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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윤수의‘그 영화’ ②

감독도 모르게 사라진 8분

  • 전윤수│영화감독·아주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dkall@ajou.ac.kr

감독도 모르게 사라진 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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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도 모르게 사라진 8분

뤽 베송 감독의 영화 ‘제5원소’ .

1997년 영화 ‘제5원소’가 국내에서 개봉됐다. 이 작품은 ‘레옹’으로 최고의 인기를 얻은 뤽 베송 감독의 작품으로 브루스 윌리스와 밀라 요보비치가 출연해 큰 관심을 끌었다. 뤽 베송 최초의 SF물 ‘제5원소’는 당시 칸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됐다. 온갖 종류의 비행선과 무기, 화려한 의상과 볼거리 있는 세트로 장대한 스케일을 제공한 이 작품은, 다양한 인종과 종족을 선보여 인종과 국가의 개념이 희미해진 미래의 풍경을 흥미롭게 보여줬다.

한 국내 영화사는 ‘제5원소’ 수입을 위해 무려 550만달러를 들였다. 이 덕에 ‘제5원소’가 한국에서 개봉됐고, 국내 개봉 전 뤽 베송 감독이 한국을 방문해 기자회견을 했다. 그런데 뤽 베송이 기자회견 중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사건이 벌어졌다. 자신의 작품 ‘제5원소’ 한국 상영판이 사전 허락도 받지 않은 채 8분가량 잘렸다는 소식을 그제야 들은 것이다.

이는 당시 한국의 문화적 수준을 전세계에 홍보한 아주 낯 뜨거운 사건이다. 8분이면 원작을 훼손할 수 있는 긴 시간이다. 게다가 감독은 어느 장면의 어느 컷이 잘려 나갔는지도 모른다. 당시 감독은 눈이 감긴 채 자신의 팔다리가 잘려 나가는 고통을 느꼈을 것이다.

상영횟수 늘리려 장면 삭제?

잘려 나간 8분. 당시 영화 수입 담당자들은 공연윤리위원회 등급심사에서 ‘중학생 관람’을 받기 위해 상징적인 성(性) 묘사 장면을 삭제했다고 변명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그들이 긴 러닝타임의 압박 때문에 이런 일을 벌였을 거라고 추측했다. 즉 러닝타임을 줄여 상영횟수를 한 회라도 더 늘리겠다는 의도라는 것.

더 놀라운 것은 당시 영화 수입업체가 ‘숨기고 싶은 일’을 저질러놓고도 버젓이 감독을 초청해 기자회견을 열었다는 사실이다. 무식해서 용감한 건지 용감해서 무식한 건지, 아무튼 상식을 벗어난 행동임에는 틀림없다. 기자회견장을 박차고 나온 뤽 베송 감독은 귀국하는 비행기 안에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1년 후, 뤽 베송 감독은 자신이 제작한 영화 ‘택시’에서 한국을 향해 복수의 펀치를 날렸다. 아니, 조준사격이라는 표현이 맞겠다. 영화 ‘택시’에는 택시를 운전하는 쌍둥이 한국인 기사가 등장한다. 형제는 너무 가난하고 돈이 필요해 둘이 번갈아가며 택시를 몬다. 한 명이 운전할 때 나머지 한 명은 트렁크에서 잔다. 트렁크 안의 꼬질꼬질한 이불과 생활 도구들은 처절하다.

영화 속 한 배우는 돈에 혈안이 된 쌍둥이 형제 중 하나를 보며 “궁상맞은 한국인들은 너무 가난해서 24시간 동안 운전을 한다”고 핀잔을 준다. 제작자 뤽 베송은 이 작품을 통해 한국을 바라보는 자신의 시선을 짧고 명료하게 드러냈다. 우리를 이따위로 표현하다니 부르르 화도 나지만 한편으로는 얼굴이 붉어진다. 우리는 뤽 베송 감독의 날카로운 유머에 심장을 명중당했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이 유머인지 비난인지 입장을 정리할 틈도 없이 즉사해버렸다.

부끄럽지만 한국을 비난하는 해외 영화는 이것뿐만이 아니다. 스파이크 리 감독은 자신의 작품 ‘옳은 일을 해라’와 ‘크루클린’ 등에서 한국인을 ‘악착같이 돈을 수탈해가는 수전노’ ‘동양에서 온 노랭이’로 표현했다. 그리고 존 세일즈 감독은 영화 ‘다른 혹성에서 온 친구’를 통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만 하는 일 중독자’나 ‘돈의 노예’로 한국인을 보여줬다. 그리고 조엘 슈마허 감독의 ‘폴링다운’에서 주인공 마이클 더글러스는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한국인에게 야구 방망이를 휘두르며 분노한다.

“너희 한국 놈들은 미국에서 돈을 벌면서 조금도 아량을 베풀지 않아!”

‘아톰’ 때문에 삭제된 장면

나 역시 ‘필름에 대한 부당한 가위질’을 당한 적이 있다. 문제의 작품은 2005년 일본 영화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를 리메이크한 ‘파랑주의보’다. 국내 흥행 성적은 만족스럽지 못했지만 배우 송혜교와 차태현이 출연했고 일본에 사전 판매돼 다행히 손익분기점에는 도달했다. 하지만 ‘상업 영화감독’으로서 국내 흥행에 성공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나는 많이 위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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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윤수│영화감독·아주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dkall@ajo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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