오타쿠라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오시이 마모루의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를 인상 깊게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매트릭스’를 보면서 기시감을 느꼈을 것이다. 워쇼스키 형제가 말하듯, ‘매트릭스’는 ‘공각기동대’에 대한 오마주로 가득하다. 가죽 옷을 입은 트리니티의 모습을 보면서 ‘공각기동대’의 주인공인 쿠사나기 소령을 떠올리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트리니티가 높은 건물에서 뛰어내리는 장면은 분명 ‘공각기동대’에서 본 것과 같았다. 워쇼스키 형제는 ‘매트릭스’의 세계관과 내용을 공유하고 더욱 많은 것을 보여주는 애니메이션 ‘애니매트릭스’에서는 일본의 애니메이션 감독들을 직접 초빙해 연출을 맡겼다. ‘무사 쥬베이’의 가와지리 요시야키, ‘카우보이 비밥’의 와타나베 신이치로, ‘청의 6호’의 마에다 마히로가 바로 그들이다.

    영화 ‘인셉션’으로 본 일본과 할리우드의 조우

    일본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서구에서 일본을 볼 때 흔히 ‘동과 서, 과거와 미래가 뒤섞여 있는 곳’이라고 말한다. 오토모 가쓰히로의 애니메이션 ‘아키라’는 핵전쟁으로 파괴된 이후 다시 건설된 새로운 도쿄가 배경이다. 그 도시의 암울한 풍경은 그러나 현재의 도쿄와 크게 다르지 않다. 거대한 고층 빌딩들 사이에서도 쉽게 신사나 절을 만날 수 있는 도쿄의 거리 풍경은 지극히 초현실주의적이다. 그 풍경은 ‘패트레이버’나 ‘별들의 속삭임’ 같은 SF 애니메이션에서 익숙하게 등장한다. 특히 오시이 마모루의 ‘패트레이버’는 도시 개발로 사라져가는 과거의 풍경을 극사실주의적으로 그려냈다.

    그렇게 모든 것이 뒤엉켜 있다는 일본 사회의 풍경을 가장 잘 드러내는 매체는 역시 애니메이션이고, 그중에서도 서구의 오타쿠가 가장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은 주로 SF와 판타지물이다. 앞서 말했듯 워쇼스키 형제는 자신들이 오타쿠라고 자랑스럽게 말한다. 일본에서 오타쿠란 단어를 쓸 때에는 약간의 경멸적인 뉘앙스가 담겨있지만, 서구의 오타쿠들은 스스로를 뿌듯해 한다. 서구의 오타쿠들은 일본 대중문화, 그중에서도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적극적으로 서구에 전파하는 선각자라고 생각하는 까닭이다.

    이처럼 일본 애니메이션이 미국에서 뿌리를 내리게 된 것은 결코 한순간의 일이 아니다. 일본 애니메이션이 처음으로 북미에 선을 보인 것은 1961년으로 ‘철완 아톰’이 ‘애스트로 보이’란 제목으로 TV에서 방영됐다. 이후 워쇼스키 형제가 실사로 만든 ‘스피드 레이서’(국내에 ‘달려라 번개호’로 방영했다)를 비롯해 수많은 애니메이션이 방영됐고, 1980년대 이후에는 ‘초시공요새 마크로스’와 ‘기동전사 건담’이 방영되면서 아이들만이 아니라 성인 오타쿠도 생겨나게 되었다. ‘애니메리카’라고 하는 일본 애니메이션 전문지가 생겨난 것도 1980년대의 일이다.

