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5월호

역사와 교육에 관한 네 가지 단상

  • 김헌│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HK연구교수

    입력2011-04-20 10: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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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의 파노라마를 다채롭게 엮어내며 한 시대를 이끌고 나가는 힘을 흔히 시대정신(Zeistgeist, Genius Seculi)이라고 한다. 그것을 감지하려고 지식인은 촉각을 곤두세운다. 그런데 난 그전에 역사의 저변을 만들어주는 힘에 더 주목하는 편이다. 그 힘은 출산과 교육이 아닐까?

    만약 출산이 끊긴다면, 인류는 생물학적으로 단종(斷種)된다. 그러면 인간의 역사는 더 이상 있을 수 없다. 가임연령의 세대가 아이 낳기를 꺼리는 요즘이 두려운 까닭은, 우리나라의 미래가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측 때문이다. 아이를 낳는 일은, 그러니 역사를 만드는 일이다. 만약 교육이 없어진다면? 전통은 끊기고, 새로운 세대는 백지장에서 다시 시작해야만 한다.

    이제부터 하려는 이야기는 사실 거창한 것이 아니다. 서론이 여러분의 기대를 키웠다면, 좀 민망스럽다. 나의 아이들을 바라보며 느끼는 소박한 네 가지 단상을 소개하려고 하니 말이다.

    첫째가 대학 새내기가 됐다. 대학생활을 즐겁게 하니 흐뭇하다. 누구나 다 알겠지만, 그건 저절로 된 것은 아니다. 녀석은 전투를 치르듯이 공부했고, 고행을 하듯이 몸과 마음을 혹사하며 수년을 견뎌냈다. 지긋지긋했을 거다. 그런데 마지막 순간이 정말 힘들었다. 모든 사정을 고려해서 최적의 학교에 지원했다. 합격자 명단에 녀석의 이름이 있는 것을 확인한 후, 우리는 아낌없이 기뻐하며 축하 기념 여행을 떠났다.

    그런데 돌아오던 날 차 안에서 전화 몇 통을 주고받더니, 녀석 표정이 굳어지며 말이 없다. 그리고 갑자기 운다. 뭐니? 이유는 간단했다. 비슷한 수준이라 믿었던 친구가 S대에 합격했다는 것. “축하해야죠. 걘 뭔가 좀 달랐던 것 같아요….” 우리는 말없이 녀석의 울컥거리는 호흡을 느끼고만 있었다. 겨우 꺼낸 말. “너도 잘했어. 비교하지 마. 넌 너고, 걘 걔야. 쿨~하게 잊어.” 완전 뻔한 멘트. 씨알도 안 먹혔다.



    그 후, 녀석은 내내 우울했고, 고민했고, 새벽이 될 때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이다 지쳐 쓰러졌다. 마침내 꺼낸 말. “아빠, 저 재수하고 싶어요.” “왜?”하고 물었다. “제가 초라해서 못 견디겠어요. 전 정말 잘하고 싶었는데…. 이것밖엔 못했어요. 정말 죄송해요.” 가슴이 아리다. 먹먹하다. 난 녀석이 정말 기특한데. 누가 이 녀석을 울리는가? 얜, 왜 이런 생각을 하나? 열심히 했는데, 왜 죄송할까? “넌 지금 19년밖에 안 살았어. 넌 앞으로 지금껏 살아온 것의 세 배는 더 살 거야.” 밤이 깊어지도록, 며칠 동안 우리는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누구랑 싸우는 게 아니라,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성실하게 살면서 자기만의 삶을 만들어가는 일에 관해. 성적으로, 재산으로, 권력으로 줄 세우고, 누구 위에, 누구 밑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 곁에서 함께 살 수 있는 삶에 관해. 그리고 앞으로 아파해야 할 많은 일에 관해 . 누구 말대로, 아프니까 싱싱한 청춘이겠지?

    둘째는 동물을 참 좋아한다. 그래서 수의사가 되고 싶었고 이과를 선택했다. 그러나 동물을 좋아하는 취향과 수의사가 되기 위해 해야 할 의무가 삐걱거렸다. 수학, 과학 등의 과목이 녀석을 괴롭혔다. 애를 써도, 수업 시간에 집중도 이해도 안 된단다. “네가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선, 네가 꼭 해야만 하는 것을 이 악물고 해내야 해.” 녀석, 그런 건 자기도 다 안단다. 한동안 공부 안하고 빈둥거렸다. 새벽같이 나가서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아 귀에도 안 들어오는 수업을 6~7시간씩 들어야 하니. 왕성한 시기에 좀이 쑤실 법도 하다. 결국 학교 측과 논의 끝에 문과로 옮겼다. 오로지 수학 과학의 짐을 벗기 위해서. 그런데 여전히 공부를 안 한다. “왜 안 하니?” “왜 공부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전 이제 꿈이 없잖아요. 뭘 하며 살아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건 절망이었다. “그럼 나하고 시골 내려가서 개, 닭 키우며 살까?” 괜히 말했나 보다. 버럭, 놀리지 말고 나가시란다. “알았다. 네가 하고 싶을 때 해라. 학교 졸업하고 한 10년쯤 지나고 시작해도 괜찮다. 물론 각오해야 할 일이 적진 않겠지만…. 개, 닭 기르자는 것도 진심이다.”

    역사와 교육에 관한 네 가지 단상

    동해 여행을 함께 한 김헌 교수 가족.



