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5월호

2014

10장 인민혁명군

  • 입력2011-04-20 10:3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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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
    2014년 8월1일 금요일, 오전 10시.

    개전(開戰) 8일째 되는 날이다. 그러나 남북한 간 전면전 상황은 처음부터 일어나지 않았고 북한군의 기습 도발에 반응한 한국군 해병 기동단이 북한령 옹진반도에 상륙함으로써 시작된 국지전이다. 따라서 전장(戰場)은 북한 땅에 국한되었다. 김정일과 김경식군(軍)의 대결에서 이탈한 중립군 세력의 등장. 거기에 중국 인민해방군의 개입으로 북한 땅에는 선양군구(軍區) 소속의 3개 집단군이 투입되었으며 김정일군과의 교전이 일어났다. 거기에다 북한 전국에서 봉기한 노농적위대, 교도대, 붉은청년근위대 등의 예비군 세력이 폭동을 일으키는 바람에 혼란 상태가 되었다. 개전 8일째 되는 현재 북한 전국의 ‘인민혁명군’은 차츰 조직화, 집단화되어가는 중이었으며 중국군 주력은 평양 북방의 순천에 사령부를 설치했다. 평양을 포위한 형국이다.

    “중국군만 개입하지 않았으면 북한은 해방이 되는 건데 아쉽구먼.”

    평양시 남쪽 중화군의 제31협동농장 창고가 제45인민혁명군의 본부다. 창고 옆쪽 벽에 기대서서 강성일이 말했다.

    “그때는 우리가 인민혁명군과 손을 잡고 북한을 해방시킬 텐데 말이요.”



    가능성이 있는 말이다. 중국군이 없다면 김경식 세력은 깨진 모래시계의 모래처럼 흩어져버릴 가능성이 크다. 이쪽은 이기준의 12군단과 조영근의 815기계화군단, 거기에다 개전 사흘째 되던 날 전격적으로 우장선 대장의 4군단과 최기백 대장의 820전차군단이 합류했으니 이미 북한의 제2세력이 되어있는 것이다. 우장선은 이기준의 제의를 받자 개성 북방까지 진출했던 820전차군단까지 끌어들여 합류한 것이다. 거기에다 인민혁명군을 우군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이곳 제45인민혁명군도 이기준, 우장선이 주축이 된 중립군의 지원을 받고 있는 것이다. 그때 군관 하나가 다가와 강성일에게 말했다.

    “평양 시내에서 교전이 일어났습니다. 시내에 잠입한 정보원의 보고입니다.”

    강성일의 시선을 받은 군관이 말을 이었다.

    “호위총국 소속의 전차여단 내부에서 총격전이 벌어져 사령부 건물이 폭파되고 전차 간 교전으로 전차 몇십 대가 파괴되었으며 20분쯤 지나고 그쳤답니다.”

    “내부 반란인 것 같군.”

    쓴웃음을 지은 강성일이 머리를 돌려 옆에 선 이동일을 보았다.

    “중국군이 바로 머리 위에 있으니 단속이 어려울 거요.”

    “사령부에서는 북한군 내부의 이탈이 심해질 것 같다고 했습니다. 특히 김정일 측 군부에서 중국군 쪽으로 돌아서는 부대가 늘어날 것이라고 합니다.”

    이미 사흘 전에 평양 좌측 3군단 산하 2개 사단이 중국군과 합류했다. 노골적으로 중국군 부대를 옆으로 끌어들임으로써 김정일을 배신한 것이다. 지금 2개 사단 옆에는 중국 제40집단군 소속의 119보병사단이 주둔하고 있다. 그때 그들 옆으로 제45인민혁명군 부대장으로 선발된 백동석이 다가왔다. 노농적위대장 출신으로 52세에 인민군 대위로 제대하고 중화군 소재 축사 관리인을 지낸 인물이다.

    “무전기 24대를 획득했습니다. 이젠 통신 문제는 해결되었소.”

    백동석이 떠들썩한 목소리로 말했다. 검게 그을린 얼굴을 편 백동석이 말을 잇는다.

    “연산의 62인민혁명군과도 연락이 됩니다. 연산에서는 함경남도 덕성 부근의 제178인민혁명군까지 통신을 했다고 한단 말입니다.”

    나흘 전부터 남한에서는 풍선에 소형 무전기를 넣어 북한 전역을 향해 띄웠는데 엄청난 효력이 발생했다. 첫째 인민혁명군 부대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것이다. 12군단, 4군단 등 중립군 참모부 지시가 무전기를 통해 전달되었기 때문이다. 현재 북한 전역에 조직된 인민혁명군 부대는 200여 개, 부대원 숫자는 10만명 가까이 되는데 계속 증가하고 있다. 모두 무전기가 대량으로 살포된 덕분이다. 강성일이 머리를 들고 이동일을 보았다.

    “전연지대 서쪽이 비어 있는데 왜 남조선군이 머뭇거리고 있는지 모르겠소.”

    그렇다. 사흘 전부터 4군단장 우장선은 서해안 4군단 지휘하의 모든 부대에 한국군과의 교전 금지 명령을 내렸다. 이것은 한국군과의 연합이나 같다. 따라서 남해 근처에 잔류했던 해병부대는 압박에서 자유로워졌으며 해군으로부터 병력과 장비까지 지원받아 교두보를 굳혔다. 이제 한국군은 4군단 지역을 통과해 북상할 수도 있는 것이다. 강성일의 시선을 받은 이동일이 머리를 기울였다.

    “그건 지휘부에서 조처하겠지요. 난 해병 중대장일 뿐입니다.”

    2014년 8월1일 금요일 오전 11시, 개전 8일째.

    “이해가 안 되는군” 하고 해병사령관 정용우가 말했다. 이곳은 오산 시내 중심가의 해장국집 안이다. 전쟁 8일째여서 국민의 긴장감은 많이 느슨해졌지만 여전히 군은 전시상황을 유지했으며 계엄도 해제되지 않았다. 그러나 오산 연합사벙커에 상주하다시피 했던 지휘관들은 3교대 체제가 되었다. 다 모여 있는 것보다 8시간씩 교대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사흘 전부터 정용우는 상황실을 나오면 오산 시내 해장국집 남원옥에서 해장국을 먹는 것이 버릇처럼 되었다.

    “지금 밀고 올라가면 통일이 되는 거야. 각 인민혁명군 부대가 우리를 열렬히 환영할 것이고 4군단, 12군단이 장악한 황해남북도는 이미 우리 땅이나 마찬가지란 말야. 이건 도무지.”

    수저를 내려놓은 정용우가 앞에 앉은 참모 최재창을 쏘아보았다. 이것은 닷새 전부터 한국군 일각에서 나왔던 의견이지만 연합사 지휘부에서 묵살되었다. ‘확전을 피하고’ ‘놔두면 상황이 더 이롭게 될 테니 기다리자’는 것이 한미 양국 정상 간의 결정이었기 때문이다.

    “역시 군은 군인이 지휘해야 돼. 정치가들한테 맡기면 군이 시위대 정도가 되어버린단 말야.”

    정용우가 투덜거렸을 때 최재창이 주위를 둘러보고 나서 말했다.

    “중국군을 몰아내려면 인민혁명군이 나서야 됩니다. 김정일군은 물론이고 중립군도 나서지 못할 테니까요.”

    이미 그것도 지휘관들 사이에 논의된 사항이어서 정용우는 대꾸하지 않았다. 전력상 숫자가 많을지 몰라도 북한군의 전의가 약해지고 있다. 이런 군대로 전쟁을 치르면 백전백패다.

    “빌어먹을 중국 놈들.”

    정용우가 혼잣소리처럼 투덜거렸다. 중국군이 진입하지 않았다면 북한은 마른 모래성처럼 이미 허물어져 내렸을지도 모른다. 인민혁명군과 중립군이 연합해 전연지대를 개방해버리면 한국군은 무혈 북진을 하게 되는 것이다. 고립된 김정일군과 김경식군은 무기력해져서 저항 한번 못하고 흩어지게 된다. 이것이 전략가들의 예측이었다.

    “하지만 현 상황이 비관적이지만은 않습니다.”

    최재창이 정색하고 말을 잇는다.

    “인민혁명군이 바로 북한 인민이니까요.”

    “제88전차여단은 이정국 대좌가 장악했습니다.”

    호위총국 부사령관 윤국순 상장이 김정일에게 보고했다. 주석궁의 지하 상황실 안이다. 김정일의 시선을 받은 윤국순이 말을 이었다.

    “반란자 윤기열, 고동수, 그리고 참모 두 명과 연대장 하나, 탱크 중대장 넷을 즉결처형했습니다.”

    상황실 안은 조용해서 옅은 기계음 소리만 울린다. 호위총국 소속의 88전차여단이 중국군과 합류했다가 하루 만에 반란 지휘부가 소탕된 것이다. 중국군과 합류했던 여단장 윤기열 중장, 참모장 고동수 소장 등은 제3연대장 이정국 대좌가 일으킨 역(逆)쿠데타에 의해 처형되었고 다시 호위총국 소속이 되었다. 머리를 든 김정일이 벽에 펼쳐진 상황판을 보았다. 순천 주위에 수십 개의 노란색 등이 켜져 있다. 그리고 평양특별시 위에도 3개의 노란색 등이 깜박이고 있다. 중국군 부대다. 그러나 평양특별시 안은 동요하지 않는다. 88전차여단 한 곳만 반란을 일으켰다가 소탕되었을 뿐이다. 나머지는 모두 철저한 충성심으로 뭉쳐져 있는 것이다. 김정일이 상황판 앞쪽에서 깜박이는 전광시계를 보았다. 오후 1시10분이다. 개전 8일째.

    “서울로 전화 연결해.”

