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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을 위한 리뷰

소설의 승자가 최명길이면 영화의 승자는 김상헌이다

소설 ‘남한산성’과 영화 ‘남한산성’

  •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소설의 승자가 최명길이면 영화의 승자는 김상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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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승자가 최명길이면 영화의 승자는 김상헌이다

영화 ‘남한산성’에서 최명길 역의 이병헌(왼쪽)과 김상헌 역의 김윤석. 이병헌이 곡진한 눈빛과 애틋한 음성으로 여심을 파고드는 정공법의 연기를 펼쳤다면 김윤석은 차가운 얼음 안에 뜨거운 숯을 감춘 이율배반의 연기로 남심을 훔쳤다.[CJ엔터테이먼트 제공]

역사는 반복된다. 한 번은 비극적으로 한 번은 희극적으로.

첫 문장은 헤겔이 한 말이다. 두 번째 문장은 마르크스가 덧붙인 말이다. 프랑스 혁명군주 나폴레옹과 그의 조카를 자처하며 절대왕정을 꿈꾼 나폴레옹 3세를 비교하면서 한 말이다. 조선왕조 500년사에서도 이와 같은 예를 여럿 찾을 수 있다.

조선을 건국한 아비(태조)를 허수아비로 만들고 형제를 도륙해가며 절대왕권을 구축한 태종은 조선 최고의 성군인 아비(세종)의 유언을 짓밟고 형제는 물론 조카까지 죽인 세조라는 열등한 클론으로 반복된다. 태종이 성군 세종의 시대를 준비했다면 세조는 그보다 살짝 열등한 클론 성종의 시대를 연다. 이 성종 역시 또 다른 클론을 낳게 되니 바로 숙종이다. 성종이 낯짝만 보고 마누라 삼은 여인을 질투가 심하다고 사약을 먹여 죽여버린 폐비 윤씨 사건은 숙종의 희빈 장씨 사건으로 되풀이된다.

이런 조선왕조의 가장 유명한 데칼코마니는 아마도 연산군과 광해군일 것이다. 조선 임금 중 유이(唯二)하게 묘호를 받지 못해 폭군의 대명사가 돼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둘은 ‘탈주의 정치’를 펼치다 막판 통제 불능 상태에 빠져 반정(反正)의 기치를 들고 나선 신하들 손에 의해 제거됐다는 점을 제외하면 많이 다르다. 연산이 르상티망(원한)의 정치로 질주하다가 돌이킬 수 없는 광기에 사로잡힌 폭군이라면 광해는 사대주의와 명분론에 사로잡힌 조선 정치의 덫에 걸린 불운한 군주였다.

최악의 닮은꼴은 선조와 인조다. 국제정세를 오판해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란 양대 병란을 초래했을 뿐 아니라 위기 대처 능력이 최악인 ‘못난이 군주’라는 점에서 그렇다. 심지어 임진왜란이 6년 뒤 정유재란으로 반복됐듯이 병자호란은 그보다 9년 앞서 벌어진 정묘호란의 재판이었다.

둘 다 정통성이 약하다는 콤플렉스가 강했다는 점도 닮았다. 선조는 재위 기간 내내 조선왕조 최초의 서자 출신 임금이란 자격지심에 시달렸다. 특히 임란 와중에 백성을 버리고 명으로 내빼려한 열등감으로 인해 이순신과 곽재우 같은 임란의 전쟁영웅을 질시했을 뿐 아니라 역모의 덫을 놓기 일쑤였다. 그 손자인 인조 역시 열등감의 화신이었다. 삼촌인 광해군의 왕좌를 뺏을 때 내세운 친명배금(親明排金)의 기치가 병자호란 이후 휴지 조각이 돼버리자 언제 옥좌를 뺏길지 모른다는 불안에 전전긍긍했다.



비극적 선조, 희극적 인조

대의명분을 중시하는 군자를 표방했지만 이기적 욕망에 충실한 소인이란 공통점도 지닌다. 똑같이 정비를 둘씩 뒀는데 선조가 50세, 인조가 43세 때 신하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새장가간 두 번째 왕비의 나이가 각각 18세와 16세였다. 여기엔 회춘에 대한 욕망도 컸지만 모두 자신이 책봉한 세자를 증오한 나머지 늦장가를 가서라도 원자를 낳아 왕좌에 앉히려는 정치적 노욕도 작동했다.

이는 나란히 패륜의 비극을 초래했다. 선조의 세자였던 광해군은 우여곡절 끝에 왕이 된 후 겨우 여덟 살밖에 안 된 배다른 동생(영창대군)을 죽이고 새어머니(인목대비)를 유폐한다. 인조는 그 자신이 스스로 패륜을 저지른다. 사실상 자기 대신 청에 볼모로 끌려갔다 9년 만에 돌아온 장남(소현세자)을 죽음으로 몰아넣고도 모자라 며느리 강빈을 사약을 먹여 죽였고, 손자 셋을 제주도로 유배를 보내버린다.

집권 초 사림의 인재를 대거 기용하며 목릉성세(穆陵盛世)라는 찬사까지 들었던 선조의 실패에선 비극의 냄새가 풍긴다. 하지만 재위 내내 ‘우물 안 개구리’식 블랙코미디로 일관한 인조의 실패에 대해선 실소를 금할 수 없다.

김훈의 소설 ‘칼의 노래’와 ‘남한산성’은 이 ‘희대의 못난이 클론’을 겨냥한 양날의 검이다. ‘칼의 노래’는 주인공 이순신이 충성을 바친 선조가 얼마나 의심이 많고 변덕스러운 군주였는지 절절히 노래한다. ‘남한산성’은 척화파 김상헌과 주화파 최명길이 치열한 쟁론을 펼치며 지키려 한 인조가 얼마나 우유부단하고 무능한 군주였는지 그의 언행을 담은 기록을 통해 고발한다. 그런 점에서 두 작품의 메시지는 동일하다. 이순신이 칼로써, 김상헌과 최명길이 말로써 지키려 한 종묘사직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 그들이 지켜내려 한 것은 그 허망한 종묘사직이 아니라 이 땅의 민초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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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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