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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액션 영화배우 열전 ⑧

룸펜 프롤레타리아 사내의 슬픔과 분노 김희라

환갑 지나 부활한 대배우여 부디 건강하시길!

  • 오승욱│영화감독 dookb@naver.com

룸펜 프롤레타리아 사내의 슬픔과 분노 김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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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리부리한 눈, 두툼한 입술

다른 하나는 조금 과장되고 극적이다. 어린 나이에 재혼한 아버지 집에서 뛰쳐나와 거지왕 김춘삼 패거리와 어울리며 거친 삶을 살던 김희라는 영화배우가 되고 싶다고 생각하고 박노식을 찾아간다. 박노식의 집 마당에 엎드려 연기를 가르쳐달라고 읍소하고 그에 감동한 박노식이 그를 거두어 영화배우의 길에 들어섰다는 것인데 믿거나 말거나. 하여튼 23세의 혈기방장한데다 거친 거리 생활에 물들어 있던 김희라는 임권택 감독과 박노식을 만나 배우의 길에 들어선다. 임권택 감독, 박노식과의 인연은 1970년대 초까지 이어지며 ‘사나이 삼대’ ‘황야의 독수리’ ‘원한의 거리에 눈이 나린다’ 같은 한국 액션 영화의 걸작을 탄생시킨다.

1970년대 초 김희라가 출연한 액션 영화 중 그의 최고의 연기를 볼 수 있는 영화가 바로 ‘원한의 거리에 눈이 나린다’다. 김희라는 데뷔 초기부터 박노식이 나오는 영화에 단골로 출연했다. 박노식이 사랑하는 아우 또는 박노식과 갈등을 겪는 아우였다. ‘원한의 거리에 눈이 나린다’에서도 김희라와 박노식의 관계는 형과 아우다. 그들은 전쟁통에 부모를 잃고 명동거리에서 깡통을 들고 구걸하는 생활을 하다 깡패 두목 장동휘가 거둬줘서 한가족이 된 사이. 젊고 거칠 것 없는 무뢰한 김희라는 아버지로 모시는 두목 장동휘의 사랑이 언제나 형뻘인 박노식에게로 향하는 게 불만이다. 자신도 형처럼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못 참겠는 것은 장동휘가 금이야 옥이야 아끼는 외동딸 최지희가 박노식을 사랑하는 것이다. 김희라도 최지희를 사랑한다. 최지희에게 사랑을 받는 박노식에게는 사랑하는 여인(문희)이 따로 있다. 이 모든 것이 김희라를 화나게 한다.

조직에 일이 생기면 박노식을 견제해 앞장서지만 결국에는 박노식이 뒤에서 그를 봐주면서 자신의 실수를 해결해주는 것에도 화가 난다. 김희라는 박노식에 대한 열등감과 질투로 몸부림치는 동생이다. 마치 ‘에덴의 동쪽’의 제임스 딘처럼. 김희라의 열등감과 질투, 박노식의 문희에 대한 눈먼 사랑. 그리고 짝사랑하던 박노식에게 실연당한 최지희. 이 세 사람의 애증은 그들의 관계를 파국으로 몰고 간다. 그리고 그들의 파멸에 기름을 붓는 것은 바로 김희라의 야비한 배신이다. 부리부리한 눈을 부릅뜨고, 두툼한 입술을 부르르 떨며 김희라는 박노식을 증오한다. 실연당한 최지희에게 억지로 사랑을 얻어내지만. 그것은 진짜 사랑이 아니다. 체념한 최지희의 육체만을 얻어낸 것일 뿐. 영화의 라스트. 모든 이를 파멸로 몰아넣은 장본인 김희라는 한 팔을 잃고 복수에 나선 박노식과 대결을 한다. 박노식을 찌르려던 칼날을 돌려 자신의 배에 꽂고 죽어버리는 김희라. 비극의 씨앗을 뿌린 죄를 죽음으로 사죄하는 것이다.

