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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남자의 유년 풍경

  • 함정임│소설가·동아대 문예창작과 교수 etrelajiham@empal.com

외로운 남자의 유년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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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남자의 유년 풍경

‘외로운 남자’
외젠 이오네스코 지음, 이재룡 옮김, 문학동네, 173쪽, 8500원

완만한 구릉의 언덕길을 오르자 성당 첨탑이 제일 먼저 시야에 들어왔다. 마을 진입로에 들어서니 20~30호의 집이 성당을 중심으로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프랑스의 여느 시골마을과 다르지 않은 풍경이다. 이곳은 프랑스 북서부 라발 인근의 라 샤펠 앙트네즈. 비가 한 번 뿌리고 간 덕에 사방은 정갈하고 구름 사이로 파란빛이 막 펼쳐지고 있었다. 구릉과 구릉 사이 초원에는 희고, 노랗고, 검은 얼룩소들이 평화롭게 풀을 뜯고 있었고, 마을 안 도로에는 인적이 없었다.

이상하다. 마치 세계의 한 부분이 갑자기 심연 속으로 허물어져 들어간 듯했다. 지난 인생, 고색창연한 성당. 군중은 무엇이 되었을까? 모든 것은 허물어졌다. 아마도 어딘가에 있겠지만, 우리는 아무것도 모른다. -외젠 이오네스코 지음, 이재룡 옮김, 문학동네, ‘외로운 남자’ 중에서

마을 입구 면사무소(mairie)를 지나 성당에 다다랐다. 멀리서 볼 때와 달리 성당의 위세가 드높았다. 길을 따라 늘어선 집들의 창문은 닫혀 있고, 집과 집을 연결하는 검은 전선줄만 창공에 생생했다. 평일, 아침나절의 적요. 신비로운 침묵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듯한 기묘한 착각이 일었다. 성당에서 길을 따라 몇 발자국 걸어 내려가자 길은 두 갈래로 나뉘었다. 왼편 길로는 마을이 이어지는 듯했고, 오른편 길로는 집 한 채를 끝으로 마을이 마무리되는 듯했다. 그 집 옆으로 작은 다리가 보였고, 그 아래로 철길이 가로지르고 있었다. 추모비가 성당 앞에 앙증맞게 세워져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보니 탑신에 다음과 같이 새겨져 있었다. ‘1914년에서 1918년 목숨을 잃은 우리의 자식들을 추모함.’ 추모문 아래 전쟁에 나가 숨진 이의 이름이 빼곡히 새겨져 있었다. ‘1914년에서 1918년’에 다시 눈길이 닿았다. 내가 지금 이곳, 관광객은 물론 주민조차 눈에 띄지 않는 한적한 시골 마을 길 한복판에 서 있는 이유는 바로 그 기간 중에 이곳에 머물렀던 한 이방인 소년의 족적을 밟기 위해서였다. 삼거리에는 마을을 알리는 중요한 것들, 그러니까 열대여섯 개의 안내 및 방향 표지가 집중적으로 모여 있었다. 표지물 중에 지금껏 가슴에 품고 이 마을을 향해 달려온 이름을 발견했다. 이오네스코.

태어나 몇 개월이 안 되어 나는 세상에 익숙해졌다. 스스로를 인식하고 타인을 알아볼 수 있게 된 것이다. …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엄마와 장난감 곰이 있었고, 그것들보다 덜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등 거의 모든 것이 있었다. 나의 발가락, 하늘의 일부분, 이런저런 물건들, … 나는 그러한 것들을 발견(강조-필자)하고 놀랐던 무수한 순간들을 기억한다. 산책을 나갔을 때, 가끔 풍경이 변해 있는 걸 발견하기도 했지만 대체로 양호했으며 세계는 그 장소에 있었다. - 외젠 이오네스코 지음, 박형섭 옮김, 새물결, ‘발견-나는 왜 쓰는가’ 중에서

이오네스코는 프랑스 명, 원래 루마니아 명은 이오네스쿠. 그는 그러니까 루마니아인이었다. 그런 그가 20세기 프랑스문학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부조리극작가가 된 것은 어머니가 프랑스인이기 때문. 그리고 훗날 아버지(의 나라)와 결별하고 프랑스로 귀화했기 때문. 어린 시절, 그의 아버지의 나라는 나치 치하가 됐고, 아버지는 나치 세력의 막강한 일원(총감)이 됐던 것. 이런 생의 이력으로 그는 한 살 때부터 여러 차례 프랑스에 체류했고, 유년의 황금기라고 할 수 있는 아홉 살 전후를 이 작고 소박한 성당 마을에서 보냈다. 제1차 세계대전 중이던 이 시기 그의 부모는 이혼했고, 어머니는 아이 둘을 이끌고 파리의 여인숙을 전전했다. 1917년 어린 소년 이오네스코는 지인의 소개로 라 샤펠 앙트네즈의 한 농가에 위탁아로 맡겨졌다. 이곳에서 그는 또래 아이들처럼 학교를 다니고 언덕을 뛰어다니며 평온한 전원생활을 체험했다.

네 살에 나는 죽음을 알게 되었다. 나는 절망하여 큰 소리로 울었다. 그 이후 언젠가 어머니를 잃게 된다는 것, 그 누구도 죽음을 피해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두려워했다. … 나는 어머니에게 매달렸다. … 그러고 나니 어머니의 슬픔이 보였고, 불행한 소녀와 같은 그녀의 얼굴, 그녀의 흐느낌, 그녀의 고독을 알게 되었다. 아버지의 폭력이 있었다. 전쟁이 있었다. 적의 비행기, 곰팡내 나는 지하실, 학교, 시골의 전원이 있었다. - ‘발견-나는 왜 쓰는가’ 중에서

삼거리에서 ‘C. A. T. 이오네스코’라 씌어있는 표지판이 가리키는 방향은 왼쪽, 그대로 따라가보았다. 마을 중간 완만하게 시작되는 구릉 오른편 3층 건물 외벽에 ‘C. A. T. Foyer Ionesco’란 글자가 보였다. 입구에 라벤더가 군락을 이루며 보라색 꽃을 피우고 있었다. 아이 몇몇이 순진한 표정으로 뒤돌아보며 느릿느릿 건물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곳은 독립적으로 생활하기 어려운 사람들을 돌보는 곳이었고, 나는 보라색 라벤더 꽃무더기를 손바닥으로 한번 스윽 훑고는 다시 길로 나섰다. 라벤더 향이 물결처럼 퍼졌다. 차를 돌려 지나온 길을 돌아나가려니 바로 코앞에 이오네스코가 단층짜리 건물 입구 외벽에 초상화로 그려져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머리 위에는 ‘외젠 이오네스코 학교’라고 쓰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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