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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으로 떠나는 파리 여행

  • 함정임│소설가·동아대 문예창작과 교수 etrelajiham@empal.com│

환상으로 떠나는 파리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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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으로 떠나는 파리 여행

‘세계의 환상 소설’
이탈로 칼비노 역음, 이현경 옮김, 민음사, 664쪽, 2만원

파리 동쪽 페르-라셰즈 공동묘지에 가면, 발자크에서 짐 모리슨까지 세계 예술사에 빛나는 문인과 예술가들을 만날 수 있다. 여기 말고 파리에는 두 곳의 대형 묘지가 도심에 자리 잡고 있다. 센 강 남쪽 몽파르나스 지역 한복판에 푸른 공원처럼 펼쳐져 있는 몽파르나스 공동묘지에는 사르트르와 보들레르, 모파상 등이 묻혀 있고, 센 강 북쪽 몽마르트르 언덕 서쪽 경사면의 몽마르트르 공동묘지에는 스탕달을 비롯해 음악가 베를리오즈, 영화감독 프랑수아 트뤼포, 그리고 독일 시인 하이네 등이 묻혀 있다. 파리에 가면 몽파르나스 묘지에 산책 삼아 가서 사르트르와 보부아르, 모파상의 묘지 앞 벤치에 앉아 있다 오곤 했다. 그런데 지난 7월 파리행 비행기를 탈 때부터 페르-라셰즈 묘지를 생각했고, 열흘 넘게 ‘적과 흑’의 무대들을 돌아보고 파리로 돌아온 다음날 오후 지하철 2번 선을 탔다.

여행의 시작, 파리의 묘지들

페르-라셰즈 역에서 내려 묘원으로 들어가 짐 모리슨과 에디트 피아프의 묘지를 둘러본 뒤, 그 즈음 프랑스 전역을 강타하고 있던 미국 영화 ‘인셉션’의 배경음악으로 되풀이되어 흘러나오던 피아프의 ‘아니, 난 후회하지 않아’를 흥얼거리며 언덕길을 걸어 내려갔다. 두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19세기 총체소설 ‘인간 희극’의 작가 오노레 드 발자크와 역시 19세기 신비로운 시와 소설을 쓴 낭만주의 시인 제라르 드 네르발. 둘은 길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었다. 역사가를 자처하며 19세기 유럽의 풍속사를 소설로 기록하고자 했던 야심가 발자크는 장편 ‘잃어버린 환상’에서 뤼시앙이라는 기자와 루스토라는 비평가를 등장시켜 꿈과 현실 사이에 놓인 괴리와 절망을 ‘환상’의 상실로 포착해 그려내면서 100편에 가까운 단편과 중편, 장편으로 구성된 ‘인간 희극’의 대미를 장식한다. 이때, 발자크가 제목으로 삼은 ‘환상’이라는 용어는 다양한 차원에서 새삼 주목을 요한다.

소설을 지칭하는 용어는 그것에 대한 오랜 전통을 가진 나라마다 조금씩 다르다. 픽션(fiction), 또는 로망(roman), 또는 노블(novel)이 그것이다. 허구라는 의미의 픽션은 환상의 동의어로 통한다. 이때의 환상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거나(비현실), 현실을 넘어선 어떤 것(초현실)을 뜻하는 판타지(fantasy)가 아니다. 환영(幻影) 또는 헛것을 의미하는 환상(illusion)이다. 환상이 낳은 병이라는 ‘보바리즘’의 출처인 플로베르의 장편소설 ‘마담 보바리’의 여주인공 엠마 보바리에서 알리바이를 찾을 수 있다. 소녀시절 삼류 소설에서 읽은 파리 상류 귀부인들의 삶을 좇느라 욕망의 노예가 되어 파멸해간 가련한 여자의 삶이 소설의 내용이다. 위에서 이탈로 칼비노가 말하는 ‘환상’은 엠마가 사로잡힌 그것과 종류가 다르다. 이탈로 칼비노가 ‘세계의 환상 소설’로 독자에게 소개하는 것은 모든 소설의 속성 중 하나인 환상이 아닌, 소설 세계를 이루는 다양한 층위 중 ‘하나의 장르로서의 환상’을 가리킨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이탈로 칼비노는 남미의 마르케스 보르헤스와 더불어 세계 환상 소설의 3대 대가로 불린다. ‘세계의 환상 소설’은 이미 ‘보이지 않는 도시들’ ‘나무 위의 남작’ 등 이탈리아 특유의 환상 소설을 출간해 세계적으로 독자를 확보하고 있는 그가 19세기부터 20세기 초에 이르는 소설에서 특유의 분류법으로 환상 소설을 선별해 묶어낸 것이다. 나는 그의 섬세하고도 예리한 안내를 따라가다가 살짝 샛길로 빠져 파리를 무대로 펼쳐지는 세 편의 소설과 또 다른 환상의 세계에 빠졌다. 제라르 드 네르발의 ‘마법에 걸린 손’과 오귀스트 드 비예르 드 릴라당의 ‘진실보다 더 진실한’, 그리고 기 드 모파상의 ‘밤’이 그것이다. 이탈로 칼비노는 환상 소설을 두 가지로 분류한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곧 ‘시각적인 환상’과 ‘일상적인 환상’. 그에 따르면, 네르발의 ‘마법에 걸린 손’은 전자에, 릴라당의 ‘진실보다 더 진실한’과 모파상의 ‘밤’은 후자에 해당된다. 파리를 무대로 삼았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이들이 실어 나르는 서사의 내용과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우선, 네르발이 창조한 환상의 첫 장면과 중간의 일단을 보면,

1. 도핀 광장

내가 보기에 루아얄 광장에 그렇게 웅장하게 무리 지은 17세기 건물들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이 세상에 없는 것 같다. 돌림띠와 귓돌로 중간 중간 테를 두른 벽돌 건물의 정면을 바라보거나, 해 질 무렵 눈부신 햇빛으로 붉게 물든 높디높은 창문들을 볼 때면, 흰 담비 털이 달린 붉은 법복을 입은 판사들이 앉아 있는 법정에 서 있을 때와 똑같은 경외심을 느끼게 될 것이다. (중략)

4. 퐁 네프

앙리 4세 때 지은 퐁 네프는 그의 치세 기간 중 가장 중요한 기념비가 되었다. 어마어마한 공사가 끝나고 열두 아치가 있는 다리가 센 강을 가로질러 수도의 세 구역을 더욱 긴밀하게 연결하자 사람들은 어느 때보다 흥분했고 한없이 기뻐했다. 다리는 곧 할 일 없는 수많은 파리 시민이 만나는 장소가 되었고 그 결과 마술사, 연고 장수, 소매치기들이 모이는 곳이 되었다. 이런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강물에 물레방아가 돌 듯 군중을 따라 움직인다. -제라르 드 네르발, ‘마법에 걸린 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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