폭력적이고 야만적인



룸펜 프롤레타리아 사내의 슬픔과 분노 김희라

영화 ‘시’로 제47회 대종상 영화제에서 남우조연상을 받은 김희라가 팬들의 환호 속에 레드카펫을 걷고 있다.

김희라의 열기는 윗세대인 최무룡, 김진규가 데뷔 초기에 보여준 젊음의 열기와 달랐다. 물론 신성일과도 달랐다. 그가 내뿜는 열기는 짐승의 비린내가 나는 폭력적이고 야만적인 것이었다. 젊고 잘 생겼는데, 뻔뻔스럽고 야비하고, 거칠기 짝이 없다. 이런 멋진 캐릭터를 가진 김희라를 충무로가 가만 내버려둘 리 없었다. 박노식 하면 용팔이, 장동휘 하면 검은 장갑처럼 김희라에게도 별명이 필요했다. 드디어 그에게 왼손잡이라는 별칭이 부여된 영화가 등장한다. 이른바 왼손잡이 시리즈. 김두한과 그의 형제들의 신화를 다룬 영화 ‘팔도 사나이’로 흥행 감독이 된 김효천 감독과의 만남이었다. 주먹세계 묘사에 일가견이 있는, 영화감독이기 이전에 협객이었던 김효천과 김희라는 서로 배포가 맞았던 것 같다. 하지만 그들의 첫 영화 ‘떠나가는 왼손잡이’(1969)는 임권택 감독과 박노식의 그늘을 벗어날 수 없었다. 1960년대 중반 박노식이 연기한 ‘상하이 박’ 캐릭터를 가져왔고, ‘왼손잡이’ 역시 박노식과 임권택 감독이 1년 전 ‘돌아온 왼손잡이’(1968)에서 만들어 낸 캐릭터였다. 두 번째 왼손잡이 시리즈 ‘마지막 왼손잡이’(1969)에서도 역시 김희라는 박노식과 교도소에 의형제를 맺은 사이로 등장한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김희라는 젊은 혈기로 악당들을 제압해나가는 자신만의 영화를 만들어낸다.

1970년대 초에 만들어진 아주 재미있는 영화가 한 편 있다. 액션 배우의 세대가 바뀌는 것을 한눈에 볼 수 있게 만들어진 ‘명동 잔혹사’(1972)가 바로 그것. 세 명의 감독이 세 명의 배우를 데리고 세 편의 에피소드로 만든 옴니버스 영화다. 첫 번째 에피소드의 배경은 일제강점기다. 왕년의 전설적인 주먹 박노식과 그를 죽이고 명동에서 이름을 날리려는 애송이 깡패 송재호가 등장한다. 두 번째 에피소드는 자유당 정권의 몰락과 4·19 혁명 시대. 최무룡과 윤양하가 등장해 윤정희를 놓고 피의 혈투를 벌이다 몰사하는 비극적 라스트의 영화다. 세 번째 에피소드에 김희라가 등장한다. 월남전에 참전한 것이라 추측되는 김희라가 제대해 군복을 입고 명동거리에 나타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이미 조국은 경제개발과 근대화에 박차를 가하던 새 시대. 김희라는 과거 깡패 짓을 청산하고 새 삶을 살려고 한다. 그러나 과거는 그를 그냥 놓아두지 않는다. 그가 꿈꾸는 새로운 삶은 과거에 그가 일했던 깡패 조직들의 음모와 배신으로 갈가리 찢기고, 김희라는 복수를 하고 파멸에 이르고 만다.

1970년대 초 이 영화가 만들어질 때까지 김희라는 새로운 세대의 액션 스타였고 유망주였다. 이제 더 이상 임권택 감독과 박노식의 그늘을 생각하지 않아도 될 시기가 바로 코앞에 있었다. 그런데 시대가 바뀌었다. 1970년대 중반. 더 이상 깡패가 등장하는 액션 영화가 만들어지지 않았고, 새로운 액션 스타의 자리는 김희라와 비슷한 시기에 데뷔했지만 주목받지 못하던 이대근이 혜성처럼 나타나 차지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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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욱│영화감독 dook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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