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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의 정암 조광조”… 이코노미스트 이계식의 삶과 글

  • 고승철│저널리스트·고려대 미디어학부 강사 koyou33@empas.com

“20세기의 정암 조광조”… 이코노미스트 이계식의 삶과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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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을 잘했던 천재는 경세제민(經世濟民)을 꿈꾸며 경제학자의 길을 택했다. 우리나라가 일류 선진사회가 되길 갈망했다. 그렇기에 사회의 부조리와 불합리한 제도와 조직을 볼 때 안타까워하며 바꾸어 보려고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다.

다산의 역사를 찾아 실사구시의 정신을 되새겼으며, 명치유신을 일으킨 인재들과 그때의 사회·경제시스템을 궁구하였다. 미국, 벨기에, 이스라엘, 뉴질랜드, 일본 등을 돌아보며 그 나라의 좋은 점을 우리 시스템에 적용하려고 시도하였다. 그의 열정과 고뇌는 정부개혁과 지방의 발전을 넘어 남북교류 구상에까지 이르렀다.

오늘도 그가 그립기만 하다. 그는 천재와 개혁가들에게 흔히 나타나는 ‘오만’과 ‘경박’ 그리고 ‘독선’과는 거리가 멀었다. 다른 사람을 먼저 배려하고 진심으로 사랑을 아는 사람이었다.

전두환 정부 시절에 경제수석을 지내다 아웅산 테러 사건으로 순직한 김재익 박사 추모집 ‘시대의 선각자 김재익’과 비슷한 분위기를 풍긴다. 김 수석은 통찰력, 인품 등 여러 면에서 존경을 받았다. 수많은 인사가 그의 비보에 애통해했다. 추모 책자가 발간돼 유족들이 출판기념회를 열었을 때 800여 명의 지인이 찾아왔다.

경제정책 수립자는 이해(利害) 관계에 얽힌 사안에 대해 용단을 내려야 할 때가 많아 손해 보는 쪽으로부터 비방받기 일쑤다. 그래서인지 이코노미스트 인물에 관한 추모집은 매우 드물다. 이계식 박사에 관한 책이 돋보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추모집은 ▲고인이 걸어온 길 ▲지인 45명의 추모 글 ▲고인의 글 ▲고인의 연구물 51편에 대한 해제(解題) 등 4개 부로 구성됐다.

초·중학교 시절에 그는 몸놀림이 빨라 ‘날쌘돌이’로 불리던 축구 달인이었다. 학업 성적도 두각을 나타냈다. 시골 중학교에서 당대 최고 명문인 경기고로 진학했으니…. 고교 시절에는 영시(英詩)를 줄줄 암송했다고 한다. 영어회화 클럽 ‘선(Sun)’을 조직해 회장을 맡았고 수학에 재능을 보여 이과반에서 공부했다. 서울대 상대에 진학한 고교 동기생은 한덕수 전 국무총리 등이다. 대학생 때는 대학신문 기자로 필력을 떨치기도 했다.

박사 학위를 받고 KDI에 들어가서는 주로 재정 분야 연구에서 성과를 냈다. 대학 스승인 조순 교수가 경제부총리로 입각하자 부총리 자문관으로 발탁된다. 정부가 금융실명제 추진, 토지공개념 확대 등 개혁 정책을 입안하는 과정에서 이 박사는 다양한 아이디어를 제시한다. 집무실 문을 활짝 열어놓고 출입기자들이 방문하면 언제든 열띤 토론을 벌였다.

그는 벨기에 루벵대학 객원교수와 국제통화기금(IMF) 이코노미스트로 활동한 다음 KDI로 돌아왔다. 그는 국제적 경륜을 바탕으로 한국경제를 살리는 데 일조하려 했다. ‘정부혁신: 선진국의 전략과 교훈’이라는 저서를 냈다.

그는 1998년 3월 대통령 직속기관인 기획예산위원회 정부개혁실장에 임용되면서 방만한 정부조직에 메스를 들이댔다. 30대 국책사업이 제대로 이뤄지는지도 따졌다. 그는 “향후 5년간은 (기득권 세력과) 싸움의 나날(daily battle)이 될 것”이라 토로하기도 했다. 그는 비장한 각오로 개혁 작업에 나섰고 적지 않은 성과를 냈다. 그러나 기득권 세력의 지독한 음해에 시달리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그는 “(개혁 성공) 그날은 오리라/ 우리의 병이 우리 사회의 더러운 병이 깨끗이 사라지고/ 부끄러운 후진의 가죽을 바꾸어 자랑스런 선진의 면모를 갖출 그날이/ 우리 세대가 가기 전에 오리라 정녕 오리라’고 외쳤다.

그와 함께 정부개혁을 추진한 박개성 엘리오앤컴퍼니 대표는 “정부개혁실은 민영화, 인력감축, 운영시스템 혁신, 규제개혁, 전자정부 등 다양한 분야에서 높은 성과를 거두었다”면서 “그의 통찰력과 실험정신이 토양이 되었고 강직한 인품이 씨앗이 되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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