    지난 겨울 언니의 수능이 코앞에 닥쳤을 때 둘째는 늦은 시간 방으로 들어와 무릎을 꿇고 울며 말했다. “아빠, 저도 미술하고 싶어요. 힘들겠지만, 도와주실래요?” 미술? 뭐, 너도 미술?! 알았다. 좋다. 네가 꿈을 꿀 수 있다면, 난 힘들어 죽겠어도 좋다. 넌, 내가 꾸는 또 다른 꿈이니까. 아이는 문과에서 다시 예체능반으로 옮겼다. 하지만 문제가 끝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시작이다. 녀석의 방황과 고민은 여전히 계속될 거다. 하지만 꿈을 가진 방황이니 좀 낫겠지?

    셋째는 꿈이 너무 많다. 뭐래도 다 할 기세의 당찬 ‘초딩’ 5학년. 2년 전부터는 열심히 재즈 댄스를 한다. 방과 후 활동으로 시작하더니, 요즘도 꾸준하다. 학교에서 방과 후 활동 발표회를 한다고 해 가봤다. 순서가 돼 녀석이 나오는데, 정말 깜짝 놀랐다. 복장도 화장도 놀라운데 게다가 몸동작이 장난 아니다. 소녀시대 못지않다! 어쩌면 저렇게 예쁘게 잘할 수가 있을까? 나는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그런데 저녁에 다시 집에 와서 보니, 녀석이 시무룩하다. 남자아이들이 복장과 몸동작이 야했다고 놀렸다는 것. 그랬나? 내 눈에는 예쁘기만 하던데.

    그런데 혹시 내가 그런 식의 눈요기(?)에 익숙해져서 아무렇지도 않았던 건가? 아이들의 눈에, 걔네들의 정서에 안 맞았다면, 문제가 있는 건지도 모른다. 아이들은 아이다울 때 가장 예쁜 것 아닌가. 사실 그 몸동작을 음흉하게 보려들면 얼마든지 그럴 수 있겠구나 싶었다. 어른 흉내를 내며, 어른이 되어가는 아이들. 우리의 모습대로, 우리가 품은 생각대로, 우리가 보여주는 대로 아이들은 그것을 모델이라 여겨 따라 하고 배우는 법이다. 그걸 생각하니, 아찔한 일이 너무 많다. 아이들에겐 세상이 모두 배우고 따라야 할 교과서다. 그렇다면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따라 하라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가? 내 삶은 그 일에 얼마나 충실한가?

    넷째는 완연한 봄을 만끽하고 있다. 초등학교 4학년에 올라가더니, 사건을 하나 만들었다. 첫날 교실에 들어서는 순간, 눈에 띄는 아이가 있었단다. 그래서 며칠 궁리 끝에 편지를 썼다고. ‘너를 처음 보고 첫눈에 반했어. 나랑 절친 할 수 있니?’ 믿기지 않지만, 그 일을 했단다. 편지를 건네주니, 아이가 읽고, 자기를 돌아보고 씩 웃었다나. 그래서? 사귀기로 했단 말씀! 그 다음날 아내는 내게 사진 한 장을 보냈다. “사진 찍어 오란다고 진짜 찍어 보냈네~ 애들 넘 귀엽긴 하다 ^^*” 넷째가 인증 사진을 찍어 보낸 것. 정말 적응 안 된다! 보내온 사진 속 활짝 웃는 두 녀석은 밝고 맑았다. 기분이 묘했다. 나중에 며느리 보면 이런 기분이려나? 뜻밖의 소식이 나를 하루 종일 들뜨고 따뜻하게 했다. 학교 다니는 거 재미있니? 당연하지. 녀석은 학교에 갈 이유가 분명해졌다.

    어느 날 놀이터에 녀석이 보이고, 그 곁엔 사진 속에서 보았던 그 아이가 보였다. 더욱 놀랄 일은 그 아이 곁에 똑같이 생긴 아이가 하나 더 있는 것! 이게 무슨 일? 알고 보니, 절친으로 사귄 아이가 일란성 쌍둥이란다. 왜 갑자기 화투판 전문용어가 생각나는 걸까? ‘일타쌍피!’ 며칠 후, 집으로 친구를 데려왔다. 네 명이다. 왜? 녀석이 절친 언니에게 남친을 만들어줬단다. 얼씨구, ‘일타삼피!’ 곁에서 지켜보는 것이 정말 재미있다. 그런데 쟤들 공부는 언제 하나? 은근 걱정된다. 하지만 저것도 좋은 공부가 아닐까? 어울려 놀 줄 아는 것. 친구 만드는 법. 난 좀 어려운 질문을 일부러 던졌다.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게 뭐야?” 거침없는 대답이 돌아온다. “노는 것!” -_-;; “놀기만 하다 망하면 어쩌려고?” “아니! 그렇게 될 때까지 놀진 않을 거니까 걱정 마, 아빠.” 그래, 걱정도 팔자다. 놀 줄 모르고 만날 쩔쩔매는 아빠보다 낫다.

    역사와 교육에 관한 네 가지 단상
    金獻

    1965년 서울 출생

    서울대 불어교육학과 졸업, 동 대학 철학과 석사, 협동과정 서양고전학과 석사, 프랑스 스트라스부르대 서양고전학 박사

    現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HK연구교수

    저서 : ‘고대 그리스의 시인들’ ‘위대한 연설’


    지친 몸으로 쓰러져 있으면, 네 아이가 달려들어 팔 다리 하나씩 맡아서 주무른다. 아, 이래서 아이가 네 명은 있어야겠구나! 걸리버가 된 듯 누워 눈을 감고 생각한다. 이 아이들 잘 키워 훌륭한 어른이 될 수 있게 한다면, 역사에 나름 공헌을 하는 것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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