    김정일이 말하자 모두의 시선이 한곳에 모여졌다. 그러나 입을 여는 사람은 없다. 명령을 받은 부관 서너 명이 소리 없이 움직이더니 곧 전화기를 들고 다가와 김정일에게 내밀었다.

    “남조선 대통령입니다.”

    서울이란 곧 박성훈 대통령을 말하는 것이다. 김정일이 전화기를 받아 귀에 붙였다.

    “대통령님, 저올시다.”

    “예, 위원장님.”

    이곳은 고속도로에서 2㎞쯤 떨어진 샛길이다. 주위에는 10여 대의 장갑차가 시동을 건 채 멈춰 서 있었는데 이곳이 연대 지휘부다.

    “연대장 동지. 1대대와 3대대, 그리고 대전차대대가 공격준비를 마쳤습니다.”

    무전기를 귀에서 뗀 작전참모가 장갑차 안쪽에서 보고했다.

    “적 선두와의 거리는 5㎞ , 포병연대가 공격을 시작할 때가 되었습니다.”

    “저놈들은 공군을 움직이지 못해.”

    철모를 벗으면서 이윤성이 손목시계를 보았다. 8월1일 오후 6시15분이다. 이제 5분쯤 후면 인산 북방의 고속도로에서 남조선의 제105기갑사단과 붙어 전투가 시작될 것이었다. 고속도로 좌우에 2개 대대와 대전차대대 병력이 포진했고 포병연대는 1대대 뒤쪽 5㎞ 후방에 자리 잡았다. 그리고 2대대는 예비대로 연대본부 뒤쪽에 배치되었으며 그 2㎞ 후방에는 42사단 소속의 1연대와 2연대, 그리고 사단직할 전차대대와 대공포대대 등이 포진해 있다. 이윤성이 얼굴에 밴 땀을 손바닥으로 닦으면서 말을 잇는다.

    “연합군 공군기가 뜨면 우리 동맹군 공군기도 날아올 테니까 말야. 그때는 세계대전이 일어날 테니 미국 놈들도 꼼짝하지 못해.”

    그때 참모가 머리를 들고 이맛살을 찌푸렸다. 이윤성이 말을 잇는다.

    “남조선 땅크들만 저지하면 돼. 그놈들 뒤에 820 반역자 놈들이 따르고 있지만 곧 동맹군 지원군이 올 테니까.”

    그때였다. 폭음이 울렸으므로 이윤성이 번쩍 머리를 들었다. 폭발음이다. 이윤성이 무의식중에 옆에 벗어놓은 철모를 집어 들었을 때였다.

    “꽈앙!”

    폭발음과 함께 장갑차가 허공에 뜬 느낌이 들더니 이윤성은 장갑차 천장에 머리를 부딪친 순간에 의식을 잃었다. 그래서 장갑차가 뒤집혔을 때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움직이는 부대는 다 공격을 받고 있습니다.”

    흥분한 참모의 목소리가 상황실을 울렸다. 이곳은 오산의 한미연합사 사령부 지하 벙커 안. 상황실에는 다시 한미연합사 고위층 장군들과 한국군 수뇌부까지 모여 있었는데 활기찬 분위기다. 상황 화면을 레이저로 가리키며 한국군 합참 소속의 대령이 말을 잇는다.

    “2군단의 42사단은 현재 13개 방면에서 공격을 받고 있습니다. 고속도로를 가로막고 있던 2개 대대와 대전차대대가 혁명군과 교전 중이어서 105기갑사단은 저항을 받지 않고 인산 북방의 고속도로를 통과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지금 위성화면으로 다 보이는 것이다. 구석 쪽에서 짧은 함성이 터졌다가 곧 그쳤다. 한국군 장교들이다. 연합사령관의 지시를 어기고 진격하는 터라 미군 장교들은 그러지 못한다. 그러나 밝은 표정은 숨길 수가 없다.

    “화면을 올려!” 하고 연합사 참모장 모건 해리슨 중장이 소리치자 상황화면 통제장교가 평양 서북방으로 화면을 옮겼다. 해리슨의 의도를 아는 터라 강동의 187포병여단 주둔지를 비춘 것이다. 이미 그곳은 폐허가 되었고 사방에서 습격했던 혁명군이 수습하는 중이다. 그런데 동쪽에서 중국군 1개 부대가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다. 제39집단군의 116기계화 보병사단 소속의 1개 연대다. 장갑차와 탱크, 중화기로 무장한 기계화 보병사단은 기갑부대와 보병의 혼성 부대로 진격 속도가 빠르고 화력이 강하다. 그들은 187포병여단을 응원하려고 투입되었지만 아직 흩어지지 못한 혁명군이 당할 것이었다.

    “연락을 해!”

    마침내 해리슨이 소리쳤다. 혁명군을 원하는 것이다.

    “빨리 저 얼간이들한테 피하라고 해!”

    연합사 사령관 명령으로 연합군 이동이 금지되어 있었지만 혁명군은 해당되지 않는다. 옆쪽 테이블에 앉아있던 사령관 제임스 우드워드 대장은 못 들은 척했다.

    “31㎞ 좌측에서 중국군 1개 기갑연대 병력이 접근한답니다!”

    안성욱 하사가 소리쳐 말했으므로 이동일은 물론이고 옆에 서있던 강성일과 제45인민혁명군 부대장 백동석까지 놀라 시선을 주었다. 안성욱이 무전기를 손에 든 채로 다가와 말을 잇는다. 방금 연합사에서 정보를 받은 것이다.

    “10분 거리라고 합니다!”

    “어서 흩어져!”

    강성일이 먼저 소리쳤다.

    “좌측에서 적이다! 모두 흩어져!”

    지휘관들이 소리쳤고 주위는 순식간에 어수선해졌다. 이동일도 강성일과 함께 우측 산을 향해 뛰었다.

    “다행이오! 정보를 받지 않았다면 마을에서 우리가 포병단 꼴이 될 뻔했소!”

    달리면서 강성일이 소리쳤다. 마을 밖으로 나왔더니 사방으로 흩어져 뛰는 혁명군 무리가 황야에 가득 차 있었다. 이동일이 힐끗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말했다.

    “아마 위성으로 다 내려다보고 있겠지요. 지금도 말입니다.”

    그러고 나서 이동일이 다시 하늘을 보았다. 무의식적인 행동으로 자신의 얼굴을 아군에게 보이고 싶었기 때문이다.

    “저기 있다!”

    해병사령관 정용우가 버럭 소리쳤으므로 모두의 시선이 모여졌다. 정용우가 손가락으로 화면을 가리키며 다시 열심히 소리쳤다.

    “내 부하! 내 부관 놈이 저기서 금방 이쪽을 보았어!”

    위성 화면은 다시 작아져서 흩어지는 혁명군이 성냥 끝의 알만하게 보였다. 그래서 이동일은 묻혔지만 모두의 시선을 받은 채 정용우가 아직도 떠든다.

    “저놈이 이번 전쟁의 영웅이야! 저놈이 끈질기게 이 전쟁을 이어가고 있다고!”

    한국말이었으므로 한국군 장성 몇 명이 머리를 끄덕였다. 정용우가 이동일을 발견한 것이 큰 우연은 아니다. 이동일과 해병이 혁명군과 함께 제39집단군 산하의 포병여단을 습격하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의 깊게 지켜보았고 이동일 또한 그것을 의식하고 하늘을 보았던 것이다.

    “이봐, 정 중장.”

    하고 뒤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렸으므로 정용우는 눈부터 치켜떴다. 정용우가 가장 듣기 싫어하는 명칭이 바로 ‘정 중장’이다. ㅇ자가 다 밑에 있어서 발음하기도 듣기도 거북하지만 자신은 사령관인 것이다. 직책을 불러야지 대한민국 국군에 47명이나 있는 중장이라고 부른단 말인가? 몸을 돌린 정용우는 육참총장 조현호를 보았다. 조현호가 부른 것이다. 그런데 옆에 합참의장 장세윤이 서 있다. 대한민국 국군의 최고 실세 대장들이다. 그런데 조현호 뒤쪽에 육본작참부장 박진상까지 서 있다. 저 여우까지 웬일인가? 그때 조현호가 말했다.

    “상의할 일이 있어. 우리, 저쪽으로 가지.”

    조현호가 눈으로 문을 가리켰다. 상황실 밖으로 나가자는 말이었다. 그러고는 두 대장이 나란히 앞장을 섰으므로 정용우가 뒤를 따르면서 머리를 돌려 박진상에게 묻는다.

    “무슨 일이오?”

    “가봅시다.”

    박진상이 그렇게만 대답하더니 목소리를 낮췄다.

    “특급작전이오.”

    정용우는 입을 딱 다물었다.

    상황실 옆 참모장실은 연합사 참모장 모건 해리슨 중장의 전용실이었지만 이번에 한국군 수뇌부의 대기실로 사용되고 있다. 방에 들어와 원탁 주위로 둘러앉았을 때 먼저 입을 연 사람은 합참의장 장세윤이다.

    “거기, 이동일 대위한테 연락을 해요.”

    장세윤이 대뜸 말했으므로 정용우가 상반신을 세우며 긴장했다.

    “예, 하지요.”

    대답부터 하고나서 장세윤의 입을 보았다. 내용을 기다리는 것이다. 그때 조현호가 말했다. 두 대장이 이렇게 손발이 맞는 건 처음인 것 같다.

    “김정일한테 가라고 말야.”

    조현호는 거침없이 반말로 말을 잇는다.

    “대통령께서도 허락하셨고 김정일이 먼저 제의한 상황이야. 이건 통일부 쪽이 만든 사설 연락망을 통해 합의된 거야. 이 대위가 김정일 옆에 붙어서 우리 연락관 역할을 하는 거야.”

