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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읽는 세상

페미니즘 시대에 대처하는 남성의 자세

‘매혹당한 사람들’과 ‘우리의 20세기’

  • 노광우|영화칼럼니스트 nkw88@hotmail.com

페미니즘 시대에 대처하는 남성의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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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시대에 대처하는 남성의 자세

소피아 코폴라 감독의 ‘매혹당한 사람들’은 남북전쟁기 미국 남부 버지니아 주의 여성 기숙학교를 무대로 7명의 여성 사이로 부상한 북군 병사 1명이 흘러들면서 벌어지는 심리적 소용돌이를 그려낸다.[사진제공·IMDB ]

독립예술영화 상영관에서 상영 중인 미국 영화 두 편. 한 편은 소피아 코폴라가 감독한 ‘매혹당한 사람들(The Beguiled)’이고 다른 한 편은 마이크 밀스가 감독한 ‘우리의 20세기(20th Century Women)’다. 공교롭게도 아역 출신 다코타 패닝의 여동생 엘르 패닝(19)이 당돌한 연기를 펼친 두 영화는 모두 여성이 다수인 공간에서 남성이 여성에게 둘러싸인 상황을 그린다. ‘매혹당한 사람들’은 원래 1971년에 돈 시겔 감독의 영화를 리메이크한 작품이고, ‘우리의 20세기’는 시대 배경이 1979년이라는 점에서 두 작품은 1970년대 미국의 주요한 사회 흐름 하나를 담아낸다. 바로 페미니즘이다.

‘매혹당한 사람들’의 시대 배경은 미국 남북전쟁기다. 남부 버지니아의 어떤 외딴 여성 기숙학교 근처 숲에서 다리를 다친 북군 병사 존 맥버니(콜린 퍼렐)가 10대 소녀 에이미(우나 로렌스)에게 발견된다. 에이미는 존을 부축해 기숙학교로 데려간다. 전쟁이 벌어진 상황에서 방학을 맞은 이 학교는 여교장 마사(니콜 키드먼)와 여교사 에드위나(커스틴 던스트) 그리고 다섯 여학생까지 일곱 여성이 생활하는 둥지였다.

이들은 대부분 남부의 상류층 여성이라 처음에는 북군 병사를 보고 경계심을 가지지만 다친 사람을 돕는 것은 기독교 정신에 부합하는 행위라며 포탄 파편 제거 수술과 치료에 나선다. 학교 인근에 주둔하는 남군이 정찰을 위해 가끔 학교를 방문하지만 여성들은 적군 병사인 존을 넘기지 않고 계속 그의 치료와 회복을 돕는다.



옴 파탈, 그 위험한 선택

존은 점점 회복되면서 힘센 일꾼 몫을 해나간다. 여성들은 그런 그를 위해 특별한 만찬을 준비한다. 이성에 대한 관심을 접고 살아가다 존의 등장으로 은근한 설렘과 흥분을 맛보기 시작했기 때문. 그래서 저마다 한껏 치장하고 만찬석상에 나타난다. 그런 그들의 변화를 서서히 의식하게 된 존은 이를 즐기다 어느 순간부터 적극적 유혹자로 변해간다. 처음엔 성인인 미스 마사와 비슷한 연배의 에드위나와 ‘썸’을 타는가 싶더니 어느새 어린 여학생들이 던지는 추파에도 반응하며 치명적 매력을 발산하는 ‘옴 파탈(homme fatal)’이 된다.

은밀한 유혹의 시간이 지나가고 그들의 취침시간이 살짝 지나자 존의 발길은 한 명의 방을 향한다. 누굴까. 존과 동년배로 가장 많은 교감을 나눈 에드위나는 그 대상이 자신일 거란 생각에 살금살금 마중을 나갔다가 여학생 중 가장 성숙한 알리시아(엘르 패닝)의 침대에 들어가 있는 그를 발견하고 놀라서 달아난다. 당황한 존은 불편한 다리를 끌고 그런 에드위나를 달래려 쫓아가다가 계단에서 굴러떨어져 의식을 잃는다. 나아가던 다리는 더 심한 복합골절에 출혈까지 심해진 상황. 미스 마사는 존의 생명을 살리려면 다리를 절단할 수밖에 없다며 의식을 잃은 존의 한쪽 다리를 잘라낸다.

의식을 되찾고 이를 알게 된 존은 자신의 간택을 받지 못한 여성들이 질투심에 끔찍한 복수를 저지른 것이라며 절규한다. 시간이 지나면 진정할 줄 알았던 존은 점점 더 폭군이 되어가고 여성들은 두려움과 불안에 사로잡힌다. 한때 유혹의 대상이 이제는 공포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1971년 제작된 원작에서 존 역을 맡은 배우는 ‘석양의 무법자’와 ‘더티 해리’ 시리즈를 통해 아드레날린 넘치는 남성미를 뽐내던 클린트 이스트우드였다. 그런 ‘마초’가 여성들만 사는 아마존 공간에 떨어져 무차별적 성적 호기심과 도발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처음엔 황홀할지 몰라도 시간이 지날수록 수치스럽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그런 상태의 남성이 절름발이가 된다는 것은 남성적 상징과 권위를 상실한 채 여성에게 의존해 의식주를 해결해야 한다는 점에서 굴욕과 절망이 배가될 수밖에 없다.

그 순간 존은 자신을 남자답게 만들어주던 매너를 팽개치고 여성들의 죄의식을 한껏 자극하는 폭군으로 돌변함으로써 자신의 생사여탈권을 쥔 여성들 위에 군림하려 한다. 한때 동정의 대상이었고 다시 유혹의 대상까지 됐지만 지금은 폭력과 죄의식의 대상으로 전락한 남성에게 과연 여성들은 여전히 자비로울까. 아니면 냉혹해질까.

소피아 코폴라 감독은 남성 감독이 연출한 원작 속 일곱 여성의 변화무쌍한 심리를 일곱 빛깔 무지개처럼 차별화하면서도 섬세하게 포착해낸다. 흔들리는 눈빛과 멈칫거리는 손길, 떨리는 입술이 대사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러면서도 ‘대부’ 시리즈를 감독한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의 딸답게 여성 간 은밀한 권력게임 그리고 섹스와 폭력의 섬뜩한 함수관계를 한껏 무심해 보이는 자연주의 화면 구성과 대비하는 방식으로 그려낸다. 젠더 간의 오해와 억측이 초래하는 영화의 결말이 말하려는 건 무엇일까. 페미니즘을 마주하는 남성의 두려움이 여성과 소통에 실패하는 데서 기인함을 엽기적 소극(笑劇)으로 풍자하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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