    이후에는 TV 애니메이션만이 아니라 극장용 애니메이션 ‘아키라’ ‘공각기동대’ 등이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할리우드 SF영화에 영향을 주었고, 미야자키 하야오는 이제 디즈니와 픽사의 애니메이터들도 가장 존경하는 감독이라고 공공연히 언급하는 인물이 되었다. 1980년대부터 열광적인 ‘아니메’ 팬이 생겨난 후, 이제는 그들이 할리우드의 주류에 진입해 일본색이 깔린 할리우드 영화를 만들어낸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돌고 도는 수레바퀴

    다시 ‘매트릭스’의 경우로 돌아가보면, 이 영화는 일본 대중문화가 확실하게 할리우드에 뿌리를 내린 하나의 상징처럼 보인다. 하지만 거기에는 복잡한 혈연관계가 있다. 크리스토퍼 놀란이 ‘인셉션’에 영향을 끼쳤다고 말하는 ‘블레이드 러너’ ‘매트릭스’ ‘다크 시티’가 어떤 영화인지 먼저 생각해보자. 이미 말한 것처럼 ‘매트릭스’는 일본 애니메이션 오타쿠인 감독이 만든 영화다. 알렉스 프로야스의 ‘다크 시티’는 외계인이 인간을 납치해 기억을 조작하고 그들이 원하는 가공의 세계를 만들어낸다는 이야기다. 그런 사실을 알게 된 주인공은 외계인과 싸워 자신만의 세계를 창조한다. 그런데 그가 싸우는 방법은 일종의 염력을 이용한 대결이다. 정신력으로 주변의 사물을 움직이거나 파괴하는 것. ‘다크 시티’에서 벌어지는 대결을 보고 있으면 영락없이 ‘아키라’나 ‘드래곤 볼’ 같은 일본 애니메이션이 떠오른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직접 언급하진 않았지만, 현실과 가상현실(혹은 꿈이나 무의식)의 관계를 다룬 영화들이 항상 인용하는 애니메이션이 바로 ‘공각기동대’다. ‘공각기동대’가 시작되면 이런 문구가 나온다. “가까운 미래-기업의 네트워크가 별들을 뒤덮고 전자들과 빛이 우주를 누비고 다닌다. 그러나 국가와 민족은 아직 정보화의 진보에 의해 완전히 소멸되지는 않았다.” ‘공각기동대’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전뇌공간(일종의 인터넷)과 사이보그다.

    정부기관의 요원인 쿠사나기는 몸의 대부분이 기계로 대체된 사이보그다. 그는 전뇌공간에서 암약하는 인형사란 해커를 쫓다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된다. 인간이란 대체 무엇인가. 육체인가, 정신인가. 인간을 인간이라고 말할 수 있는 절대적인 근거는 무엇인가. 오시이 마모루의 ‘공각기동대’는 ‘아키라’와 함께 서구의 애니메이션 오타쿠에게 커다란 충격을 안겨준 걸작이었다. 이후 할리우드에서 만들어지는 현실 vs 꿈, 무의식, 가상현실에 관한 이야기는 대부분 ‘공각기동대’에 빚지고 있다.

    그렇지만 과연 ‘공각기동대’는 순수하게 일본적인 사상이나 문화적 흐름에서 나온 것일까. 사실 애니메이션을 비롯한 1980년대 일본 대중문화계에는 거꾸로 미국 대중문화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작품이 많았다. ‘공각기동대’가 있었기에 ‘매트릭스’가 나왔다고 한다면, 마찬가지로 ‘블레이드 러너’가 있었기에 ‘공각기동대’ 역시 나올 수 있었다고 말해야 하는 것이다.

    ‘글래디에이터’를 만든 거장 리들리 스콧 감독의 1982년작 ‘블레이드 러너’는 21세기 초, 인간과 똑같이 만들어진 ‘리플리컨트’가 반란을 일으킨다는 이야기다. 리플리컨트를 추적하는 요원은 감정을 갖게 된 리플리컨트와 접촉하면서, 과연 인간과 리플리컨트의 차이가 무엇인지 고뇌하게 된다. ‘블레이드 러너’는 끊임없이 산성비가 내리는, 수직으로 뻗은 미래도시의 풍경을 빛과 어둠의 극단적인 조화로 표현한다. 현란하면서도 진하게 그림자가 드리운 풍경을 보고 있으면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미래를 보는 느낌이 든다.

