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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이라는 관성의 힘

  • 이기진│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추억이라는 관성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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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한 해 두 개의 뜻 깊은 행사에 참가했다. 두 행사를 통해 오래되지 않은 나의 과거를 만났다.

#. 미장센 1

1989년 겨울. 난 코카서스 산자락 아르메니아공화국의 전파연구소에서 근무했다. 아직 소비에트 연방의 틀 속에 있던 시절이었다. 한술 더 떠 당시 아르메니아공화국은 이웃나라 아제르바이잔공화국과 국경에서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연구소에서 호텔을 잡아주었지만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동료의 집에서 머물렀다. 국경의 전투 상황이 불안해짐에 따라 식료품 공급에 차질이 생기기 시작했다. 처음엔 담배를 배급하더니 다음엔 주식인 빵을 배급하기 시작했다. 춥디추운 코카서스의 겨울. 매일 밤마다 눈이 쌓여갔다. 가정집 난방은 기대할 수 없었고, 물 또한 시간을 정해 공급했다.

전쟁의 공포 속에서도, 연말 분위기는 평화스러운 나라의 풍경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하나라도 더 장만해 풍요로운 마음으로 해를 보내고, 희망의 새날을 맞고 싶어했다. 하지만 현실 상황은 악화일로였다. 국경의 난민들이 아르메니아 수도 예레반으로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더 어려워졌다.

친구와 나는 신년을 맞이하기 위해 도장이 찍힌 배급표를 들고 빵을 배급 받기 위해 줄을 섰다. 검은색 외투와 털모자로 무장한 사람들 사이에 빵을 담기 위한 비닐봉지를 들고 줄을 섰다. 당시 나는 빨간색 파카를 입고 있었다. 흑백의 풍경 속에서 빨간색 옷을 입은 내 모습이 이방인인 나의 처지를 더욱 돋보이게만 했다. 당시 빵집 앞에서 빵을 실은 트럭을 기다리던 사람들의 군상은 마치 흑백 판화처럼 현실감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그 풍경은 현실이었다.

상황은 더욱 어두워졌고, 빈 트럭만이 도착해 사람들은 흩어져야 했다. 몇몇 사람이 빈 트럭 주위에 몰려 알 수 없는 언어로 항의를 하고 웅성거렸지만, 다들 되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나보다 더 난감해 하고 낙담한 친구와 눈길을 밟으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어느 관공서 식당 주방의 불빛이 보였다. 그곳에서 둘이 신년을 맞이할 만큼의 빵을 간신히 구할 수 있었다. 우리는 행복한 마음으로 신년을 보드카로 자축했다. 최악의 상황이었지만 최고의 만찬을 즐기던 기억이 새롭다. 가끔 혼자 그때의 상황을 떠올려보면 ‘따뜻했다’는 느낌이 드는 이유를 도무지 모르겠다.

물리적으로 시간은 흐르고 상황은 바뀌었다. 우리 연구실에 지금 3명의 외국 유학생이 와 있다. 유학생이 많으면 6명이 있을 때도 있었다. 지금은 아르메니아에서 온 알센과 하룻 2명의 연구원과 프랑스에서 온 학생 제롬이 있다. 그들의 가족을 더하면 수가 더 많아진다. 아르메니아에서 온 2명의 연구원은 20년 전 그 친구의 제자들이다. 2명의 젊은 연구원은 내가 아르메니아에서 빵을 배급받기 위해 줄을 섰던 시기에 어린 시절을 보낸 친구들이다. 가끔 이들에게 그 시절 이야기를 하면 “우리 부모님이 가끔 말씀하셨다”라고 간단히 말하곤 한다. 내가 경험했던 과거와 그들의 과거는 일치할 수 없다. 그런 불일치가 서로 이해할 수 없는 소통의 한 채널을 만드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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