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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몰랐던 한국, 한국인

  • 고승철│저널리스트·고려대 미디어학부 강사 koyou33@empas.com

우리가 몰랐던 한국, 한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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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금관을 보면 화려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 조형미와 세공 기술은 세계미술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만하다. 이 금관이 지역적으로는 신라에만, 시기적으로는 5~7세기에만 있었다는 점도 특이하다. 7세기 이후에 중국 문물이 밀려온 것과 관련이 있는 듯하다. 신라 왕은 금관을 실제로 썼을까. 무덤 부장품으로 제작됐을 뿐이라는 학설이 있다. 특별한 의례 때 썼을 것이라는 학설도 있다.

아무나 못 들어간 창덕궁 후원

한국의 궁궐 가운데 유일하게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것은? 창덕궁이다. 동북아시아 궁궐 가운데 보기 드물게 친(親)자연적으로 지어진 건축물이다. 조선의 대표적인 궁궐인 경복궁이 정도전을 위시한 신하들에 의해 설계됐다면 창덕궁은 태종의 의도에 따라 꾸며졌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창덕궁은 왕의 집무 공간인 외전을 왼쪽 밑으로 몰아놓고 휴식 공간인 정원을 넓게 만든 것이 특징. 자연 지형에 맞춰 짓다 보니 비대칭형이 됐다. 창덕궁의 트레이드마크는 후원이다. 아무나 들어갈 수 없다는 뜻에서 금원(禁苑) 또는 비원(秘苑)으로 불렸다. 후원의 마지막 부분에 있는 옥류천은 절경을 이룬다. 임금과 신하가 술잔을 띄우고 놀았다는 소요암과 정자를 바라보면 무릉도원이 연상된다.

불교 사찰은 울긋불긋한 단청 색상으로 눈을 어지럽게 한다. 승려들이 수행하는 곳인데 왜 그리 화려할까. 이 책의 저자는 “절은 극락과 같은 곳인데 사바세계와 본질적으로 달라야 하므로 장엄하고 화려하게 꾸민 것”이라면서 서양의 교회나 이슬람 사원이 웅장한 것도 같은 이치라고 설명했다. 한국 사찰의 기본 구조는 입구에서부터 당간지주-일주문-천왕문-불이문(不二門)-대웅전 등의 건축물을 갖추고 있다. 일주문을 들어서면 속세와 이별한다는 뜻이다. 천왕문에 선 험상궂은 장수 4명은 악귀를 쫓는 천왕이다. 얼굴은 중앙아시아인이고 옷은 원나라 장수의 갑옷을 입었으며 손에는 조선 검을 들어 퓨전 문화를 상징한다.

판소리는 세계에서 유일무이(唯一無二)한 ‘1인 오페라’다. 가수 혼자서 온갖 인물 역할을 다 맡으니 독특하기 그지없다. 반주자도 고수 한 사람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무형유산으로 등재됐다. 판소리는 굿판에서 유래됐다. 악사들의 여흥 노래가 점차 발전해 17세기 후반에 판소리 형식이 태동했다.



밥 먹으려 반찬이 차려지는 한식

한식의 특징은 밥을 먹기 위해 반찬이 차려진다는 점이다. 한식의 차림은 ‘공간 전개형’이다. 한 상에 모두 차려진다는 뜻이다. 양식이나 중식은 시차를 두고 한 접시씩 음식이 나오는데 이런 ‘시간 전개형’과는 다르다. 한식은 입맛에 따라 그때그때 반찬을 골라 먹을 수 있어 좋다. 숟가락을 많이 쓰는 이유는 국물과 찌개를 즐기기 때문이다.

무당이 굿판에서 춤을 추다가 엑스터시에 도달하는 현상을 ‘신명 난다’고 한다. 한국인들은 무당이 아니더라도 신명나게 일하기도, 놀기도, 공부하기도 한다. 2002년 월드컵 축구대회에서 한국팀은 신명 난 플레이를 벌인 끝에 4강까지 올랐다. 한국인의 내적 에너지가 폭발하면 놀라운 성과를 나타내는 것이다. 3세기에 중국의 진수는 저서 ‘삼국지’에서 “한국인들은 하늘을 숭배하는 축제를 할 때는 음주가무를 하면서 며칠 동안 논다”고 썼다. 이런 면모는 오늘날까지 면면히 이어져온다.

세계의 문자 가운데 한글만이 창제자, 반포일, 창제 원리가 명확하다. 한글의 자음은 발성기관의 모양 등을 분석해 만들었다. 모음은 점(·) 하나에 ㅡ, ㅣ를 결합한다. 각각 하늘, 땅, 인간을 상징한다. 가장 간단한 모음체계로 가장 복잡한 외국어 발음까지 표기할 수 있다. 휴대전화 시대에 한글은 간편하게 작성할 수 있는 장점이 드러나면서 과학적 체계가 얼마나 튼튼한지를 세계 만방에 보여주었다.

세계 최대의 역사서는? ‘승정원일기’라고 한다. 승정원은 조선 국왕의 비서실 역할을 하던 기관이다. 이곳 사관들이 임금의 일거수일투족을 세세히 적었는데 승정원일기는 바로 이 기록물이다. 왕의 발언을 적은 것은 물론 당시에 동영상 촬영장치가 없었으므로 왕의 동작, 분위기 등을 묘사하기도 했다. 날씨를 분류하는 방법도 100여 가지였다. 별의 움직임도 자세히 기록했다. 사대부가 보내온 상소문은 전문을 수록했다. 승정원일기의 글자 수는 2억4000만자라고 하니 ‘조선왕조실록’의 4배나 되는 방대한 자료다. 왕조실록은 한글로 모두 번역돼 국사 연구에 큰 도움을 준다. 승정원일기는 번역 중인데 다 마치려면 몇 십 년이 걸릴 전망이다.

한국인만큼 조상에게 정성스럽게, 부지런히 제사를 지내는 민족이 있을까. 설, 추석 차례는 물론이요, 기(忌)제사까지 꼬박꼬박 올리는 한국인에게 제사는 생략할 수 없는 풍습이다. 유교를 통치원리로 삼은 조선이 국왕에게 충성하고 부모에게 효도하는 덕목을 강조하기 위해 권장한 의례가 제사다. 이 책 저자는 종교적인 관점에서 제사는 간접적인 영생법이라 정의 내린다.

신동아 2011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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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승철│저널리스트·고려대 미디어학부 강사 koyou33@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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