    입을 딱 벌린 정용우는 숨까지 죽인 채 듣기만 했다. 말을 그친 조현호가 숨을 고르는 동안 박진상이 거들었다. 이쪽은 더 호흡이 맞는다.

    “지금부터 정세가 일촉즉발의 상황이 되어서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르고 이에 대해 양국 지도부가 순발력 있게 대응하자는 취지요. 위기를 느낀 김정일이 제의를 해온 것이고 우리도 적극 환영하는 입장이오. 아직 연합사나 미국 정부의 동의는 받지 못했지만 그들이 알아도 방해할 수는 없을 거요.”

    “됐습니다.”

    커다랗게 머리를 끄덕인 정용우가 앞쪽에 앉은 세 장군을 둘러보았다.

    “이 대위 혼자 보냅니까?”

    “무인지경처럼 진격하는군.”

    잇사이로 말한 양훙이 먼저 후성궈를 보았다. 105기갑사단은 거침없이 인산 북방 고속도로를 통과하고 있다. 그야말로 파죽지세다. 위성화면에 잡힌 주변은 초토화되었다. 인민군 2군단 소속의 2개 대대, 대전차대대는 궤멸되었고 그 후방의 연대본부와 예비대대까지 공격을 받아 무력화되었다. 마치 함정에 빠진 것 같다. 아니, 북한 땅 전역이 함정으로 변한 것 같다. 이번 혁명군 공격도 그렇다. 아무리 위성으로 비춘다고 해도 주민과 해방군까지 구분해낼 수는 없다. 도처에 깔린 것이 북한 주민이니 그들을 다 죽이지 않는 한 해방군을 가려내기는 불가능하다. 지금은 그 후방에 있던 42사단의 2개 연대까지 사방에서 달려든 혁명군의 공격을 받고 있다. 아니, 그뿐만이 아니다. 중국군 3개 집단군 주둔지는 차츰 고립되어가고 있다. 혁명군이 모기떼처럼 달려들기 때문이다. 그때 중국군 사령관 후성궈가 말했다.

    “날이 추워지면 모기는 사라져.”

    시선을 든 후성궈가 옆쪽의 김경식을 보았다.

    “김 대장 그렇지 않습니까?”

    중국어로 묻자 통역장교가 바로 통역했다. 김경식이 대답하기도 전에 후성궈의 말이 이어졌다.

    “비 온 후의 잡초처럼 혁명군이 일어났지만 머리 없는 오합지졸일 뿐이오. 이제 북한 정권이 안정되면 다 말라죽습니다.”

    통역을 들은 김경식이 눈으로 상황화면을 가리켰다.

    “저놈들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북진해오는 105기갑사단을 말한다. 그 뒤를 820기갑군단이 서서히 따르고 있다. 105기갑사단은 이미 2군단 영역을 벗어나 12군단 지역으로 진입해 있는 것이다. 12군단은 이제 ‘중립군’의 핵심이다. 이기준의 12군단은 우장선의 4군단, 820기갑군단과 815기계화군단까지 포함된 강력한 세력이 되어있다. 김경식이 말을 이었다.

    “중립군과 김정일군, 그리고 남한군까지 연합하면 우리가 불리하지 않습니까? 더구나 반란군까지 우리를 공격하고 있단 말입니다.”

    그러자 후성궈가 쓴웃음을 지었다.

    “중국군이 평양 북방에 주둔하고 있는 것만으로 승부는 절반 이상 끝난 거요, 대장.”

    한마디씩 힘주어서 후성궈가 말을 잇는다.

    “이 땅이 혼란하면 할수록 우리한테는 유리하단 말요.”

    후성궈의 시선이 다시 상황화면의 105기갑사단으로 옮겨졌다.

    “저놈들의 목적은 평양과 서울을 잇는 통로 확보요. 이제 12군단 지역에 진입했으니 목적은 이룬 셈이지.”

    통역의 말이 끝났을 때 후성궈가 지휘봉을 들어 사리원을 가리켰다.

    “아마 105기갑사단은 이쯤에서 멈추고 820은 그 뒤쪽에 배치되겠지. 이것이 남조선 박성훈과 김정일이 합의한 사항이오.”

    “합의한 사항이라뇨?”

    김경식이 통역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소리치듯 물었다. 눈을 치켜뜬 김경식이 다시 묻는다.

    “무슨 합의를 했단 말입니까?”

    “중국군과 당신을 몰아내는 합의.”

    후성궈가 차분하게 말하고는 다시 쓴웃음을 지었다.

    “그러나 그들은 흥분한 나머지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어. 그것은 미국과 일본 측 입장이지. 김정일과 박성훈이 손을 잡는 것을 주변 강대국은 아무도 반기지 않아. 한미연합사 주력인 미국까지.”

    이제 중국군 장성뿐만 아니라 북한군 지휘관들의 시선이 모두 모여져 있다. 상황실 안은 기침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그때 후성궈의 말이 이어졌다.

    “지금 북한 땅이 그 강대국 간의 각축장이 되어 있소. 그리고 상황은 우리에게 이롭단 말요. 남북한 통일은 아무도 바라지 않아.”

    이동일은 하나씩 둘씩 다가와 앞쪽에 앉는 부하들을 보았다. 부하들은 눈인사를 하거나 가볍게 경례를 했는데 그때마다 이동일은 빼지 않고 답례를 했다.

    2014년 8월1일 금요일 오후 7시40분, 개전 8일째다. 이윽고 황찬우 중위가 다 모였다고 보고했다. 방금 모두 늦은 저녁을 마친 후여서 아직도 밥 냄새가 주변의 대기에 섞여 있다. 23명이다. 46용사가 절반인 23명이 되었다. 31명으로 참전했다가 다시 8명이 희생된 것이다. 그리고 23명 중에서도 부상자가 넷이다. 이곳은 평양특별시 동쪽 경계선인 송가라는 작은 도시 외곽의 야산 중턱이다. 이제 어둠이 덮인 주위에 둘러앉은 23명의 해병은 숨을 죽인 채 이동일을 주시하고 있다. 이윽고 이동일이 입을 열었다.

    “오늘밤 너희들은 황 중위의 인솔로 남하해 105기갑사단과 합류한다.”

    모두 숨을 죽인 채 이동일을 주시하고 있다. 105기갑사단은 지금 사리원 북방에 주둔하고 있다. 평양까지는 고속도로로 한 시간도 안 걸리는 거리. 우측이 북한 제3군단 지역이지만 김정일의 측근이 장악하고 있다. 이동일이 말을 이었다.

    “이제 너희들의 임무는 끝났다. 기갑사단에 도착하면 곧 헬기편으로 서울에 간다.”

    이동일의 얼굴에 옅게 웃음이 떠올랐다.

    “너희들은 46용사로 개전 직후부터 알려진 병사들이야. 이제 21용사가 되어서 돌아가게 되었지만 전 국민의 환영을 받게 될 거다.”

    “21용사라니요?”

    하고 누군가가 물었으므로 이동일이 정색했다. 황찬우가 잠자코 있는 것은 내용을 알기 때문이다.

    “나하고 안성욱 하사하고 둘이 남는다.”

    이동일이 말하고는 덧붙였다.

    “난 아직 일이 남았다, 이상이다.”

    그로부터 10분 후. 이동일과 안성욱이 각각 인민군 군관 차림으로 야산을 내려간다. 강성일과 부하 세 명이 그들의 안내역을 맡았다. 이미 주위는 짙은 어둠에 덮여 있었지만 앞장선 강성일의 부하는 거침없이 전진한다.

    “짧은 인연이었지만 이 대위를 만난 것이 내 인생의 소중한 추억이 될 것 같소.”

    강성일이 그렇게 말한 것은 평지에 내려왔을 때였다. 어둠 속에서 흰자위만 보이는 얼굴로 강성일이 말을 잇는다.

    “살아남는다면 꼭 다시 만납시다.”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동일이 진심을 담아서 대답했다. 황무지를 걸어 그들은 대로를 향해 다가간다. 이곳은 민가도 없는 외진 곳이어서 인기척도 없고 앞쪽 도로도 텅 비었다. 이동일의 뒤를 따르던 안성욱이 무전기를 귀에 붙이더니 짧게 좌표를 불러주었다. 그러자 앞쪽의 이동일에게도 잡음과 함께 응답소리가 울린다. 그때 다시 강성일이 말했다.

    “이 대위가 들어가다니, 뭔가 변화가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걸음을 늦춘 강성일이 이를 드러내며 소리 없이 웃는다.

    “내가 충성을 바치는 우리 사령관과 남조선군, 그리고 주석궁이 연결된 것 같아서 말입니다.”

    그렇다. 지금 이동일은 주석궁에서 보낸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이동일은 한국 측 연락관이 되었다. 김정일은 제의한 지 30분도 안 되어서 연락관이 평양 근처에 있다는 말을 듣고는 놀랐을 것이었다. 그때 어두운 길 왼쪽에서 차량의 전조등 빛이 드러났다. 두 대다.

    “저 차인 것 같습니다.”

    무전기를 귀에 붙이고 있던 안성욱이 말했다. 안성욱은 이번 임무에 자원했다. 통신병 하나가 필요하다고 했더니 하사관 셋이 지원했는데 그중 아무도 양보하지 않아서 심지 뽑기로 선발되었다. 이동일이 강성일에게 손을 내밀었다.

    “강 중좌님. 통일될 때까지 건강하십시오.”

    “이 대위도.”

    강성일이 이동일의 손을 세게 잡고 흔들었다.

