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9월호

가정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란 여자랑 결혼하지 마라

  • 이장혁│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 janglee@korea.ac.kr

    입력2011-08-19 13: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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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정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란 여자랑 결혼하지 마라
    엄친아(엄마친구 아들)’라는 새로운 용어가 생긴 지도 여러 해. 비교의 대상이 되고 싶지는 않지만, 이런 완벽한 조건을 갖춘 이성과 결혼하고 싶다는 바람이 투영된 용어 아닌가 싶다. 지금 내 나이는 조선시대였으면 손자를 볼 수도 있는 40대 중반. 아직까지 결혼하지 않은 친한 친구들을 보면 가끔은 ‘배우자 없는 삶이 너무 쓸쓸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때때로 아내와 부딪칠 때는, ‘아예 혼자 사는 게 속 편하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한다. 특히 빨래 문제에서 그렇다. 나는 유전적(?)으로 후각이 발달해, 빨래가 제대로 건조되지 않았을 때 나는 ‘쿰쿰한 냄새’에 굉장히 민감하다. 아내에게 한 소리 하면 집사람은 “빨래 건조 정도는 대수롭지 않은 문제인데 왜 시비냐”는 투다. 올여름에는 유난히 비가 많이 와 빨래 건조가 까다로웠던 탓에 더욱 골치 아팠다.

    절대조건보다 중요한 상대조건

    평생 독신을 고집하지 않는다면 누구나 결혼 또는 동거를 생각한다. 장기 동거도 결혼과 비슷한 상황을 연출한다. 개인의 상황을 독신 또는 결혼이라는 두 가지로 나누고, 이때 사회적 계약인 ‘결혼’을 지극히 개인의 선택이라는 관점에서 한번 과학적으로 살펴보자.

    미혼 남녀가 결혼하는 것은, 결국 결혼하는 것이 미혼으로 사는 것보다 더 큰 가치를 부여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일부일처제하에서는 각각 한 명의 이성과만 혼인 관계를 유지한다.



    결혼을 상품 구매와 비교하면, 결혼과 비슷한 성격의 구매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까다롭다. 한번 구매하면 반품과 교환이 힘들고, 여러 동종 상품 중 하나만 사야 하며, 평생 구매할 기회가 많지도 않고, 구매 후 지속적으로 비용이 들어간다. 이처럼 중요한 선택이다 보니 많은 사람이 결혼이라는 선택에 공을 들인다.

    결혼 상대를 고를 때 만족스러운 결혼생활을 위해서 꼭 염두에 두어야 할 점은 무엇일까? 배우자의 성격, 외모, 재력, 직업, 학력, 또는 체력…. 물론 절대적인 조건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조건이다. 다른 이와 비교했을 때 어느 정도냐 하는 것이다.

    이 상대적인 조건은 바로 당신이 배우자를 누구와 비교하느냐에 달려 있다. 그런데 문제는 결혼 전 배우자 비교 대상과 결혼 후 비교 대상이 다르다는 것이다. 결혼 전에는 외모, 재력, 직업, 학력 등 조건(상품으로 간주할 때는 상품의 속성)을 기준으로 결혼 상대끼리 비교한다. 그런데 결혼 후에는 그 비교 대상이 남자의 경우에는 본인의 어머니(배우자의 시어머니), 여자의 경우에는 아버지(배우자의 장인)로 바뀐다.

    결혼을 고려 중인 남성에게 묻겠다. 상황을 아주 단순하게 가정해보자. 모든 조건이 똑같은 두 여성이 있다. 이 중 한 여성의 아버지(미래 장인어른)는 퇴근 후 바로 귀가하고 주색잡기를 멀리하는 아주 가정적인 분이다. 이와 달리 다른 한 명의 아버지는 귀가 시간이 늦고 술을 사랑하며 몇 차례 외도로 미래 장모님의 속을 썩였다. 당신이라면 어떤 여성을 선택하겠는가?

    자신의 이성 부모가 배우자 비교 대상

    가정 학자 럭키(Luckey)는 1960년 “부모와 자식의 관계가 자식의 결혼 행복에 큰 영향을 준다”는 것을 밝혀냈다. 가정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란 딸과 결혼한 경우 신혼여행 직후부터 불행이 시작될 가능성이 크다. 그 이유는 아내가 자신 남편의 비교대상으로, 가정적인 친정아버지를 설정하기 때문이다. 신혼여행은 솜사탕처럼 달콤한 새로운 출발을 기념하는 시간이 아닌, 서로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고 그 실상에 실망하는 발견의 시간이 된다. 앤더슨과 설리반의 1993년 연구에 따르면, 소비자의 구매 만족도는 해당 상품에 대한 기대 수준, 상품을 사용하면서 주관적으로 지각한 품질의 차이에 따라 결정된다. 신랑이 자신의 아버지만큼 자상하게 해주지 못하는 순간부터 결혼생활에 대한 만족도는 떨어진다.

