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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의 이면, 익명의 양면

  • 함정임│소설가·동아대 문예창작과 교수 etrelajiham@empal.com│

얼굴의 이면, 익명의 양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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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의 이면, 익명의 양면

‘다른 사람으로 오해받는 남자’
조엘 에글로프 지음, 이재룡 옮김, 현대문학, 216쪽, 1만1000원

파리 북부 몽마르트르 언덕에는 에펠탑과 함께 파리를 상징하는 백색 돔의 사크레쾨르(聖心) 성당이 있고, 성당을 중심으로 수많은 길이 거미줄 형상으로 얼기설기 나 있다. 파리의 길은 규모에 따라 아브뉴(avenue·大路), 또는 불바르(boulvard·大路)로 표기하고 보통의 길 또는 거리를 뤼(rue)로 표기한다. 언덕 아래 콩코르드 광장으로부터 시작되는 샹젤리제 대로나 센 강 좌안 지역을 관통하는 생제르맹 대로와는 달리 몽마르트르에는 언덕 아래 피갈 대로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뤼보다도 작은 통로(passage)급의 좁은 골목이 산재해 있다.

벽으로 드나드는 남자

몽마르트르의 ‘풍차 방앗간(물랭루주)’을 아름답게 그린 르누아르를 비롯해 반 고흐, 피카소, 툴루즈 로트레크, 모딜리아니, 달리 등 예술의 수도 파리에 모여든 수많은 화가가 이 길들을 화폭에 담았다면, 마르셀 에메(1902~67)는 소설 ‘벽으로 드나드는 남자’에 몇몇 거리를 생생하게 호명해낸다. 20세기 초 전쟁 상황에서 사르트르와 카뮈가 실존의 문제를 소설 속에서 심각하게 문제 삼고 있을 때, 마르셀 에메는 초월 또는 환상이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 문제를 건드린다. 소설의 주인공은 되퇴유욀. 그는 등기청 하급 직원으로 삶에 어떤 변화나 모험을 원하지 않는 평범하기 짝이 없는 인물이다. 어느 날 그는 병원에 갔다가 의사로부터 자신에게 벽으로 드나드는 초능력이 있음을 전해 듣는다.

평범하게 살기를 원하는 그는 그 특이한 능력을 사용하기는커녕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가 자신을 괴롭히는 상사를 골탕 먹이기 위해 그 특별한 능력을 사용하기 시작한다. 상사 골탕 먹이만큼 재미있는 것이 또 있겠는가? 골탕 먹이기에 맛 들인 그는 마침내 파리의 대도(大盜)가 되어 은행을 터는가 하면, 감옥 안팎을 자유롭게 드나들면서 세인의 관심을 한몸에 얻는다. 그러나 원래 아무 변화 없이 평범하게 사는 것을 원했던 그인지라 그 대단한 놀이도 심드렁해져서 몽마르트르 언덕의 이 길 저 길을 배회한다. 그때 언덕을 힘없이 걸어가던 한 아름다운 여인을 발견하고 첫눈에 사랑에 빠져 그 신묘한 능력을 다시 사용하기 시작한다. 그녀와의 사랑을 위해 과도하게 드나든 나머지 결국 그는 벽을 통과하는 중에 그만 기운이 떨어져 벽과 한몸이 되어버린다.

파리의 소음이 잦아드는 야심한 시각에 노르뱅 거리를 내려가는 사람들은 무덤 저편에서 들려오는 듯한 희미한 소리를 듣게 되는데, 그들은 그것을 몽마르트르 언덕의 사거리를 스치는 바람의 탄식으로 여기지만, 사실 그것은 ‘늑대인간’ 되퇴유욀이 찬란한 행로의 종말과 너무도 짧게 끝나버린 사랑을 한탄하는 소리이다. - 마르셀 에메, ‘벽으로 드나드는 남자’

몽마르트르 노르뱅 거리에 가면, 벽과 한몸이 되어버린 ‘벽으로 드나드는 남자’가 재현되어 있다. 이 벽이 위치한 광장은 아예 마르셀 에메 광장으로 명명되어 있다. 언덕에 무슨 광장인가 의아할 수도 있지만, 파리나 로마, 프라하 등 유럽의 유서 깊은 도시들에서는 길과 길이 만나고 갈라지는 지점은 모두 광장(place)이 된다. 카프카 생가 거리에는 카프카 광장이, 발자크가 태어났거나 살았던 거리에는 발자크 광장이, 루소가 산책했던 거리에는 루소 광장이 있는 셈이다.

삶과 죽음 사이에 놓인 아이러니

2년 전 겨울, 몽마르트르에 살고 있는 문우를 만나 노르뱅 거리의 마르셀 에메 광장을 찾아갔다. 이 친구는 신장 190㎝가 넘는 거구에 되퇴유욀처럼 어수룩한 표정으로 몽마르트르의 비탈진 골목길들을 느릿느릿 산책하기를 좋아하는 40대 초반의 남자다. 최근 ‘다른 사람으로 오해받는 남자’라는 평범한 듯 흥미로운 소설을 한국어 번역으로 선보인 프랑스의 주목받는 작가 조엘 에글로프가 바로 그다.

그를 처음 만난 것은 2006년 제1회 서울 젊은 작가 축제에서였다. 프랑스 남성의 평균 키를 훌쩍 넘긴 큰 키에 건장한 풍채, 이목구비가 뚜렷한 외모였으나 그는 내면의 심성으로부터 비롯되는 매우 순박한 표정을 짓고 있어서 전세계에서 모인 20여 명의 젊은 남녀 작가 중에 가장 푸근하고 선량한 작가로 각인되었다. 그때 이미 그는 한국 독자에게 ‘장의사 강그리옹’과 ‘해를 본 사람들’이라는 두 권의 소설을 선보이고 있었는데, 축제 중에 열린 심포지엄과 인터뷰를 통해 드러난 그의 이력이 세인의 눈길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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