    벤츠는 어둠을 뚫고 달려가는 중이다. 도로는 잘 정비되었지만 차량 통행이 딱 끊겼고 주위 건물에서는 불빛 한 점 비치지 않는다. 그래서 마치 주민이 모두 철수한 것처럼 보였는데 그동안 세 번 멈춰 검문소를 통과했다. 검문소에는 철제 차단봉이 내려져 있는데다 좌우에 탱크가 서너 대씩, 그리고 대전차포로 무장한 병사들이 지키고 있다. 언뜻 보아도 규율이 강하고 장비도 우수했다. 평양특별시는 호위총국과 평방사로 불리는 평양방어사령부, 그리고 김정일만을 경호하는 평양경비사령부가 겹겹이 방어하고 있다. 무기도 최우선, 최신형으로 지급되어서 강군인데다 김정일 일가에 충성을 바치고 있다. 지금 북한 전역이 중립군과 반란군 그리고 중국군과 혁명군에 뒤덮여 있어도 평양특별시는 난공불락의 요새처럼 동요하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이다. 평양 주변과 내부에만 1개 기갑군단을 포함한 4개 군단이 포진하고 있는 것이다. 전연지대라고 불리는 휴전선에 4개 군단이 배치된 것과 같다.

    이윽고 벤츠는 지하 통로로 진입하면서 다시 세 번이나 검문을 받고 거대한 철문 앞에서 멈춰 섰다. 이곳은 지하도시처럼 보였는데 곳곳에 탱크와 장갑차가 배치되어서 분위기가 삼엄했다. 이동일을 안내한 군관은 대좌였다. 그런데 이곳까지 두 시간 가깝게 옆자리에 앉아 오면서도 단 한마디의 말도 하지 않았다.

    이윽고 철문을 통과한 일행이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한참이나 내려갔더니 거대한 공간이 펼쳐졌다. 거기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몇 층인가를 더 내려갔다가 밖으로 나와 100m쯤 나아가자 경비병이 늘어선 철문 앞에 멈춰 섰다. 이곳은 철문 좌우에 기관총좌까지 설치되었고 경비대장은 대좌 계급장을 붙이고 있다. 경비대장이 이동일을 안내한 대좌를 보더니 문을 열라는 신호를 하자 철문은 소리 없이 좌우로 벌려졌다. 이동일과 안성욱은 대좌를 따라 안으로 들어섰다. 이곳이 주석궁 벙커일 것이다.

    연합사 참모장 모건 해리슨 중장은 지난 인생 동안 금연을 3번 했는데 각각 10년, 5년, 그리고 최근의 6년이다. 누가 들으면 참지 못하고 담배를 다시 피운 줄 알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내키면 끊고 불쑥 생각나면 피웠다. 한 10년 금연 하지 뭐, 하고 끊었다가 10년 되는 날 한 대 피우고 다시 5년을 금연했다. 그러다가 스스로 얽매는 것 같아서 5년 후에 두어 달 피우다가 이번에는 정해놓지 않고 안 피웠더니 이제 6년째가 되었다. 그런데 지금 담배를 입에 물고 있다. 오산 연합사령부 벙커에 참모 대기실이 있다. 참모장용 벙커는 한국군 수뇌부에게 양보하고 지금 해리슨은 참모 대기실에서 작전참모 마이클 토드 소장과 둘이 마주 앉아 있다.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은 해리슨이 토드를 보았다.

    “이봐, 마이클. 내가 한국 역사를 좀 읽었지. 역사라기보다 한국이 일본 식민지에서 벗어난 후부터의 자료를 읽었다네. 왜냐하면 6·25전쟁을 연구하고 싶었거든. 우리가 참전할 전쟁이니까 말야.”

    토드가 잠자코 해리슨을 보았다. 웨스트포인트 3년 선배인 해리슨은 성적은 별로였지만 육사 시절부터 인기가 좋았다. 후배가 잘 따르고 임관된 후에도 평이 좋았다. 처세를 잘 한다고 평이 좋아지지 않는다. 30년 가깝게 군 생활을 하면 서로 속속들이 다 알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인품이며 인격이다. 해리슨이 말을 잇는다.

    “이 빌어먹을 한국이 왜 남북으로 분단된 채로 60년이 넘도록 정전(停戰) 상태가 되어 있는지 아나?”

    “모릅니다.”

    곧 기갑부대장으로 승진되어 전출될 예정인 토드가 망설이지도 않고 대답하자 해리슨이 설명한다.

    “미국이 북한을 소련에 떼어줬기 때문이야. 그때 루스벨트는 소련군을 대일(對日)전에 끌어들이려고 스탈린한테 부탁하는 형편이었지. 왜냐하면 미군이 일본 본토를 점령하려면 미군 100만은 희생될 것이라는 통계가 나왔으니까.”

    “… ….”

    “한반도와 일본 본토 위쪽에 주둔하고 있는 소련군이 일본을 공격해준다면 한반도쯤은 던져줘도 아깝지 않았어.”

    “… ….”

    “그래서 소련군은 북한으로 남진했는데 미군은 원자탄 두 발로 일본 항복을 받아냈어, 망할.”

    “… ….”

    “소련 놈들은 손도 안 대고 코 풀었어. 일본이 항복해버려서 총 한 발 안 쏘고 북한 땅만 접수한 거야.”

    “… ….”

    “그래서 이렇게 되었어. 6·25전쟁으로 미군 5만명이 전사하고 정전이 된 지 61년.”

    그러고는 머리를 든 해리슨이 토드를 보았다.

    “그런데 또 워싱턴에서는 북한을 중국한테 떼어주려는 것 같아, 마이클.”

    피우다 만 담배를 커피잔 안에 던져놓은 해리슨이 충혈된 눈으로 토드를 보았다.

    “토드, 그때 승만 리라는 위대한 사내가 없었다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존재하지 않았을 거네.”

    처음 듣는 이름이라 토드는 리씨 성을 가진 가수로 들은 것 같다. 그저 눈만 껌벅이고 있다. 그때 해리슨이 말했다.

    “토드, 날 도와줘.”

    그러고는 헛기침을 하고 나서 덧붙였다.

    “뭐, 현실적으로 말하겠네. 책임은 내가 질 거야. 그리고 이건 반역이 아냐.”

    “어, 자네가 그 유명한 46용사인가?”

    다가선 김정일이 손을 내밀며 물었으므로 이동일이 머리를 숙였다.

    “이동일 대위입니다.”

    “잘 왔어.”

    김정일은 피로해 보였지만 목소리엔 힘이 실렸고 손을 쥐는 힘도 강했다. 머리를 든 이동일이 김정일 뒤쪽에 서 있는 김정은을 보았다. 시선이 마주쳤지만 무표정한 얼굴로는 변화가 없다. 그때 김정일이 앞쪽 자리를 눈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앉게. 동무는 지금부터 내 측근이야.”

    그러고는 자리에 앉더니 쓴웃음을 짓는다. 넓은 방의 양쪽 벽에 금강산과 천지가 그려져 있다. 소파는 좌우로 두 줄로 놓였는데 중앙에 김정일이 앉아 있다. 이동일이 왼쪽에 앉았을 때 김정은은 마주 보는 앞쪽 자리에 앉는다. 방 안에는 문 쪽 벽에 붙어 서 있는 두 명의 군관까지 다섯이다. 이곳까지 안내해준 대좌는 문 앞까지만 왔다. 긴장한 이동일이 두 손을 무릎 위에 올려놓은 채 심호흡을 했다. 머리가 멍한 느낌이 드는 것은 아직 실감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상상하지도 못했던 일이다. 갑자기 평양 주석궁의 지하 벙커로 들어와 김정일한테 측근이라는 말을 듣다니. 그때 김정일이 불쑥 물었다.

    “데려온 장교는 무전수인가?”

    “예, 하사 안성욱은 무전병입니다.”

    그렇게 정정했을 때 김정일이 머리를 끄덕였다. 지금 안성욱은 옆방에 있다. 김정일이 말을 이었다.

    “중국군은 쉽게 철수하지 않아. 그리고 그것을 미국도 바라고 있을 거야.”

    한마디씩 차분하게 말이 이어진다.

    “그리고 일본도, 알겠는가?”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 동무가 그런 것까지 신경을 쓸 여유가 없겠지.”

    그러더니 김정일이 다시 묻는다.

    “지금까지 인민군을 몇 명 죽였나?”

    이동일이 김정일의 눈을 똑바로 보았다. 이제 조금 정신이 든다.

    “예, 중국군까지 20여 명은 될 것입니다.”

    “중국군까지?”

    “예, 강동군에서 중국군 제39집단군 소속 187포병여단을 격파했습니다.”

    “동무가?”

    “노농적위대원하고 연합했습니다.”

    그것을 인민혁명군이라고 부르지는 못했다. 김정일이 눈을 가늘게 뜨고 이동일을 보았다. 방안에는 잠깐 정적이 덮였다. 이윽고 어깨를 늘어뜨린 김정일이 천천히 머리를 끄덕였다.

    “그렇군. 노농적위대하고 같이 공격했군.”

    “… ….”

    “중국군 놈들을 말이지.”

    “… ….”

    “동무가 나한테 와 있는 것을 미국 정부는 물론 일본, 중국 정부까지 다 알고 있을 거네.”

    다시 김정일이 화제를 돌렸으므로 이동일은 정신을 차린다. 긴장한 이동일을 향해 김정일이 물었다.

    “동무는 지금 무슨 역할을 하고 있는지 아는가?”

    “모릅니다.”

    “남한 정부가 파견한 비공식 특사야.”

    “… ….”

    “연락관이 아냐. 동무가 이곳에 들어온 순간부터 남한과 북한은 연결되었어. 그젠 누구도 이것을 막지 못해.”

    김정일의 눈이 번들거리고 있다. 한마디씩 김정일이 말을 잇는다.

    “이제 동무를 통해 내 의사가 수시로 전달될 것이네. 남한 측도 마찬가지일 것이고. 그래서 우리는 기선을 잡아야 돼. 그래야 함께 살아남을 수 있단 말이네.”