    ‘블레이드 러너’의 설정 및 시각 디자인은 이후 1990년대에 새로운 조류가 된 사이버펑크와 ‘아키라’ ‘공각기동대’ 등의 일본 애니메이션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또한 ‘블레이드 러너’와 함께 1982년에 만들어진 ‘트론’은 막 화제의 중심이 되기 시작한 컴퓨터를 소재로 활용해 컴퓨터 내의 ‘전자세계’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SF 영화다. ‘트론’은 올해 리메이크작이 만들어진다.

    ‘블레이드 러너’와 ‘트론’ 같은 혁신적인 영화들이 등장하면서 서구에서는 사이버펑크라는 사조가 본격적으로 유행하게 된다. 펑크라는 개념에는 기존의 질서를 거부한다는 사상이 깔려 있다. 하지만 단지 맹목적인 거부가 아니라, 저항과 파괴를 통해 어떻게든 초월을 꿈꾸는 것이다. 현재의 인간이 지닌 한계를 초월하기 위해 어떤 방법이 가능할까. 1960년대 말에서 70년대의 히피 운동은 마리화나나 LSD 같은 각성물질을 통해 초월을 꿈꾸었다. 그렇다면 사이버펑크는, 과학의 힘을 통해 새로운 인식과 초월을 시도하려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사이버펑크는 각성물질에 ‘과학’을 도입한다. 즉 인간의 신체에 기계로 변형을 가해 육체의 한계를 뛰어넘으려 한다. 인조 팔이나 눈 등 신체기관을 대체해 600만불의 사나이처럼 초월적인 힘을 갖는 것. ‘공각기동대’의 쿠사나기처럼 인간의 뇌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완전히 기계의 몸을 갖게 되는 것. 그리고 네트워크, 현재의 인터넷 같은 전자공간을 통해 인식의 확장을 꾀하는 것이다. 즉 사이버펑크는 과학이라는 마법을 통해 인간이 가진 한계를 돌파하고 초인으로 태어난다는 개념을 갖고 있었다.

    사이버펑크는 1990년대 일본 애니메이션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서구에서 시작된 사이버펑크는 ‘트론’과 ‘블레이드 러너’ 등 그들의 경전이 될 만한 영화를 만들어냈고, 일본에서 ‘아키라’와 ‘공각기동대’ 등 애니메이션으로 확산됐다. 다시 서구로 공이 넘어가 탄생한 ‘매트릭스’는 이런 영화와 애니메이션의 완결판이라고 할 만한 영화였다. 자신의 정체성을 의심하고, 현실과 가상현실의 경계를 지워버리는 영화들의 최종본. 결국 ‘매트릭스’도, ‘인셉션’도 거슬러 올라가면 다시 미국 대중문화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전공투와 단카이 세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대중문화의 세례에서 자유로운 나라는 지구상에 하나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특히 패전 후 미국에 점령당했던 일본의 경우는 더욱 심했다. 일본을 점령한 미군 사령부는 일본 사회와 문화가 봉건적이고 미성숙했기에 군사주의에 탐닉했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봉건주의의 잔재가 강한 일본 고유의 문화를 금지하거나 검열했다. 충성스러운 사무라이나 자결 장면이 나오는 가부키를 금지하거나 일부 장면을 삭제한 경우가 대표적이다.

    반면 민주주의적 사상을 담고 있는 자유로운 미국 문화를 적극적으로 전파하기 시작했다. 힘에 대한 복종이 체득돼 있었던 일본인들은 점령군인 미국의 문화를 수월하게 받아들였고, 쉽게 내면화했다. 야구가 최고의 인기 스포츠가 된 것이나 서부극을 본뜬 무국적 액션 영화들이 대거 만들어진 것 역시 미국 대중문화의 영향이었다.

