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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상 기자의 클래식 속으로 ④

신년회를 콘서트홀에서!

  • 정현상 기자│doppelg@donga.com

신년회를 콘서트홀에서!

신년회를 콘서트홀에서!

빈 슈트라우스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와 소프라노 임선혜의 신년음악회가 1월18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린다.

보름 전 왼손잡이인 내가 왼손 약지의 뼈가 으스러지는 상처를 입었다. 몸 가운데 너무나 작은 한 부분이 다친 거지만 불편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한 손으로 머리를 감는 일은 금방 익숙해졌다. 일이 문제였다. e메일이라도 보낼라치면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는 일이 난감했다. 머릿속에선 단어들이 서로 튀어나오려고 아우성인데 집게손가락을 이용한 ‘독수리 타법’은 답답하기만 했다. 자신의 소중함을 몰라줬던 주인에게 약지는 이 기회를 틈타 자신을 사랑해달라는 신호를 맘껏 보냈다.

손가락을 다친 다음 날인 11월24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서울시립교향악단의 기획공연 ‘익스플로러 시리즈’ 연주를 보러 갔다. 이날의 주제는 영국. 20세기 영국을 대표하는 세 작곡가 벤저민 브리튼, 윌리엄 월튼, 구스타브 홀스트의 음악이 연주됐다. 31세의 훤칠한 영국 지휘자 알렉산더 셸리가 한국의 대표적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영국적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켰다.

‘영국적 분위기’를 한마디로 설명하긴 쉽지 않지만 ‘짬뽕의 시너지 효과’라고 표현해본다. 음악뿐 아니라 미술 문학 영화 등 영국의 모든 문화 장르에서 확인할 수 있는 특징이 바로 다양성을 한데 녹여 새로운 단계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를 뜻하는 영어단어는 ‘eclectic(절충적인, 다방면에 걸친)’이다. 이런 생각은 브리튼의 ‘네 개의 바다 간주곡’, 월튼의 첼로협주곡을 들을 때 조금씩 생겨나서는 홀스트의 관현악 모음곡 ‘행성’을 들을 때 확신으로 다가왔다.

‘행성’ 모음곡은 홀스트의 풍부한 상상력과 탁월한 관현악 기법이 녹아든 역작이다. 그는 ‘바그너 등 독일 낭만주의, 그리그의 서정주의, 라벨의 세밀한 리듬 및 정교한 관현악법, 영국의 민요 선율을 결합시킨’ 작풍을 갖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이 곡에 바로 그런 다양성이 한데 녹아 있다. 이걸 절충주의(eclecticism)의 산물이라고 한다면 너무 나간 것일까. 절충주의는 개성과 독창성이 부족하게 마련이라는 지적이 있지만, 홀스트의 곡에는 창의성이 넘친다. 평일엔 교사로 일하고 주말에 작곡활동을 했다는 그는 어려서 팔에 신경염이 걸렸는데, 이 병은 평생 그를 괴롭혔다.

‘행성’ 가운데 ‘화성’은 영화 ‘스타워즈’의 삽입곡으로, ‘목성’은 영화 ‘필사의 도전’ 등 수많은 영화, 드라마 삽입곡으로 사용됐다. 우주를 다루는 영상 프로그램치고 이 모음곡을 사용하지 않은 것이 별로 없을 정도다. 가장 대중적인 곡인 ‘목성’의 부제가 ‘쾌락의 전령’인데 활달한 리듬감, 유쾌한 선율, 호쾌한 관악이 어울려 행복감을 마구 안겨준다. 그 순간 나는 손가락의 아픔도 잊고 콘서트홀 한구석에서 평온함과 아늑함에 몸을 떨었다.

1주일 뒤 어른 두 분과의 술자리 약속을 손가락 부상을 핑계 대고 콘서트 관람으로 바꿨다. 1548년 궁정악단으로 창단돼 463년째 활동하는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의 수석주자들이 여는 공연이었다. 드레스덴 카펠솔리스텐은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의 관현악 모음곡 2번 b단조, 브란덴부르크협주곡, 안토니오 비발디의 바이올린협주곡 ‘사계’를 연주했다. 올 들어 맹활약하고 있는 클라라 주미 강이 ‘사계’를 협연했다. 그는 12살 때 바렌보임이 이끄는 시카고심포니와 협연을 앞두고 손가락이 부러지는 부상을 당했는데, 의사는 그에게 다시는 바이올린을 연주하지 못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의 손가락은 2년 만에 기적적으로 제 기능을 되찾았고, 그는 다시 바이올리니스트의 길을 걷게 됐다. 그는 그때의 경험 덕분에 세상을 많이 알게 됐다고 한다. 음악을 더 깊이 알게 된 것이다.

신년회를 콘서트홀에서!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의 윤택한 연주를 들으며 눈을 감자 꽃밭이 펼쳐지고, 따뜻한 아랫목이 느껴졌다. “남자들끼리 콘서트 가는 건 처음”이라며 어색해하던 동행자가 공연이 끝나고 ‘기억에 남는 만추의 밤’이라며 문자를 보내왔다. 신년음악회의 계절이다. 신년회를 콘서트홀에서 하는 건 어떨까. 아픔도, 어색함도 아름다움으로 바꾸는 마법의 공간에서 한 해를 시작한다면 새해 많은 일이 마술처럼 잘 풀리지 않을까.

신동아 2012년 1월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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