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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연재 | 김연경의 ‘세계 명작 다시 읽기’

신 없는 유토피아는 가능한가

도스토예프스키‘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 김연경│소설가 koshka1@hanmail.net

신 없는 유토피아는 가능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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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대한 소설은 시대와 장소를 초월해 깊은 울림과 통찰을 전한다. 세월이 흘러도 빛나는 고전은 지금 우리 사회에 어떤 메시지를 던지는가. 소설가 김연경씨가 대표적인 명작 소설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세계 명작 다시 읽기’를 연재한다. 첫 번째 작품은 러시아 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의 최고 걸작으로 꼽히는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이다. <편집자 주>
신 없는 유토피아는 가능한가

움푹 꺼진 퀭한 눈이 러시아의 영혼을 상징하는 듯한 도스토예프스키의 모습.

바실리 페로프가 그린 도스토예프스키의 초상화를 보면 이 러시아의 대문호에 대한 우리의 편견이 십분 만족되는 듯싶다. 넓은 이마와 움푹 꺼진 퀭한 두 눈은 곧 광활하고도 깊은 러시아의 영혼을 상징하는 것 같다. 서양인답지 않게 툭 불거진 광대뼈 역시 어딘가 독특한 느낌을 준다. 고동색의 무성한 턱수염 속에서는 이성의 광기와 영성의 은총이 영원토록 사투를 벌이는 것 같다. 끝으로, 비스듬히 아래쪽을 향한 저 시선의 끝은 어디일까? 결국 그의 소설을 들추는 수밖에 없다. 우선 전기를 간략히 보자.

소설가로서의 무게에 비하면 생활인으로서 도스토예프스키는 이래저래 문제가 많았다. 그는 가난한 군의관의 아들로 태어나 페테르부르크 공병학교를 졸업했다. 그러곤 전공에 따라 공무원(무관)이 되었으나 이내 싫증을 냈다. 결국 전업 작가의 길을 택했고 그 순간 가난은 그의 실존이 되었다. 그 자신의 표현을 빌리면 ‘프롤레타리아 작가’가 된 셈이다.

그럴뿐더러 간질병이 평생 그를 쫓아다녔다. 도박벽 역시 치명적인 결함이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그의 문학 속에서 승화작용을 거친다. 그의 소설은 기본적으로 가난하고 핍박받는 사람들과 그들로 인해 고뇌하는 인텔리겐치아에 관한 소설이다. 그 고통이 너무도 깊기에 그들은 간질발작이나 도박의 절정과 같은 찰나적인 황홀경을 꿈꾼다. 그들의 목표는 늘 유토피아 건설이다.

실제로 도스토예프스키는 20대 때 페트라셰프스키 서클을 드나들며 푸리에를 비롯한 사회주의자들의 서적을 읽고 새로운 사회 체제의 가능성을 논하곤 했다. 그 일로 인해 그는 사형선고까지 받았다. 그러나 니콜라이 1세의 애초 각본에 따라 사형 집행 당일 총이 발사되기 직전, ‘사형극’이 극적으로 중단된다. 이후 도스토예프스키는 8년간 유형살이를 한다. 다시 문단으로 돌아왔을 때 그는 극단적 보수주의자에 슬라브주의자가 돼 있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좌익이나 우익이냐, 무신론자냐 광신도냐’가 아니다. 삶이 그 어떤 이데올로기나 관념보다 더 소중하다는 것. 바로 이것이 도스토예프스키가 목숨을 대가로 얻어낸 가장 소중한 깨달음이다. 그의 마지막 소설이자 최고 소설로 손꼽히는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이하 ‘카라마조프’) 역시 궁극적으론 삶에 바치는 찬가라고 할 수 있겠다.

친부 살해의 테마

신 없는 유토피아는 가능한가

도스토예프스키는 환갑을 앞두고 완성한 대작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을 아내에게 헌정했다.

19세기 후반 스코토프리고니예프스크 시(市). 이기적이고 탐욕스러운 지주 표도르 파블로비치 카라마조프는 두 번의 결혼을 통해 세 아들을 얻었다. 첫 부인 소생의 드미트리(28세)는 퇴역 중위인데, 난폭한 면이 있으나 타고나길 마음씨가 착하다. 두 번째 부인이 낳은 이반(24세)은 이지적이지만 자기중심적인 자연과학도다. 역시나 두 번째 부인 소생인 알료샤는 이제 막 성인이 된 얌전한 청년으로서 어머니의 광신에 가까운 신심을 물려받아 수도사가 되고 싶어한다.

그밖에 암암리에 표도르의 자식으로 통하는 스메르쟈코프가 있는데, 하인 겸 요리사 노릇을 하고 있다. 그를 빼면 모든 아들이 아비에게 버림받고 타인의 품을 전전하며 자라났다. 한데 세 아들이 갑자기 아비의 집을 찾아온다. 대체 왜? ‘카라마조프’는 여기서 시작된다.

일단 문제는 ‘돈’이다. 드미트리는 오래전에 고인이 된 어머니가 자기 앞으로 남긴 유산을 받아내고자 한다. 물론 표도르가 돈을 내줄 리 없다. 그 와중에 드미트리는 표도르가 오랫동안 눈독을 들인, 그의 사업 파트너이기도 한 그루셴카에게 반하고 만다. 그뿐이 아니다. 겉보기엔 제법 점잖은 이반이 드미트리의 약혼녀인 카체리나 이바노브나를 사랑한다. 결국 아비와 아들이 돈과 여자 때문에 다투고 배다른 두 형제가 한 여자를 사이에 두고 기괴한 신경전을 벌이는 형국이 된다.

이렇듯 ‘카라마조프’는 그 상상력의 측면에서 거의 신화에 가깝다. 아들이 아비를 살해하고 아비의 여자를 탐하다니. 그 거칠고 적나라한 표현 방식에서는 시쳇말로 ‘막장 드라마’를 방불케 한다. 질투에 사로잡힌 아들이 아비의 집에 쳐들어와 아비의 얼굴을 문자 그대로 짓밟고 쌍욕을 퍼붓는 장면을 보라. 이 소설이 두툼한 분량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빨리 읽히는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즉 오이디푸스 신화 자체의 선정적이고 도발적인 측면과 작가의 직설적인 화법. 물론 추리 소설적인 장치(“누가 표도르를 죽였는가?”)도 기여하는 바가 적지 않다. 하지만 이런 소설적 흥미의 저변에 깔린 것은 죄와 벌, 자유와 양심, 신의 존재와 그 가치 등 대단히 철학적인 물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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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경│소설가 koshka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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