    영화 ‘인셉션’으로 본 일본과 할리우드의 조우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SF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

    이후 미국 문화는 일본 문화의 중심적인 가치가 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1960년대 후반 전세계적으로 반전운동이 일어나고 일본에서도 베트남 전쟁을 비난하는 등 좌파 학생운동이 강력하게 일어났다. 하지만 당시의 전공투 세대는 정치적으로는 좌익이었지만, 문화적으로는 재즈와 팝송,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졸업’ 등의 아메리칸 뉴 시네마에 매료돼 있었다. 그리고 만화와 핑크영화 등 다양한 대중문화를 왕성하게 소비했다.

    이들 전공투 세대는 이후 일본의 경제성장을 이끈 단카이 세대가 된다. 젊었을 때는 학생운동에 열중했다가, 1970년대에는 일본의 경제성장을 이끌며 ‘회사형 인간’이라고 불릴 정도로 일에 매진했던 세대. 그러면서도 이들은 문화적인 욕구가 강해, 일본에서는 잡지와 문고판 등의 판매와 미니시어터의 흥행이 모두 단카이 세대의 움직임에 크게 좌우되는 것으로 분석하곤 한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의 무라카미 하루키 역시 단카이 세대에 속한다. 그리고 하루키의 소설에서 우리가 쉽게 파악할 수 있는 것은 재즈와 팝송, 할리우드 영화와 펄프 픽션 등 미국 대중문화의 영향이다. 하루키는 스스로도 일본 문학에서 영향을 받은 것은 거의 없다고 말한다. 또한 하루키 이전 세대 작가들과는 달리 유럽 문학의 영향도 거의 없다. 하루키가 밝히는, 좋아하거나 영향을 받은 작가는 스콧 피츠제럴드, 레이먼드 챈들러, 트루먼 카포티, 커트 보네거트, 리처드 브로티건, 레이먼드 카버, 팀 오브라이언, 존 어빙, 스티븐 킹 등 미국 작가가 대부분이다. 그뿐만 아니라 하루키는 재즈와 팝송, 영화 등 서구의 대중문화에 거의 전문가적인 식견을 지니고 있다.

    일본에서는 하루키에 대해 유럽이 아니라 미국의 문화적 지평에 놓인 작가라고 평가한다. 어떻게 생각하면 ‘뉴욕타임스’가 하루키를 특히 총애하는 것도 그러한 특징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 대중문화의 세례를 받고 성장한, 그것을 일본식으로 변용시켜 새로운 문학을 창조해낸 작가라는 것이다. 소설에서 하루키라면 애니메이션에서는 역시 오시이 마모루와 오토모 가쓰히로다. 이들은 모두 전공투 세대이고 주로 1980년대부터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해 서구 대중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것으로 평가된다.

    단순 인용을 넘어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보자. 일본 경제가 미국을 점령한다는 ‘공포’가 횡행하던 1980년대에는 할리우드 영화 속 일본 혹은 일본인의 이미지가 그리 좋지 않았지만, 90년대 이후에는 동양의 대중문화에 대한 관심이 비상하게 높아졌다. 차이나타운에서 홍콩과 일본의 액션영화를 보던 이들은 비디오로 일본 애니메이션이 광범위하게 보급되면서 점점 거대한 마니아 집단을 형성했다. 아시아 영화의 적극적인 지지자로는 ‘플래툰’의 올리버 스톤, ‘킬 빌’의 쿠엔틴 타란티노, ‘매트릭스’의 워쇼스키 형제, ‘헬보이’의 기예르모 델 토로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들은 특히 홍콩 액션영화와 일본 애니메이션에 열광했다. 그것은 할리우드에서 가장 취약했던 분야 혹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액션영화가 있기는 했지만, 홍콩 누아르나 무협영화와는 전혀 달랐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이 있었지만, 성인 대상의 SF와 판타지 애니메이션은 거의 없었다. 그래서 할리우드는 홍콩 액션영화와 일본 애니메이션의 자양분을 광범위하게 흡수했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킬 빌’ 1편에는 오시이 마모루의 I.G.프로덕션에서 만든 애니메이션이 삽입돼 있고, 수많은 일본 영화의 장면들이 모자이크돼 있다. 쿠엔틴 타란티노는 ‘킬 빌’을 찍기 전에 1년 반 정도는 쇼 브라더스 영화, 일본 애니메이션, 사무라이, 야쿠자 영화 같은 것들만 봤다고 말했다. 그것도 구로사와 아키라 같은 거장의 작품이 아니라 ‘자토이치’나 후카사쿠 긴지의 야쿠자 영화 같은 대중영화를 말이다. 토호영화사에서 만든 ‘고지라’ 같은 괴수 영화의 영향을 받았고, 실제로 토호의 고지라 세트를 빌려서 찍었다. 지금 일본의 대중영화들, 폭력적이며 와일드한 이시이 다카시나 이시이 소고의 영화에서도 영향을 받았다. 쿠엔틴 타란티노는 직접적으로 일본의 애니메이션과 영화를 인용하는 스타일이다.