    인간의 가치 판단이 상대적이라는 것은, 1979년 카너먼, 트버스키 교수가 발표한 ‘기대 또는 전망 이론(Prospect theory)’중에서 ‘준거점 의존성(reference dependency)’이라는 개념으로 잘 설명된다. 인간은 절대적인 가치 판단보다는 상대적인 가치 판단에 익숙하다. 그래서 잘난(?) 남편, 부인의 사례를 접하게 되는 부부동반 모임은 부부싸움의 단서를 제공하는 것이다.

    여성도 비슷하다. 본인을 희생하며 가정에 몰두한 헌신적인 어머니를 둔 신랑감과 가정보다는 바깥일에 더 많은 시간을 보내신 어머니를 둔 신랑감이 있다면 보통 전자 신랑감을 선호한다. 비슷한 연유로 가정적인 어머니를 둔 신랑은 신혼여행을 떠나는 순간부터 어머니를 기준으로 신부를 비교한다. 그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하다.

    문제는 이런 가정적인 아버지를 둔 딸, 가정에 헌신하는 어머니를 둔 아들의 경우 소위 객관적인 조건(심지어 성격 및 체력까지)이 좋은 일등 신부, 신랑감일 확률이 높다는 사실이다. 부모와 자식 관계에서, 아무래도 어머니와 아들, 아버지와 딸의 관계가 돈독해지기 쉽다. 이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서 볼 수 있듯 동성의 부모를 경쟁자로 생각하고 이성의 부모와의 관계 형성이 더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모자 혹은 부녀 관계가 돈독한 자녀일수록, 부모의 관심과 사랑을 더 받게 되고 부모의 관리도 더 많이 받는다. 키, 치아, 피부, 스타일, 성적 등은 부모의 관리가 많이 좌우하는 부분이다. 그만큼 모자 혹은 부녀 관계가 돈독한 자녀가 더 좋은 스펙을 가진 ‘더욱 결혼하고 싶은 이성’이 되는 것이다.

    행복한 결혼 생활을 위해서는 배우자의 절대적인 조건만을 볼 것이 아니라 그 부모를 파악해야 한다. 예를 들어 여자의 경우 미래 시어머니가 될 배우자의 어머니가 가능하면 집안일에 신경을 덜 쓰는 분이어야 좋다. 그래야만 시어머니와 비교해 훌륭한 아내로 인정받을 가능성이 높다. 이는 결국 남편의 결혼 만족도를 높여주어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기에 쉬워진다.

    부녀 관계 좋으면 객관적으로 좋은 배우자감이지만…

    남자의 경우에는 미래 장인어른이 될 배우자의 아버지가 가능하면 덜 가정적일수록 좋다. 그래야만 본인이 좋은 남편으로 자리매김하기 쉽다. 이때 예비 장모님이 아주 가정적이라면 금상첨화다. 아내는 친정어머니를 기준으로 가정을 돌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결혼 전 배우자의 부모에 대해 잘 알기 어려운 경우에는, 결혼 후 일정 기간 양가 부모와 거리를 두고 새로운 가정을 꾸리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서로 부모를 기준으로 비교할 기회가 줄어들면, 그만큼 분란이 발생할 기회도 줄어들기 때문이다.

    가정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란 여자랑 결혼하지 마라
    李章赫

    1967년 서울 출생

    서울대 경제학과 졸, 프랑스 ESSEC 석·박사

    현 한국마케팅학회, 하이테크마케팅그룹, 한국EU학회, 서비스마케팅학회 이사

    현 CJ오쇼핑, 넷피아, 한국인삼공사, LG디스플레이 자문교수, 뉴젠팜 사외이사

    2010 한국마케팅학회 우수논문상, 2009 SK 우수논문상, 고려대 기업경영연구원 우수논문상 수상

    블로그: blog.naver.com/bodycombat, 트위터: janglee11


    이미 결혼한 경우에도 방법은 있다. 결혼생활에서 불평이 생기면 대부분 배우자를 ‘인간 개조’하려 노력하지만, 잘 바뀌지 않는다. 이보다는 본인의 준거점(비교 대상)을 바꾸는 것이 쉽다. 살림 솜씨가 떨어지는 아내를 살림의 달인인 어머니와 비교하며 불평하기보다는, 아내보다 살림 솜씨가 더 떨어지는 처형 또는 처제와 비교하는 것도 방법이다. 살림 못하는 처형 또는 처제가 없다면 살림 못하는 친구 부인이 대상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무수한 반복적인 경험에 의해 무의식 중에 내재된 기준을 바꾸기는 쉽지 않다. 나 역시 20년 가까이 결혼생활을 이어오고 있지만, 빨래에 대한 기준을 아직도 못 바꿨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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