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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우, 절집 숲에서 놀다 ⑪

선운사 단풍 숲

비울수록 크게 채워주는 감홍난자(紅爛紫)의 선계(仙界)

  • 전영우│국민대 산림자원학과 교수│

선운사 단풍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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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색동 단풍 숲, 동백나무 숲, 장사송, 송악…. 천연기념물을 포함한 아름다운 자연유산을 선운사만큼 많이 거느린 절집도 없다. 절 초입부터 펼쳐지는 황홀경을 누군가는 인간 세상에서 하늘로 가는 길에 비유했고, 또 누군가는 이를 신성함과 아름다움, 세속성으로 버무려 맛깔난 시어(詩語)로 뽑아냈다.
선운사 단풍 숲

천왕문 안쪽 담장에서 바라본 도솔천 쪽의 색동 숲.

색동 단풍 숲을 걷는 이들의 얼굴엔 미소가 가득했다. 선운사 일주문에서 천왕문에 이르는 짧은 숲길은 절집을 찾는 누구에게나 가슴 가득 뭉클한 감동을 안겨줄 만큼 아름다웠다. 어느 화가인들, 또 어느 사진작가인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이런 풍광을 제대로 담아낼 수 있으랴.

자연이 자아내는 순간의 감동을 경험하고자 많은 사람이 선운사를 찾았고, 그 현장에 함께할 수 있음에 나는 행복했다. 이런 아름다운 풍광을 만나면 누구나 그 감동의 순간을 몇 마디 수다스러운 언설로 그냥 흘려보내면 안 된다는 것을 안다. 그것도 본능적으로 안다. 그 덕분인지 몰라도 색동 숲을 걷는 이들의 얼굴에는 온화하고 환한 빛이 가득했다. 참배객도, 등산객도, 사진작가도 색동 단풍 숲을 걷는 순간만은 모두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어느 얼굴에서도 경직된 표정을 찾을 수 없다. 모두 입 꼬리가 귀에 걸린 형상이다.

색동 단풍 숲은 선운사 일주문에서 천왕문에 이르는 도솔천변에 조성된 단풍나무 숲을 말한다. 도솔천변의 아기단풍 숲은 언제 어떤 이유로 조성됐는지 분명하지 않다. 몇 백 년 묵은 굵은 단풍나무가 있는가 하면, 비교적 어린 단풍나무들도 함께 자라고 있기 때문이다. 그밖에 버드나무나 다른 종류의 활엽수도 가끔 눈에 띄지만 주종은 단풍나무다. 종무소의 설명에 따르면 오늘날과 같은 모습의 도솔천 제방이 생긴 것은 1970년대 새마을운동을 통해서라고 한다. 따라서 우리가 보는 도솔천 주변의 노거수 단풍나무들은 제방이 만들어지기 전, 천변(川邊)을 따라 자연스럽게 형성된 띠 숲에서 유래한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나이가 비교적 어린 아기단풍나무들은 제방 유실을 방지하고자 제방 축조 때 함께 심은 나무나 그 후 저절로 난 나무로 추정할 수 있다.

선운사를 찾은 순례자들은 색동 단풍 숲에 감동하지만, 개개인이 느끼는 감동의 깊이와 폭은 제각각 다를 수밖에 없다. 일상의 욕심과 습관과 생각을 한순간도 놓지 못하는 이들은 숲이 눈앞에서 사라지면, 순간적으로 찾아든 그 감동도 곧 잊고 만다.

비워야 채워지는 진리

최근에 빈번하게 절집 숲을 찾아 나선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느 절집 숲의 풍광은 세월이 흐른 지금도 가슴에 진한 감동으로 남아 있는가 하면, 어느 절집 숲의 감동은 희미한 기억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기억의 강약은 절집을 찾던 당시의 내 마음 상태를 미루어볼 수 있는 바로미터라 할 수 있다. 많이 비워낸 뒤 찾은 절집 숲에서는 많이 채워 넣을 수 있었고, 복잡한 일상을 그대로 마음에 쟁여둔 채 찾은 절집 숲에선 불러내기 어려울 지경으로 당시의 기억은 스러져버리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늦게나마 깨달은 사실은 절집을 찾는 시간만이라도 마음속 깊은 곳에 똬리를 틀고 있던 탐욕도, 성냄도, 어리석음조차 놓아버리면 그에 반비례해서 감성의 그릇은 그만큼 더 커지고, 채워 넣을 감동도 더 커진다는 것이다. 비워야 채워 넣을 수 있다는 그 평범한 진리는 자연을 담는 마음의 그릇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셈이다.

세상사라는 것은 살벌한 생존경쟁의 현장이고, 그로 인해 우리는 수시로 마음에 상처를 입는다. 하버드 대학의 에드워드 윌슨 교수는 상처 받은 영혼을 치유하거나 극복하는 데는 자연의 아름다움도 한몫을 한다면서 이를 ‘바이오필리아(Biophilia·자연사랑) 이론’으로 설명한다. 바이오필리아 이론은 ‘참된 인간성은 건강한 자연과 함께할 때 구현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에 절집 숲이 문명병에 찌든 우리를 살리는 묘약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이유도 다르지 않다. 우리가 마음속 깊은 곳에 자연이 주는 감동을 오랫동안 쌓아두고자 함도 그 감동을 필요할 때마다 끄집어내 상처받은 영혼을 치유하고, 마음의 풍요를 간직하고자 원하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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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우│국민대 산림자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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