    굳이 직접 인용하지 않더라도 일본 대중문화의 흔적은 할리우드 영화 곳곳에서 배어난다. 비가 출연한 ‘닌자 어쌔신’은 워쇼스키 형제가 제작한 일본풍 액션영화다. ‘링’의 리메이크를 시작으로 할리우드에서는 일본풍의 공포영화가 대거 제작되었다. 그리고 이병헌이 닌자 역으로 출연한 ‘지아이 조’, 본격적으로 ‘사무라이’를 숭배하는 톰 크루즈 주연의 ‘라스트 사무라이’, 사이버펑크풍의 ‘다크 시티’ 등 일본을 느낄 수 있는 영화들은 지속적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심지어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같은 예술영화에서도 일본 대중문화의 흔적이 배어있다. 일본 문화를 소비하고 즐기는 일이 마니아 취향이었던 시대를 지나, 일본의 영향을 받은 대중문화 상품이 세계 곳곳에서 선보이는 시대가 바로 21세기다. 일본 문화를 인용하는 것을 넘어 그들만의 방법으로 일본 문화를 변형시킨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어내고 있는 셈이다.

    가늠할 수 없는 힘

    ‘일본 문화는 쿨하다’는 인식은 미국뿐 아니라 유럽에서도 점차 확산되는 추세다. 이는 결코 어제오늘 시작된 일이 아니다. 일본은 패전의 열패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목적의식적으로 세계영화제에 일본 영화를 소개했다. 중국요리가 손쉽게 먹을 수 있는 간편한 요리로 자리 잡자 일본의 스시는 건강음식, 고급음식으로 자신을 포장했다. 소니가 세계를 제패한 것은 누구나 몸에 소지하고 다니는 오디오 ‘워크맨’을 통해서였다. 아주 오랜 시간, 서서히 체계적으로 일본은 자신의 대중문화를 세계화하기 위해 노력해온 것이다. 그리고 이제 일본은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중심으로 세계의 대중문화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전세계 문화상품의 대표격이라 할 할리우드 영화가 그런 일본 대중문화의 매력적인 요소들을 끌어들여 새로운 작품으로 변신하는 일이 지극히 자연스러워졌다.

    미국의 대중문화가 일본적으로 변용되었다가 다시 미국으로 흘러들어가는 이면을 보고 있노라면, 뛰어난 문화를 만들어내는 기본조건이 무엇인지 상기하지 않을 수 없다. 막힘없는 교류, 어떠한 제약이나 한계도 없는 자유로운 창작환경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조건이라는 것이다. 아무리 싸구려라 해도, 아무리 소수의 것이라 해도, 그것이 바다를 건너고 타인의 손에 넘어가면 새로운 문화, 예술적인 상품으로 재창조된다. 그것이 함부로 가늠할 수 없는 대중문화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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