    “이봐, 장군.”

    제임스 우드워드 대장이 해리슨을 그렇게 부를 때는 사적 감정은 다 빼고 사령관 대(對) 참모장으로 이야기하자는 뜻이다. 이곳은 오산 연합사사령부 벙커 안의 사령관실. 2014년 8월2일 토요일, 오전 9시. 개전 9일째가 되었다. 우드워드가 앉아도 조금 커 보이는 해리슨을 올려다보았다.

    “그 46용사의 지휘관 놈이 김정일과 합류했어. 이것은 뭘 의미한다고 생각하나?”

    “연합이죠.”

    한마디로 정의했던 해리슨이 덧붙였다.

    “동맹이라고 봐도 될 겁니다, 사령관.”

    “우리가 주목하다는 것을 남북한 두 놈도 알고 있겠지?”

    그 두 놈이란 김정일과 박성훈을 말한다.

    “물론이요, 사령관.”

    “그럼 연합사령관인 내 지시, 아니, 동맹국인 미국과의 신의를 무시하겠다는 표시일까?”

    “한국 측 입장에서 보면 먼저 계산기를 두드리고 몸을 뺀 건 미국입니다, 사령관.”

    “참모장을 바꿔야겠는데.”

    “그래도 이미 늦었습니다, 사령관.”

    “한국은 앞으로 어떻게 나올 것 같나?”

    “이 대위를 공식화할 겁니다.”

    “뒤통수를 맞겠군.”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사령관.”

    해리슨이 정색하고 말했으므로 우드워드도 눈을 치켜떴다.

    “장군, 생각을 말해봐.”

    “뒤통수 맞은 건 중국하고 일본으로 하십시다. 우린 동맹국 아닙니까?”

    우드워드의 시선을 잡은 해리슨이 입술 끝만 올리고 웃었다.

    “곧 작전참모가 대응책을 보고드릴 것입니다. 그것으로 사령관께서 워싱턴을 설득하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

    “우리가 중국, 일본에 이용당하고 있다는 여론이 형성되면 워싱턴도 꼼짝 못할 테니까요.”

    우리워드가 눈을 가늘게 뜨고 해리슨을 보았다. 그러나 입을 열지는 않는다.

    “송 기자, 전화” 하고 사회부장 홍동수가 소리쳤으므로 주위의 시선이 모여졌다. 전화기를 치켜든 홍동수는 눈까지 치켜뜨고 있다.

    “빨랑 받아! 해병사령부야!”

    이제는 세 칸이나 떨어진 문화부 쪽에서도 송아현을 보았다. 송아현이 제 전화기를 들고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가슴이 세차게 뛴다. 이동일에 대한 나쁜 소식이 아닐까? 홍동수의 표정을 보면 심상치가 않다. 그때 수화구에서 귀에 익은 목소리가 울렸다.

    “나, 해병사령부 참모 최 대령입니다.”

    최재창이다. 최재창이 말을 잇는다.

    “빨리 오셔야겠는데요. 송 기자가 대특종을 방송하실 일이 있습니다.”

    그래놓고 덧붙인다.

    “거기, 사회부장을 데려오시죠. 아직 영문을 모르고 있는데 신문 보도도 해야 될 테니까요.”

    2014년 8월2일 토요일 오전 10시 반. 개전 9일째.

    TV 화면에서 아나운서의 설명이 뚝 그치더니 이동일의 얼굴이 나타났다. 일주일 만에 나타난 이동일의 얼굴은 조금 야위었지만 말끔했다. 그리고 상반신에 양복을 걸쳤다. 일산 대호식당 안에서 이제나저제나 하고 기다리던 김대호가 놀라 입만 딱 벌리고 있다. 그때 이동일이 말했다.

    “저는 지금 평양 주석궁에 와 있습니다.”

    김대호의 입이 더 벌어졌다. 뒤쪽 주방에서도 소음이 뚝 끊겼다. 아나운서는 북한의 이동일과 화상 통신을 한다고만 말했기 때문이다. 그때 이동일이 말을 잇는다.

    “저는 북한의 인민해방군과 함께 싸우다 어제 주석궁에 안내되어 김정일 위원장을 만났습니다.”

    그때 화면에 금강산과 백두산 천지의 벽화가 그려진 응접실이 비쳤다. 다시 테이블에 앉은 이동일에게로 화면이 옮겨졌다.

    “저는 오늘부터 수시로 북한 정부의 방침과 현황에 대해서 국민 여러분께 이 방송을 통해 말씀드릴 계획입니다. 먼저 김정일 위원장은.”

    호흡을 가다듬은 이동일이 똑바로 화면을 보았다. 지난번 휴대전화 영상 화면과는 달리 화면이 선명하고 각도도 잘 잡혔다. 북한 측 촬영장비가 동원된 것 같다. 이동일이 말을 이었다.

    “2014년 8월2일 오전 10시부터 북한 전역에서 활동하는 인민해방군을 공식 북조선 인민공화국 군조직으로 인정했습니다. 따라서 각 인민해방군은 국방위원장 직속의 군조직이 되었습니다.”

    이동일이 이제는 원고를 들고 읽는다.

    “또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8월2일 오전 11시를 기하여 남한에 대한 어떤 무력 행사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이에 대한 한국 측의 답변을 기다리고 있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고는 원고를 내려놓더니 화면을 바라보며 묻는다.

    “질문 받겠습니다.”

    그러자 화면에 스튜디오가 비치면서 송아현의 모습이 확대되었다.

    “갑자기 어떻게 주석궁에 들어가시게 된 거죠?”

    지난번과는 달리 송아현이 경어를 썼고 표정도 굳어 있다. 송아현이 묻자 이동일도 정색한 채 대답한다.

    “국방위원장이 연락을 해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상부의 허락을 받고 이곳에 왔습니다.”

    “상부라면 어디죠?”

    “해병대 사령부입니다.”

    “빌어먹을 놈.”

    화면에서 시선을 돌린 연합사령관 우드워드가 잇사이로 말했다. 이동일의 한국어는 밑에 영어 자막으로 번역되어 나오는 것이다. 우드워드가 앞에 선 작전참모 마이클 토드 소장을 보았다.

    “뻔한 수작이지만 여론은 잘 먹히겠구먼, 안 그래?”

    “그렇습니다, 사령관.”

    “해병사령관이 잘릴까?”

    “영웅이 될 겁니다.”

    토드가 덧붙였다.

    “여론은 무시할 수 없거든요.”

    입맛을 다신 우드워드가 앞에 놓인 서류를 보았다. 토드가 작성해온 작전계획서다.

    (11장에 계속)

    이원호

    2014
    1947년 전북 전주에서 태어나 전주고, 전북대를 졸업했다. (주)백양에서 중동과 아프리카 지역 무역 일을 했고, (주)경세무역을 설립해 직접 경영했다. 1992년 ‘황제의 꿈’과 ‘밤의 대통령’이 100만부 이상 팔리며 최고의 대중문학 작가로 떠올랐다. 간결하고 힘 있는 문체, 스케일이 큰 구성, 속도감 넘치는 전개는 그의 소설에서만 볼 수 있는 매력이다. 기업, 협객, 정치, 역사, 연애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며 지금까지 50여 편의 소설을 냈으며 1000만부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했다. 주요 작품으로 ‘할증인간’ ‘바람의 칼’ ‘강한 여자’ ‘보스’ ‘무법자’ ‘프로페셔널’ ‘황제의 꿈’ ‘밤의 대통령’ ‘강안남자’ 등이 있다.


    그동안 10여 차례 통화를 했다가 요즘 닷새 동안은 서로 연락하지 않았다. 전선도 형성되지 않은 채 북한 영토가 전장이 되어버리는 바람에 협조를 구할 것도, 타협할 일도 없었기 때문이다. 자업자득치고는 이런 악수(惡手)가 없다. 일을 일으킨 김형기, 김경식 일당도 이런 상황이 되리라고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미사일 공격을 받으면 전처럼 그대로 꽁무니를 빼거나 대응하는 시늉만 하다가 그만둘 줄 알았다. 겁쟁이들이었다. 그런데 그 겁쟁이들이 즉각 밀고 올라와 북한령에 상륙하다니, 해안 기지가 초토화되고 군부대가 이탈하고, 반란군이 비온 후의 잡초처럼 솟아나더니 중국군 진입, 그리고 이젠 북한 전국이 통제 불능 상태가 되었다. 김정일은 평양특별시와 아직도 충성을 다하는 대여섯 개 군단을 장악하고 있는 소말리아 군벌이나 같다. 김정일이 말했다.

    “4군단, 12군단은 황해남북도를 장악하고 있는 데다 815, 820군단이 개성과 중부전선까지 닿아 있어서 서쪽 방면은 휑 뚫렸습니다.”

    ‘휑’이라는 단어를 썼을 때 주위 장군들의 표정이 더 굳어졌다. 갑자기 찬바람을 맞은 것 같다. 박성훈도 긴장했는지 가만있었고 김정일의 말이 이어졌다.

    “김경식의 2군단이 옆에 있지만 부대 단속하느라 급급해서 주위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습니다.”

    “……”

    “더구나 우측에 위치한 제5군단은 내 지휘를 받는 충성스러운 부대여서 움직이면 옆구리를 찔릴 것입니다.”

    “위원장님, 잘 알겠습니다. 그런데…” 하고 박성훈이 용건을 말하라는 듯 재촉했을 때 김정일이 말했다.

    “한국군을 서쪽 통로로 진입시켜 주시지요.”

    놀란 박성훈이 다시 입을 다물었고 김정일의 말이 이어졌다.

