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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 에세이

내 가슴을 멍들게 한 그녀

  • 김홍신│ 소설가, 건국대 석좌교수 hongshink@hanmail.net

내 가슴을 멍들게 한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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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魯)나라 환공(桓公)은 자리 오른쪽에 기울어진 그릇을 두었다. 그릇이 기울어졌기에 비어 있으면 기울었고 절반쯤 차면 바르게 있고 가득 차면 엎어지게 마련이었다. 그 기울어진 그릇을 보면서 스스로를 다스린 지혜를 오늘에 되새겨봐야 할 것이다. 공자(公子)도 사람의 욕심을 가리켜 “가득 채우고도 기울지 않는 게 없다”고 일갈했다.

인간의 원초적 욕망인 명예, 권력, 재물에도 유통기한이 있게 마련이다. 지극한 사랑에도 유통기한이 있다는데 권력, 재물, 명예의 유통기한이 왜 없겠는가.

42년간 리비아를 통치한 노정객 카다피는 이제 철권통치의 상징으로 몰매를 맞게 되었다. 숱한 일화를 남기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된 것이다. 최고 권력은 오직 국민을 섬기는 데에만 사용되어야 한다는 교훈을 또다시 확인시켰다. 그가 비록 쿠데타로 집권했더라도 대수로 공사를 성공시켜 아프리카를 기아에서 해방시킨 세기적 지도자로 기록될 수 있었는데, 독재의 맛에 취해 국민의 가슴을 멍들게 한 죄인이 되어버렸다.

사막 땅속엔 엄청난 양의 물이 저장되어 있다. 그 물을 퍼 올려 관을 통해 메마른 땅 곳곳에 보내 사막을 옥토로 만드는 대역사에 매진했던들 그는 인류사에 참 근사한 인물로 평가받았을 것이다. 타는 갈증으로 물 한 모금에 목숨 걸고 신음하는 아프리카인에게 기꺼이 생명수를 나누어주는 노년의 카다피는 성자(聖者)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독재자의 말로는 뻔한 것이지만, 27세의 육군대위 카다피가 열혈동지들을 규합하며 쿠데타를 일으켰을 때만 해도 그는 리비아의 희망이었다. 한반도의 8배나 되는 사하라 사막은 모래바다라는 별칭을 가질 만큼 드넓고 혹독한 열사의 땅이었다. 사하라 사막을 온통 농경지와 목초지로 바꾸어 굶주리는 아프리카인을 모두 구제하겠다는 카다피는 국기를 무늬 없는 초록색으로 바꾸었다.

나는 문득 리비아를 처음 방문했을 때를 떠올렸다. 내가 머무는 동안 리비아 대수로 공사를 총괄하는 건설본부는 몹시 무거운 분위기였다. 나와 동행한, 배짱 좋고 정 많기로 소문난 동아그룹 최원석 회장은 소화가 잘 안된다며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나는 오로지 소설 쓸 소재를 찾으려고 사막이며 국경 근처의 클레오파트라 별장이며 바닷가의 요새들을 찾아다녔다. 어느 날 본부 임직원들의 표정이나 최 회장의 행동이 이상하게 느껴져 무슨 일이냐고 물으니 저수조 축조공사 착공식 준비가 더뎌져서 그런 거라고 했다. 최 회장은 소화제와 지사제를 복용하며 분주했다.

그리고 귀국하는 비행기 안에서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다. 미국이 리비아를 공격하려고 항공모함과 전투기를 출동시켰다는 것이다. ‘사르리’ 공장 준공식에 카다피가 직접 축사를 하기로 했는데 미국이 전쟁을 일으키면 그 거대한 공사가 물거품이 될 것이기에 영국에서 실시간 텔렉스로 보내는 긴박한 뉴스에 촉각을 곤두세운 채 초긴장 상태였다는 것이다. 내가 불안해할까봐 끝까지 비밀로 한 거라고 했다. 그때 나는 “전쟁이 불가피하다면 내가 있는 동안에 전쟁이 일어났어야 했다”고 말했다. 전투 현장에서 생생하게 취재해 실감나는 글을 쓰고 싶다고 하자 최 회장은 “아이고 저 작가정신을 누가 말리랴!”하며 어찌하든 인명과 재산 피해를 당하지 않으려 애를 태우느라 몸이 아팠다고 했다.

우리가 돌아오고 한 달 만인 1986년 4월15일 미국은 리비아의 수도 트리폴리를 맹공격했다. 그때의 폭격으로 카다피의 딸이 사망했다.

대단한 리비아의 황제

내가 카다피를 만난 것은 리비아를 두 번째 방문한 1986년 8월26일이었다. 풍운을 거느린 듯 대군단을 이끌고 등장하는 그를 대수로 공사현장에서 만났다. 그 시절만 해도 민족주의자였던 그는 내 가슴에 불을 지르기에 충분했다. 광주항쟁의 처절한 아픔 때문에 한국 현대사의 쿠데타 주역들은 그리도 치가 떨리게 증오하면서 어째서 카다피에게는 관대했을까. 리비아 국민에게 희망을 주었기 때문일 수도 있고 사막을 옥토로 만들기 위한 대수로 공사를 한국의 유수기업인 동아그룹에 맡겼기 때문일 수도 있으며 한국인을 세리카(친구)라며 검문도 하지 않는 호의 때문일 수도 있다.

내가 카다피의 초청을 받은 것은 순전히 최원석 회장 덕이었다. 내 취재 욕심을 눈치 챈 그는 “소설가는 다양한 체험을 해야 한다”며 두 번이나 리비아의 사하라 사막을 여행할 수 있게 주선해준 것이다. 리비아 대수로 공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막을 가로지르는 수로관이었다. 그 수로관을 생산하는 공장 기공식에 카다피가 참석해 축사를 한다고 했다. 최원석 회장과 한국 정부 대표로 건설부 장관과 국회의원을 비롯한 각계 대표들이 오전 10시에 맞추어 현장에 도착했다. 리비아 주재 각국 대사들과 고위인사들이 속속 도착했다.

그러나 국가 원수인 카다피는 아직 등장하지 않았다. 의전차량과 방탄차가 들어올 때마다 참석자 모두 기립했다. 내리는 사람이 카다피가 아니어서 모두들 자리에 앉았다가 또 다른 리무진버스와 호위차량과 방탄차가 도착하면 또다시 모두 기립했다. 경호부대가 중무장한 차량과 베두인족의 터번을 두른 기마경호대를 앞세우고 들이닥치면 누구라도 뒤따르는 방탄차량 때문에 기립하곤 했다. 미국이 벼르고 있는 탓에 카다피를 보호하기 위한 위장전술이라는 걸 알아챈 건 한참 뒤였다. 그렇게 경황없이 두 시간쯤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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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신│ 소설가, 건국대 석좌교수 hongshin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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