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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루, 소설의 다른 이름

  • 함정임│소설가·동아대 문예창작과 교수 etrelajiham@empal.com│

페루, 소설의 다른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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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루, 소설의 다른 이름

‘새엄마 찬양’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지음, 송병선 옮김, 문학동네, 246쪽, 1만1000원

독자에게, 아니 여행자에게 ‘페루’라는 이름은 특별한 여운을 준다. 특별함이란 ‘페루’가 남반구, 라틴아메리카의 남태평양 연안에 위치한 국가의 이름으로 다가오기 이전, 프랑스 작가가 쓴 한 편의 단편 소설에 의해 형성되고 전파되는바,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의 세계가 그것이다. 이때의 ‘페루’는 언젠가는 꼭 가보고 싶은, 아니 가고야 말 ‘미지’의 영역이고, 그곳에는 레니에라는 실패한 혁명가가 쓸쓸한 바닷가 해벽(海壁)에 카페를 차리고 ‘고독’의 아홉 번째 ‘물결’과 마주하고 있다.

1년 강수량 50㎜ 이하의, 안개도 아니고 스모그도 아닌, 건기(乾期)의 뿌연 기류 속에 세상 끝에 도달한 레니에라는 사내를 세워놓은 작가 로맹 가리는 ‘자기 앞의 생(生)’을 쓴 ‘에밀 아자르’와 동일인이다.

‘죽는다’와 ‘죽다’의 차이

전직 외교관 출신의, 두 개의 이름으로 프랑스 최고 권위의 문학상인 공쿠르 상을 두 번이나 탄 작가, 로맹 가리(하늘의 뿌리, 1945) 또는 에밀 아자르(자기 앞의 生·1975).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의 원제(Les oiseaux vont mourir au Perou)는 번역자에 따라 전하는 뉘앙스가 다르다. 널리 읽혔던 김화영의 번역으로는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는다’(현대문학사)이고, 새롭게 재출간된 김남주 번역으로는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문학동네)이다. ‘죽는다’와 ‘죽다’의 차이란 무엇일까. 직역을 하자면, ‘새들은 페루에 죽으러 간다’. 새들이 죽을 목적으로 간다, 페루에? 제목이 주는 묘한 호기심으로 소설을 읽게 되는 경우라고 할까? 아무튼 나는 로맹 가리, 그러니까 에밀 아자르의 두 번째 공쿠르 상 수상작 ‘자기 앞의 생’이 매혹적인 제목으로 나를 그의 소설 세계로 끌어들인 것처럼, 새와 페루 그리고 죽음이 일으키는 공명(共鳴)으로 오랫동안 손 가까이, 눈 닿는 곳에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를 놓아두었다.

로맹 가리라는 프랑스 작가는 어떻게 페루라는 공간을 소설 속에 끌어왔을까. 그가 이 작품을 쓴 것은 프랑스의 총영사이자 유럽대사로 전세계를 돌았던 그가 외교관직을 그만둔 1961년 이후다. 늘 눈 닿는 곳에 소설이, 정확히는 소설의 제목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가 있었지만, 정작 이 작품의 분위기와 항상 서랍 속에 권총을 넣고 사는, 세상의 끝에 서 있는 실패한 혁명가 레니에라는 사내의 허무의 심연을 어렴풋이나마 감지할 수 있었던 것은 3년 전 여름 페루라는 나라를 열흘 가까이 돌아본 뒤였다. 지상화 유적지 나스카 라인의 나라 페루, 잉카인들의 수도 쿠스코와 사라진 공중 도시 마추픽추의 나라 페루, 영토의 일부가 아마존 정글인 나라 페루… 새들이 죽으러 간다는 페루… 그리고 ‘리고베르트 씨의 비밀 노트’의 작가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페루….

리마에 대한 야릇한 흥미

사실, 페루로 떠나기 전 나는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소설 두 권을 만나면서, 로맹 가리의 레니에가 은둔해 사는 페루, 리마가 아닌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리고베르토씨가 낮에는 보험업자로, 밤에는 성도착자로 사는 페루, 리마에 대해 야릇한 흥미를 느끼고 있었다. 페루 아르키파 출생의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소설 세계란 같은 남미 출신의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콜롬비아)나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아르헨티나)의 그것과는 사뭇 다른 양상으로 펼쳐졌기 때문이다. 19세기 브라질의 어느 광적인 종교 집단과 정부 측 공화주의자들 사이의 전쟁을 다루고 있는 ‘세상 종말 전쟁’의 스케일과 오스트리아 출신의 표현주의 화가 에곤 실레의 그림을 배면으로 아버지(리고베르토)와 아버지의 새 아내(루크레시아)와 아버지의 아들(폰치토) 간에 기묘한 삼각관계를 펼쳐 보이는 ‘리고베르토 씨의 비밀 노트’의 불온한 현란함은 일찍이 세계 소설사상 ‘매직 리얼리즘’(마르케스)과 ‘환상’(보르헤스)의 ‘새로운 장’을 구축한 남미의 작가들과는 또 다른 독보적인 경지를 보여준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루크레시아 부인은 문을 열러 갔다. 문틈으로 보이는 루크레시아 부인은 산 이시도르 올리바르 공원의 허옇게 말라비틀어진 나무들을 배경으로 서 있는 초상화 속 인물 같았다. 폰치토의 노란색 고수머리와 푸른 눈이 보였다. 순간 눈앞이 아찔했다.

“깜짝 놀랐지 새엄마.” 너무나 귀에 익은 목소리였다. “날 아직도 못마땅하게 생각해? 용서를 구하러 왔어. 용서해주겠지?”

“너냐, 너?” 루크레시아 부인은 문손잡이를 붙잡고 벽에 몸을 기대었다. “감히, 이곳에 나타나다니, 부끄러운 줄도 모르니?”

“학교는 땡땡이 쳤어.” 소년은 스케치북과 색연필통을 보여주며 떼를 썼다. “많이 보고 싶었어, 정말이야…”

-‘리고베르토 씨의 비밀 노트’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김현철 옮김, 새물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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