    “평양 이남의 황해남북도를 한국군이 통제해주십시오. 아마 이기준과 우장선이 지휘하는 이른바 중립군은 한국군과 합류할 것이고 인민군들도 동참하지 않겠습니까?”

    “……”

    “그러면 자연스럽게 김경식의 2군단과 그 추종 세력은 앞뒤가 막혀 말라죽을 것입니다.”

    “……”

    “그 상태가 되면 중국군과 북남 연합군의 대치 국면으로 상황이 정리되겠지요. 이것이 북조선인민공화국을 대표한 내 제의올시다.”

    “알겠습니다.”

    박성훈의 말끝이 조금 떨렸다.

    “검토 후에 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

    정확히 35분 후인 2014년 8월1일 오후 2시15분.

    산본장의 지하 벙커에서 전시 비상 각료회의가 열린다. 이번 회의에는 오산 연합사벙커에서 합참의장과 3군 참모총장, 해병대사령관, 기무사령관까지 다 불려왔다. 장방형 원탁에는 20여 명의 각료, 군 지휘관이 둘러앉았다. 회의가 시작되자 먼저 대통령이 직접 김정일과의 통화 내용을 설명해주었다. 모두 숨소리까지 죽이고 듣는다. 이윽고 말을 마친 대통령이 주위를 둘러보며 말한다.

    “연합사령관과 미국 대통령에게도 통보해야겠지만 먼저 의견을 듣겠습니다. 기탄없이 말해주세요.”

    그러자 국방장관과 시선을 마주쳤던 합참의장 장세윤이 먼저 입을 열었다.

    “북진해야 됩니다, 대통령님. 이 기회를 놓치면 안 됩니다.”

    “그렇습니다.”

    육참총장 조현호와 해참총장이 동시에 말했고 안보수석 주명성까지 거들었다. 박성훈의 시선이 국정원장 윤태섭에게로 옮겨졌다. 그러자 윤태섭이 말했다.

    “중국군은 쉽게 물러나지 않을 것입니다. 물러나는 순간에 한반도는 반중(反中) 국가가 됩니다. 이것으로 조선족 자치구는 물론 기타 자치구의 연쇄 독립운동이 일어날 가능성도 있습니다. 주변 열강도 그것을 지원할 것이고요. 따라서 중국군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남북한 연합을 막을 것입니다.”

    “김경식이란 역적의 이용가치가 높아지겠군.”

    박성훈이 혼잣소리처럼 말을 받았을 때 말석의 장군이 헛기침을 했다. 해병사령관 정용우다. 헛기침 소리에 시선을 받은 정용우가 말했다.

    “김정일에게 일단 승낙을 하시고 한편으로 인민혁명군을 동원해서 중국군과 김경식을 공격하는 것입니다.”

    대통령 앞이었기 때문인지 정용우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높았고 얼굴도 조금 붉어져 있다. 정용우가 말을 잇는다.

    “현재 북한은 300여 개의 인민혁명군이 조직되었고 계속해서 솟아납니다. 이건 엄청난 게릴라 부대입니다. 더구나 북한땅 전역에 퍼져 있어서 관리만 잘하면 이동도 필요 없습니다. 이건 마치 벌떼 속에 들어간 꼴이 될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그만.”

    말이 길어지고 있었으므로 합참의장 장세윤이 손을 들어 막았다. 정용우가 벌렸던 입을 다물었을 때 장세윤이 박성훈을 보았다.

    “해병사령관 작전이 최선입니다.”

    군부 쪽은 모두 입을 다물었는데 그것이 군의 입장이라는 뜻이었다.

    그로부터 다시 한 시간 후, 한국 시간으로는 8월1일 금요일 오후 3시30분. 미국 워싱턴 시간은 오전 1시30분이다. 백악관 침실에서 나온 오바마가 가운 차림으로 서재의 벽에 붙여진 화면 앞에 앉는다. 화상 회의를 하려는 것이다. 주위는 조용하다. 마악 잠에서 깨어난 터라 얼떨떨한 상태지만 소파에 등을 붙이고 앉았더니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 든다. 앞으로 회의는 이런 방식으로 각각 떨어져서 편하게 하면 좋을 것 같다. 버튼을 누르자 대형 화면이 여섯 조각으로 분리되면서 각각 참석자 모습이 드러났다. 오바마처럼 자다가 깬 가운 차림은 국무장관 빌 스튜어트. 제임스 코넬 국방장관은 셔츠 차림이고 합참의장 마크 핸슨은 정복을 갖췄다. 그때 오바마가 말했다.

    “자, 한국의 미스터 박과 북한의 크레이지 김의 중요한 대화 이야기를 합시다.”

    이미 비서실장 어윈으로부터 보고를 들은 터라 오바마가 화면을 훑어보며 말을 잇는다.

    “만일 그렇게 되었을 경우인데 득과 실을 따진 후에 우리 방침을 결정해야 되겠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각하, 한국의 미스터 박이 제의를 받아들일 것 같습니다.”

    아래쪽 화면에서 CIA국장 리처드 번스가 먼저 말했다. 번스가 잿빛 눈으로 오바마를 쏘아보았다. 번스가 말을 잇는다.

    “조금 전에 끝난 미스터 박과 최고위층 회의에서도 미스터 김의 제의를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그럼 우린 어떻게 해야 하나?”

    오바마가 화면 전체를 향하고 묻자 국무장관 스튜어트가 먼저 말했다.

    “북진하면 안 됩니다. 막아야 합니다.”

    그러자 CIA국장 번스가 말을 받는다.

    “일본 고위층도 그런 의사를 전해 왔습니다, 각하.”

    “그리고.”

    화면에 쓴웃음을 짓는 국무장관 스튜어트의 얼굴이 보였다. 스튜어트가 말을 잇는다.

    “베이징의 맥마흔이 조금 전에 중국 지도부의 연락을 받았다고 합니다. 미중 양국의 친선과 세계 평화를 위해서는 현 상태가 가장 바람직하다는 것입니다.”

    맥마흔은 베이징 주재 미국대사 아서 맥마흔을 말한다. 오바마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웃는다.

    “빌어먹을 중국 놈들.”

    “이번 요청을 받아들이면 중국은 어떤 대가도 지불할 용의가 있다고 했습니다.”

    “급했군.”

    오바마가 말했을 때 잠자코 있던 제임스 코넬 국방장관이 말했다.

    “각하, 한국은 60년 동맹국입니다. 동북아 역학관계는 대학 신입생도 다 아는 바이지만 이 기회에 통일되도록 놔두는 것이 낫지 않을까요?”

    “제임스, 이 회의 테이프도 보관될 것이니까 당신 의견도 역사에 남을 거요” 하면서 오바마가 얼굴을 펴고 웃었다.

    “빌어먹을. 내가 그 발언을 했어야 되는데, 안타깝군.”

    “자, 제임스. 당신도 착한 발언 한번 했으니까 이제 현실 이야기를 합시다” 하고 국무장관 스튜어트가 말했다.

    전문을 내려놓은 후성궈가 참모장 양훙을 보았다.

    “연합사는 북진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지만 한국군 단독행동 가능성이 있다는군.”

    그는 방금 베이징 군사령부에서 온 암호 전문을 읽은 것이다. 2014년, 첨단 병기와 통신 수단이 발달했지만 그와 동시에 도청과 방어 기술도 향상되었기 때문에 후성궈는 60년 전 6·25전쟁 때 사용했던 암호 전문을 읽는다. 입맛을 다신 후성궈가 말을 이었다.

    “8일 전에 한국군 해병이 치고 올라왔을 때처럼 말야.”

    “그땐 김경식이를 내세워야지요.”

    정색한 양훙이 후성궈를 보았다.

    “2군단을 서부지역에 넓게 배치하는 것이 낫겠습니다. 그 뒤에 우리 군으로 2차 전선을 구축하지요.”

    “그렇게 하도록.”

    “먼저 김경식에게 연락을 하겠습니다.”

    참모장 양훙이 돌아섰을 때 후성궈는 쓴 것을 맛본 것처럼 입맛을 다셨다. 양훙이 말하지 않은 것이 있다. 노련한 양훙이어서 일부러 입 밖에 내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은 이른바 인민혁명군의 존재다. 이제 300개 이상으로 늘어난 곳곳의 인민혁명군은 조직화되기 시작했고 그것은 거대한 게릴라 부대나 같았다. 게다가 전국 도처에 깔려 있어서 북한 땅이 마치 뱀굴처럼 느껴진다. 후성궈가 제일 무서워하는 것이 뱀이다.

    ‘이런 빌어먹을.’

    한미연합군사령관 제임스 우드워드 대장이 잇사이로 욕을 했다. 8월1일 오후 4시 반이 되어가고 있다. 오산의 연합사 지하 벙커 안 사령관실에서 우드워드와 참모장 모건 해리슨 중장 둘이 회의 중이다. 키다리 해리슨이 앉아 있었고 우드워드가 주위를 서성대면서 말을 잇는다.

    “방법은 많아, 모건. 뻥 뚫린 서부 DMZ 지역으로 올라가면 되는 거야. 지금 남해에서 정비 중인 해병 연대를 북상시킬 수도 있고, 한국 놈들, 머리가 좋으니까 별놈의 핑계를 다 대겠지. 귀순하는 북한군을 보호한다느니, 또는 총격전을 꾸미고 북상할 수도 있겠지.”

    “장군, 장군.”

    주위를 왔다갔다 하는 바람에 정신이 사나워진 해리슨이 불렀지만 우드워드는 멈추지 않았다. 참다 못한 해리슨이 자리에서 일어섰더니 머리통 하나보다 더 낮은 우드워드가 내려다보인다. 해리슨과 시선이 마주친 우드워드가 서둘러 의자에 앉는다. 다시 자리에 앉은 해리슨이 입을 열었다.

