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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연재 | 전윤수의‘그 영화’

그 남자의 위로

  • 전윤수│영화감독·아주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dkall@ajou.ac.kr

그 남자의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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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의 위로

영화 ‘라스베가스를 떠나며’

살다보면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많다. 그리운 사람과 이별하고, 돌이킬 수 없는 실수로 후회하고, 죄의식과 죄책감에 사로잡혀 벼랑 끝에 내몰리기도 한다. 다시 일어설 힘도 없을 때 누군가 “괜찮아, 네 탓이 아니야. 네 탓이면 어때. 그래도 난 널 사랑해”라고 말해준다면 얼마나 큰 위로가 될까? 커튼을 통과한 은은한 햇빛 같은 시선, 내 손을 잡아주는 손길, 가슴에 안고 토닥토닥 등 두드려주는 누군가의 위로가 그립다.

얼마 전부터 내가 변했다는 느낌을 자주 받는다. 별것도 아닌 자극에 자주 훌쩍대는 게 아주 가관이다. 영화와 TV 프로그램은 물론이고 학생들이 제출한 창작 과제물도 내 눈물샘을 자극한다. 뭉클해 눈물까지 보이면서도 과제를 냉정하게 평가하고 있는 나의 이율배반적인 모습에 스스로 놀라기도 한다. 분명한 건 하품할 때 흘리는 자연발생적 눈물보다 정서적인 눈물이 몰라보게 많아졌다는 것. 눈물의 양이 적어진 탓은 아닐 텐데 열 살이 넘은 후에는 울었던 기억이 별로 없다. 정서가 메마르고 감성을 제어하는 이성의 힘이 강해진 탓이지만 무엇보다 가장 큰 이유는 ‘눈물은 나약함의 상징’이라는 진부한 고정관념 때문이다.

눈물의 나약함을 받아들이자

난 확신했다. 누군가에게 위로받는다는 것은 스스로 나약함을 인정하는, 매우 굴욕적인 행동이라는 것을. 난 어리석었다. 사랑받고 있다는 증거를 왜 부정하고 회피했을까? 내 데뷔작 ‘베사메무쵸’(2001)에 등장하는 철수(전광렬 분)도 눈물에 인색한 가장이다. 철수에게 한 여름 퍼붓는 소나기처럼, 피할 수 없는 위기가 닥쳐온다. 친구 빚보증으로 어마어마한 채무를 상환해야 하는 시련을 겪게 된 것이다. 게다가 한 달 후 온 가족이 아파트에서 쫓겨나며, 설상가상 직장마저 잃는다.

네 아이와 사랑하는 아내 영희(이미숙 분). 어깨가 무거운 가장, 철수에게 아파트는 가족을 지키는 최후의 방어벽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아파트만은 지켜내야 한다. 한 걸음도 내디디기 어려운 때 세상은 영희에게 치명적인 유혹을 한다. 어린 시절 영희를 짝사랑했지만 이제는 대기업의 CEO가 된 ‘선배’가 돈을 빌리러 온 영희에게 제안한다. 자신과 하룻밤을 보내면 1억원을 주겠다고.

영희는 생각할 가치도 없는 제안을 단박에 거절하지만, 무섭게 다가오는 빚 상환 날짜에 몰리게 되면서 갈등한다. 결국 하룻밤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빚을 갚고 아파트를 구한 뒤 가족들은 예전의 평화를 되찾는다. 하지만 영희는 남편에게 1억원의 제안을 고백하고 괴로움에 집을 나간다.

아내가 없는 어느 여름밤. 철수는 큰 아들 앞에서 처음으로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 말한다. “아빤 강한 사람이 되고 싶었어. 그래서 사람들 앞에선 절대 약한 모습 안 보였어. 형님이 돌아가셨을 때도, 네 할머니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도 아빤 울지 않았어…근데…왜 지금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다. 아빤 정말 잘하려고 했거든. 잘하려고 열심히 했어…정말 열심히 했는데…아빤 니들한테 상처만 주고 엄말 지켜주지 못했어. 도대체 왜 이렇게 되어버린 거지, 왜….”

아빠가 흘린 ‘남자의 눈물’에 공감한 아들은 조용히 흐느끼며 아빠의 상처를 위로한다. 두 남자는 눈물로 고통을 나누며 성장한다.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집필할 당시 나는 서른한 살, 미혼이었다. 가족과 부부와 가장이라는 키워드를 영화로 녹여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돌이켜보면 ‘눈 가리고 외줄타기’한 느낌이지만 이 작품을 통해 위로와 눈물의 가치, 측은지심이 갖는 정서적 에너지를 알게 됐다. 그 후 나는 결혼을 했고 아이들을 얻었다. 그리고 몇 작품을 통해 정서적 성장을 경험했다. 요즘 부쩍 많아진 내 눈물이 그것을 증명한다.

아버지를 위로한 내 영화

몇 해 전 암으로 돌아가신 아버지가 떠오른다. 떠나시기 몇 달 전, 아버지는 아들의 영화를 보기 위해 지팡이를 짚고 세 번이나 극장을 찾았다. 위에 퍼진 암세포 때문에 식욕을 잃었지만 내가 감독한 영화 ‘식객’의 화려한 음식에 군침이 당기셨다고 했다.

‘초대박’은 아니지만 영화는 흥행에 성공했다. 내가 연봉 300만원의 조감독 생활을 할 때는 ‘취직 언제 하냐’고 연일 걱정만 하시던 어른이니, 오죽 기쁘셨을까? 식객이 300만 관객을 막 넘었을 때 아버지에게서 전화가 왔다. ‘장하다’고 칭찬하셨다. 아들이 만든 영화가 흥행에 성공했으니 장하다고 말씀하시는 건 당연한데 칭찬의 뉘앙스가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알고 보니 원인은 신문에 실린 ‘식객’ 관련 기사에 있었다. 기사를 찾아보니 기가 막혔다. 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애국자가 됐고 나를 칭찬하는 댓글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었다. 아래는 그때 그 기사의 일부를 발췌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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