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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 에세이

정성을 다하는 요리사처럼

  • 이정향│ 영화감독

정성을 다하는 요리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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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을 다하는 요리사처럼
나에겐 자랑하고픈 능력이 있다. 그건 바로, 좋은 식당과 찻집을 알아보는 능력이다. 물론 먹어보고 나서 판단하는 건 어렵지 않다. 하지만 내가 잘난 척하는 이유는, 그 집의 문지방을 넘기도 전에 그것을 알아챌 수 있기 때문이다. 문이 닫혀있는 휴일이나 심야라도 상관없다. 문 밖에 서서 온 신경을 집중하고 가게를 쏘아보고 있으면 답이 온다. 이 집은 ‘믿어도 되겠구나’ 또는 ‘아니다’와 같은.

이때 초집중하며 써버리는 정신적 에너지는 무척 고밀도요, 고강도다. 마치 촬영 현장에서 한 컷 한 컷을 찍을 때 들이는 열정이나 긴장감과 맞먹는다고나 할까.

그런데 “왜 이렇게 식당 감별에 심혈을 기울이냐?”고들 핀잔을 준다. 무릇, 좋은 음식이 건강한 사회를 낳고, 인류의 후손들에게 건강한 유전자를 전달해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좋은 음식은 건강한 지구와 인류를 만드는 최전방에 있다고 굳게 믿는다.

내가 가장 존경하는 직업은…

나는 중학교 1학년 겨울에 ‘the Towering Inferno’(한글 제목 ‘타워링’)라는 영화를 단체관람한 후 배우 폴 뉴먼(Paul Newman)에 홀려서 영화와 연애하기 시작했고, 중3이 되던 첫날, 나와 생일이 같은 하길종 감독님의 부고를 접하고 영화감독이 되고자 결심했다. 그전까지 내 생의 첫 장래 희망은 기자였고, 만 14세 때 영화감독으로 바뀐 이후로는 한 번도 변한 적이 없다. 하지만 내가 제일 존경하는 직업은 요리사다. 20대에는 건축가였고, 30대에는 기상천문학자였으나, 나이 들어가면서 먹는 것의 소중함과 즐거움에 더욱 빠져버린 후에는 단연코 요리사가 1등이 되어버린 것이다. 요리사라고 해 직업 요리인만을 뜻하는 건 아니다. 정갈하고 정성스러운 음식으로 가족을 먹이는 일반인도 포함되어 있다.

울 엄마는 요리 솜씨가 좋으시다. 하지만 메뉴는 다양하지 못하다. 평범한 시골 아낙네들이 구사하는 종류와 그들의 구수한 손맛에 가까운데 우리집 음식에 대해 내가 제일 높이 평가하는 부분은 조미료를 일절 쓰지 않는다는 점이다. 집에서 된장찌개 한번이라도 끓여본 사람들은 다 알겠지만 조미료를 안 쓰면 요리에 들이는 시간과 정성이 배로 늘어난다. 그만큼 조미료를 쓰면 요리하는 사람으로선 많은 게 편해진다. 하지만 조미료가 들어간 음식은 대체적으로 평균 정도의 맛을 지닐 뿐 깊은 맛도, 담백함도 갖지 못하며, 먹은 후에는 찝찝한 갈증을 초래하기도 한다. 더 위험한 건, 이런 조미료에 입맛이 길들고 나면, 조미료가 첨가되지 않은 음식을 먹을 때 뭔가 심심하고 맛이 성에 차지 않는다는 아쉬움을 느끼게 한다는 점이다. 조미료가 몸에 나쁜지, 아닌지에 대한 논쟁은 여기서 접어두겠다. 아는 사람들은 다 알고 있으며, 혹자들은 알고 있어도 끊기가 힘들어서 진실을 외면하고자 하기에.

난 식당을 고를 때 화려한 간판은 선호하지 않는다. 음식 사진들이 붙어 있는 곳도 마찬가지다. 대개는 자신들이 만든 음식 사진이 아니라 어딘가에서 구해온 사진일 때가 많다. 또한 메뉴가 육해공(陸海空)인 경우도 신뢰도가 떨어진다. 저 많은 메뉴를 소화한다는 건 분명 깊이가 없을 거라는 불안함을 주기 때문이다. 요즘 전국을 휩쓸고 있는 프랜차이즈 점도 회피 대상이다. 본사에서 냉동상태로 온 음식과 재료를 데우고 조리해서 내놓기에 따듯한 손맛이 약하다. 즉, 조리가 아니라 조립에 가깝다.

자극과 재미보다 정성과 감동에 길들어야

오래되고 낡아도 주인의 마음과 자부심이 서린 간판을 보면 코끝이 찡해지는 감동이 온다. 그런 가게 앞을 지날 때면 배가 포만 상태일지라도 가던 길을 멈추고 한참을 바라보게 된다. 단출한 메뉴 한두 가지에 투박하고 촌스러워 보여도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이게 다입니다. 어쩔 수 없지만요’라고 하는 숨은 자긍심과 멋을 보는 듯해 반갑다. 이런 겸손한 인상의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서면 식탁과 의자와 주인 얼굴의 주름살이 서로 잘 맞는 화음을 이루며 내 마음을 푸근하게 한다. 이런 가게들일수록 음식 값도 싸다. 주인에게 절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으로 맛난 음식을 먹고 나오면 이 가게가 경영난으로 문을 닫으면 어쩌지 하는 걱정에 발걸음이 이내 무거워진다. 비싼 집은 맛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집이 너무나 많다. 저렴하면서도 맛있는 집은 세상의 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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