    “장군, 한국 속담에 대세는 거스를 수 없다는 말이 있어요, 그러니까.”

    우드워드의 시선을 받은 해리슨이 목소리를 낮추고 말을 잇는다.

    “한국군 지휘관들에게 강력히 경고하는 겁니다. 연합사령관 명령을 어기면 즉시 징계하겠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무리한 억제는 하지 맙시다.”

    “무리한 억제라니?”

    “각 부대 앞을 차단한다든지 감시관을 파견한다든지 하는 조치 말입니다. 역효과를 보게 될 겁니다.”

    “빌어먹을.”

    “그러니까 대세에 맡깁시다. 이건 억지로 되는 일이 아닙니다, 장군.”

    “그런데 그 빌어먹을 워싱턴에서는.”

    “아, 그놈들이야 머리 쓰는 일이 본업 아닙니까? 지금도 열심히 계산기를 두드리겠지요. 남북한이 통일되면 핵을 보유한 거대한 군사대국이 탄생할 테니까 말이요. 일본이 지금쯤 오바마 바짓가랑이를 잡고 있을 거요. 시진핑도 열심히 베이징 미국대사관을 통해 메시지를 보낼 것이고, 그래서 결국 우리한테 한국군을 꼼짝 못하게 잡아놓으라고 했지만…….”

    “대세란 말인가?”

    “그렇습니다. 한국군 지휘관들에게 강력히 경고합시다.”

    “놈들이 우리가 워싱턴 지시를 받고 북상을 저지하려는 의도인 줄 알겠군.”

    “김정일이나 박성훈이 통화를 하면서 자신들의 대화가 세계만방으로 다 도청이 될 줄도 알고 있었을 겁니다.”

    “그럼 그 두 남북한 대빵 놈은 워싱턴의 반응도 예상하고 그 수작을 부린 것이란 말인가?”

    “지금 우리가 이렇게 수군거리라는 것도 예상했을지 모릅니다.”

    “닥쳐, 해리슨.”

    이맛살을 찌푸린 우드워드가 의자에 등을 붙이고는 길게 숨을 뱉는다.

    “그럼 우리 오바마도 그쯤은 예상하고 있겠군 그래. 우리가 지금 대세 타령을 하고 있다는 것도 말야.”

    “국무부의 스튜어트나 CIA 번스가 몇 개씩 방비책을 주머니에 넣고 있다가 오바마한테 내놓겠지요.”

    그러자 한동안 해리슨을 바라보던 우드워드가 천천히 머리를 끄덕였다.

    “자, 한미연합사령관 명령으로 한미양국군은 사령관 허가 없이 이동할 수 없다는 작전명령을 내려.”

    “예, 사령관.”

    그러자 우드워드가 입맛을 다셨다.

    “그것으로 끝날 것 같지가 않군.”

    2014년 8월1일 금요일 오후 4시45분, 개전 8일째.

    한국군 제105 기갑사단장 차봉호 소장이 사단장 지휘차인 장갑차 안에서 컴퓨터 화면에 뜬 작전명령을 읽는다. 옆에는 작전참모 윤상기 중령, 뒤쪽에서 참모장 안대길 준장이 무전기를 귀에 붙이고 연대장들과 통신을 하는 중이다. 이윽고 화면에서 시선을 뗀 차봉호가 윤상기에게 말했다.

    “사령관의 지시가 강력하군. 세 번이나 월경금지를 강조했어.”

    윤상기가 앞쪽의 레이더 스크린을 본 채 대답하지 않았으므로 차봉호가 몸을 돌려 안대길을 보았다. 그때 마침 통화를 마친 안대길이 보고했다.

    “각 부대 출동준비 완료했습니다.”

    “시동 건 것도 다 위성으로 잡힐 거야, 그렇지?”

    “무전 내용도 실시간으로 다 듣고 있을 겁니다, 사단장님.”

    차봉호는 10분 전에 합참의장 장세윤한테서 북진하라는 비밀 지시를 받은 것이다. 그것도 작전참모 윤상기의 휴대전화를 통한 지시여서 원칙을 생명처럼 여기는 차봉호가 시궁창에 빠진 표정을 지었지만 내용을 듣더니 의기충천했다. 그때 윤상기가 갑자기 레이더 화면을 보고나서 소리치듯 말했다.

    “820이 좌우로 벌어지고 있습니다!”

    “출발! 선두는 3연대!”

    마침내 차봉호가 지시했다.

    “고속도로로 곧장 진입한다!”

    북진이다. 한국군의 선봉이 되어서 개성-평양 간 고속도로를 타고 북진하는 것이다. 윤상기가 다시 명령을 복창했고 지휘 장갑차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개성공단 북방에 진입해 대기한 지 7일 만에 떠나는 셈이다. 커다랗게 심호흡을 한 차봉호가 차체를 손바닥으로 두드리며 말했다.

    “이런 명예가 없어! 이제 전차 안에서 죽어도 여한이 없다!”

    그 시간에 오산 한미연합사 지휘상황실에서 일제히 탄성이 터진다. 그것은 놀람의 탄성이라는 표현이 맞다. 위성 화면에 생생하게 비친 전차들의 전진은 장관이었다. 개성공단 북방에 7일째 포진하고 있던 한국군 제105기갑사단이 일제히 북상하고 있는 것이다. 한미연합사 사령관으로부터 월경금지 명령이 세 번째 내려온 다음이었으니 이것은 명백한 명령불복종이다. 그러나 보라. 위성화면 위쪽 개성-평양 간 고속도로를 차단하고 있던 북한군 제820기갑군단이 동시에 좌우로 벌어지면서 통로를 비워준 것이다. 연합사 지휘관들의 탄성은 820의 움직임 때문이기도 했다.

    “중지시켜!”

    연합사 참모장 모건 해리슨의 참모 하나가 버럭 소리쳤지만 호응하는 장군은 없다. 그러고 보면 소리친 본인도 곧 입맛을 다시면서 외면하고 있다.

    “어, 빠른데.”

    공군 제복을 입은 한국군 소장 하나가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 감동을 이기지 못해서 뱉는 말이다.

    “820이 좌우에서 지원하면 무적 기갑군단이 되겠다.”

    화면에 박혀 있던 한국군 장성들의 얼굴에 자부심의 기색이 덮였다. 그때 해리슨이 소리쳤다.

    “어쨌든 공군은 대기시켜!”

    한미연합사 전폭기는 이미 한반도 영공에서 24시간 선회하는 중이다. 모두의 시선을 받은 해리슨이 어금니를 물었다가 풀면서 말을 잇는다.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서 공중 지원을 하도록, 다만 영공을 침범하면 안 된다!”

    그러나 위에서는 다 내려다보인다. 한국군 KF-24 기종에 탑재된 공대지, 공대공 미사일 사거리는 한반도 상공에서도 평양까지 닿는다. 해리슨의 시선이 한국군 육참총장 조현호하고 우연히 마주쳤다.

    “갓뎀.”

    했지만 조현호가 외면하는 바람에 혼잣말처럼 뱉는 말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해리슨의 표정도 덤덤하다. 화난 것 같지가 않다.

    “막아!”

    김경식이 상황 스크린을 노려보며 소리쳤다. 105기갑사단을 가리키는 검은 줄이 개성-평양 간 고속도로에 그려져 있다. 위치는 개성 북방 금천을 조금 지났을 뿐이지만 위협적이다.

    “42사단! 141경보병사단! 그리고 제65경비여단이 막아라!”

    김경식의 목소리가 상황실을 울렸다. 참모들이 제각기 분주하게 무전기를 잡고 부르고 소리치는 통에 상황실 안의 분위기는 급박해졌다. 그러나 뒤쪽에 모여선 원로급 장성들의 표정은 무겁다. 무력부장 성종구와 부부장 심철 상장 등은 입을 다물고 스크린을 본다. 그들의 시선이 닿은 곳은 평산 아래쪽 고속도로다. 그곳에 주둔했던 820기갑군단이 좌우로 벌려 105기갑사단에 길을 터주는 모양새를 하고 있는 것이다. 2군단 소속 42사단과 141경보병사단, 제65경비여단은 105기갑사단이 북상하는 주변에 배치되어 있었지만 그야말로 달걀로 바위 치기다. 820전차군단이 붙어도 105기갑사단을 깰 확률이 낮은 상황인데 둘이 연합한 것이다. 그때 김경식이 버럭 소리쳤다.

    “북침이야! 제2항공사단을 출동시켜!”

    그 순간 상황실 안이 조용해졌다. 제2항공사단은 함경남도 덕산에 있는데 그곳만이 김경식이 장악한 항공사단이다. 제1, 제3 항공사단은 김정일이 지휘한다.

    “공군은 놔둡시다.”

    잠깐 정적을 깬 사내는 무력부장 성종구다. 성종구가 김경식을 향해 똑바로 섰다.

    “지금도 남조선 상공에 전투기가 떠 있는데 떴다간 다 당하게 될 테니깐.”

    그러고는 성종구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웃는다.

    “그냥 활주로에 놔 보이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오, 동무.”

    “중국군 쪽에 연락해!”

    와락 몸을 돌린 김경식이 부하 장군에게 소리치는 것으로 제2항공사단의 전투기 출격은 보류되었다. 다시 상황실이 평소의 수선스러운 분위기로 돌아갔을 때 심철이 성종구 옆으로 다가가 낮게 말했다.

    “떴다면 다 격추되었을 것입니다. KF-24하고는 미그기가 상대가 안 됩니다.”

    “김 대장의 의도는 다른 데 있소.”

    팔짱을 낀 성종구가 쓴웃음을 짓고 말을 잇는다.

    “김경식은 작은 싸움과 정치에 능한 인간이지. 제2항공사단 전투기가 다 떨어지기 전에 중국 랴오닝성 군구의 중국군 항공사단 전투기들이 벌떼처럼 한반도 상공으로 날아왔을 거요.”

    심철은 심호흡을 했다. 랴오닝성 군구에는 중국군 공군 제1, 4, 11, 21, 30의 5개 항공사단이 배치되어 있는 것이다. 최신예 전투기만 수백 대가 된다. 심철이 잇사이로 말한다.

    “김 대장이 중국군을 믿고 저렇게 당당하군요.”

    그때 김경식이 다가왔으므로 둘은 긴장했다. 다가선 김경식이 핏발 선 눈으로 둘을 보았다.

    “이동 준비를 끝냈으니 갑시다.”

    “어딜 말이오?”

    성종구가 묻자 김경식이 어깨를 으쓱대다 내리면서 말했다.

    “중국군 지휘부와 합류하려는 겁니다.”

    그렇다. 제55호위대 벙커는 이제 105기갑사단과 가까운 거리에 있다.

    무전기를 귀에서 뗀 이동일이 손목시계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오후 5시15분이다.

    “5시 반에 공격이다.”

    그러자 황찬우가 뒤쪽의 이 하사에게 낮게 소리쳤다.

    “이 하사! 5시 반에 공격이다!”

    지시하는 황찬우도, 복창하는 이 하사의 표정에도 여유가 있다. 이곳은 평양특별시 동쪽의 강동군이다. 이동일과 황찬우가 나란히 엎드려 있는 곳은 물이 마른 개울가의 제방 위였는데 앞쪽 마을에 중국군이 득실거리고 있다. 주민은 거의 보이지 않고 중국군만 우글거리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가옥 사이에 불쑥불쑥 튀어나온 포신이 보인다. 대포다. 한동안 옆쪽을 바라보던 이동일이 말했다.

    “전국의 인민혁명군이 동시에 중국군과 인민군 부대를 공격할 거야.”

    “인민군 부대라면.”

    머리를 든 황찬우가 이동일을 보았다.

    “김정일 측 부대까지 말입니까?”

    “그렇다.”

    “그럼….”

    “인민혁명군은 이제 북한군에 속하지 않겠다는 표시야. 김정일군도, 그렇다고 김경식군도 아니란 말이지. 이번 공격으로 그것을 분명하게 보이는 거야.”

    “… ….”

    “한국군과 중립군이 우방이라는 것이지.”

    그래서 이동일과 해병 31명도 강성일의 부대와 함께 지금 중국군 포병부대를 공격하려는 것이다. 앞쪽에 포진한 중국군은 제39집단군 소속의 포병여단으로 이동일은 우측 끝부분을 맡았다. 지금 인민혁명군 6개 부대 2000여 명이 사방에서 포위한 채 시간이 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망할 자식들. 주민을 총알받이로 삼을 작정이었나? 마을에다 포병대를 풀어놓다니.”

    황찬우가 혼잣소리로 투덜거렸다. 주변이 평지여서 포병여단을 배치할 곳을 찾다가 이곳으로 결정한 모양인데 포신이 모두 평양 쪽을 향하고 있다. 이동일이 다시 손목시계를 보았다. 5시25분이 되어가고 있다. 이동일이 말했다.

    “5분 전이다, 준비.”

    강동군의 제39집단군 소속 187포병여단 주둔지에서 푸른 섬광이 반짝였을 때 후성궈는 상황실에서 차를 마시던 중이었다. 중국 인민군 또한 위성을 통해 작전지역을 훑고 있었는데 담당 군관이 소리쳐 보고하기도 전에 후성궈가 보았다. 마을에 포진한 187포병여단은 사방에서 공격을 받는 중이었다.

    “인민혁명군입니다.”

    참모장 양훙이 잇사이로 말했다. 중국군의 공식명칭은 인민해방군이다. 그 순간 양훙이 북한의 게릴라 부대를 인민혁명군으로 부른 자신을 깨닫고는 쓴웃음을 지었으나 후성궈는 상황 화면에 정신이 팔려 의식하지 못했다.

    “빠져나가지 못하겠다.”

    후성궈가 잇사이로 말했을 때 참모 하나가 건의했다.

    “제116기계화보병사단의 제3연대가 가장 가깝습니다. 지원을 보내는 것이….”

    “보내!”

    던지듯이 말한 후성궈의 시선이 남쪽으로 내려왔다. 개성 위쪽 고속도로다. 후성궈의 시선을 살핀 참모가 위성 각도를 조절해 그쪽을 비췄다. 이제 105기갑사단은 평산을 오른쪽에 두고 북상하고 있었는데 인산 근처에서 2군단 소속 42사단과 부딪칠 것이었다. 거리는 이제 15㎞ 정도로 가까워졌다.

    “돌파할 것입니다.”

    파죽지세로 북진해오는 남한의 기갑사단을 노려보면서 양훙이 말했다. 위성에서 찍은 사진이지만 탱크의 캐터필러까지 선명하게 드러났다. 한국산 M1A1 전차는 K-1 등의 시행착오를 거쳐 세계 최강의 MBT로 인정받았는데 미군의 M-1에이브럼스 전차의 개량형이다. 지금 125㎜ 할강포를 탑재한 M1A1 700여 대가 시속 60㎞의 속력으로 북진하고 있다. 그리고 그 뒤를 장갑차 대열이 따르고 있다. 보병과 지원부대다. 그 뒤쪽에 시선을 준 후성궈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820기갑군단이다. 5개 전차여단으로 구성된 820기갑군단의 거대한 대열이 마치 105전차사단을 호위하는 것처럼 따르고 있다. 그때 참모 하나가 다가와 후성궈에게 말했다.

    “김경식 대장이 오셨습니다.”

    후성궈가 머리를 들었다. 그 순간 벙커의 문이 열리면서 김경식을 선두로 성종구, 심철 등 제55호위대 벙커에 진을 치고 있던 북한 반란군 수뇌들이 들어섰다. 모두 20여 명이나 된다. 이제 평양 남동쪽 제55 호위대 벙커는 비었고 중국군 지휘부와 통합된 것이다. 후성궈가 북한군 지휘관들과 차례로 악수를 하면서 웃었다.

    “이제 하나씩 통합되는군요. 이건 좋은 현상입니다.”

    그것이 조금 전에 화면에 뜬 105기갑사단과 820기갑군단에도 해당되는 말이어서 참모장 양훙은 맞장구를 치지 못했다. 중국군 사령부는 평양특별시 북방의 평안남도 순천 근처여서 김경식 일행은 서해안 쪽으로 돌아왔다. 김경식이 번들거리는 눈으로 후성궈를 보았다. “곧 남조선 전차사단과 부딪칠 테니 동맹군의 공군 지원이 필요합니다.”

    후성궈가 힐끗 상황 화면을 보았다. 위성화면은 이제 다시 187포병여단을 비추고 있다. 공격을 받은 여단의 남쪽과 서쪽 방어선이 뚫렸다.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섬광이 작렬했고 포탄이 터지는 바람에 화면에 가득 불덩이가 덮여 있다. 화면을 본 김경식과 북한 지휘부가 말을 잃었고 참모장 양훙의 목소리가 정적을 깨뜨렸다.

    “116사단이 출동했습니다만 30분쯤 걸릴 것 같습니다.”

    30분이면 상황이 종료될 것이다. 그리고 그때는 105기갑사단과 북한 2군단 소속 42사단이 안산 북방의 고속도로에서 충돌하게 된다. 이곳은 인민혁명군이다. 중국군과 북한 반란군 지휘부는 함께 화면을 응시한 채 한동안 침묵했다.

    “꽈앙!”

    던진 수류탄이 탄약고 안으로 굴러 들어가더니 대폭발이 일어났다. 엄청난 폭음과 함께 포탄이 연쇄 폭발을 일으켰는데 파편이 포탄처럼 사방으로 쏟아졌다. 폭음이 수십 번이나 계속해서 울리는 바람에 이동일은 105㎜ 곡사포 포신에 몸을 붙인 채 엎드려 있어야만 했다. 쏟아진 파편이 곡사포에 맞고 날카로운 파열음을 내며 튕겨났다. 공격해오던 혁명군도 모두 엎드려 있다.

    이것으로 187 포병여단은 궤멸되었다. 사방에서 기습해온 해방군을 당해낼 수가 없는 것이다. 북한은 정예, 정규군이 따로 없다. 북한 매체가 선전해온 대로 전 인민이 군인이며 정예다. 남자가 병신이 아닌 이상 평균 10년의 군 생활을 하는 국가는 세계에서 북한이 유일하다.

    그러니 예비군 중 가장 나이 든 50대 후반의 노농적위대원도 총을 쥐어주면 정예가 되는 것이다. 거기에다 이 순간 혁명군은 새 세상, 잘 먹고 잘살기 위해서 전쟁을 한다는 의식이 박혀 있다. 그동안 억눌렸고 굶주렸던 시절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탄약고 폭발이 그친 순간 이곳저곳에서 함성이 일어났다.

    “돌격!”

    “돌격!”

    모두 한국말이다. 아우성치듯 누구를 부르는 사람도 있고 이겼다고 외치는 사람도 있다. 이제는 요란한 소총 발사음이 사방에서 울린다. 몸을 일으킨 이동일이 옆에 선 안 하사를 보았다.

    “이긴 것 같구나.”

    폭음에 귀가 먼 모양인지 안 하사가 시선만 주었으므로 이동일이 소리쳐 말했다.

    “이겼단 말이다, 혁명군이.”

    그래도 안 하사는 눈만 껌벅였다.

    제42사단 3연대장 이윤성 대좌가 장갑차에 오르면서 소리쳤다.

    “포병대대가 먼저 쏠 테니까 그때 공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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