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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승경의 ‘눈으로 듣는 음악’ ⑦

‘천재’ 모차르트와 ‘악성’ 베토벤 그 빛과 그림자

  • 황승경│국제오페라단 단장·공연예술학 박사 lunapiena7@naver.com

‘천재’ 모차르트와 ‘악성’ 베토벤 그 빛과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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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재’ 모차르트와 ‘악성(樂聖)’ 베토벤. 14살 차이인 이 두 음악가는 최고의 작곡가로 명성을 얻었지만 둘의 삶은 완전히 달랐다. 음악교육가 아버지의 배려로 10년간 유럽을 돌며 견문을 넓힌 모차르트가 그의 밝은 음악 색채와 달리 감자 몇 알로 연명했다면, 아버지의 학대에 시달리며 혹독한 음악교육을 받은 베토벤은 알려진 것과 달리 부유하고 안정적인 음악가 생활을 했다. ‘천재’는 극심한 경제적 고통 속에 쓸쓸히 혼자 삶을 마감했지만, ‘악성’은 2만 명의 추모객이 애도하는 가운데 눈을 감았다. ‘천재’와 ‘악성’, 그 삶 속으로 들어가보자
‘천재’ 모차르트와 ‘악성’ 베토벤 그 빛과 그림자
동네 피아노학원 이름 중 유독 ‘모차르트 피아노학원’ ‘베토벤 피아노학원’이 많은 것을 보면 아마도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1756~1791)와 루트비히 판 베토벤(1770~1827)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작곡가라는 생각이 든다.

1993년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는 재밌는 실험을 했다. 36명의 학생을 둘로 나눈 뒤, 한 그룹에는 모차르트의 음악을 들려주고 지능지수(IQ) 테스트를 했고, 다른 그룹은 테스트만 했다. 그 결과 모차르트 음악을 들은 학생들의 IQ가 평균 9점 높게 나왔다. 캘리포니아 주립대는 이 결과를 네이처지(誌)에 게재하면서, 논문 제목을 ‘모차르트 효과’라고 했다. 사람들은 모차르트 음악을 들으면 머리가 좋아진다는 것을 정설로 받아들였다. ‘모차르트 태교음악’이 성행하게 된 것도 이 때문이었다.

베토벤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BBC방송국은 뉴스 시그널로 ‘적국’ 작곡가인 베토벤 음악을 사용했다. 제3번 교향곡 ‘운명’의 서두 부분을 뉴스 시작에 사용할 정도로 대중에게 미친 베토벤의 영향력은 컸다. 전쟁과 학살에 대한 원한 때문에 독일이라면 치를 떠는 사람들도, 베토벤의 제9번 교향곡 ‘합창’을 들을 때에는 희망의 메시지를 떠올리며 베토벤이 독일인이라는 것을 잊어버릴 정도였다.

사실, 베토벤의 생애는 한 편의 드라마였다. 자신의 육체적 한계를 넘어서며 억새풀 같은 인생을 살다간 인물이었다. 그에 관한 이야기는 청력상실, 괴팍한 성격, 유서 집필, 조카에 대한 집착, 연인에게 보낸 편지 등으로 전설이 됐다. 여기에 헝클어진 머리카락, 무언가 만족스럽지 못한 표정, 따뜻함이라고는 전혀 찾을 수 없는 날카로운 눈빛을 보여주는 초상화가 그 전설에 신뢰성을 보태고 있다.

최초의 프리랜서 작곡가 베토벤

‘천재’ 모차르트와 ‘악성’ 베토벤 그 빛과 그림자

모차르트의 오페라 ‘마술피리’의 한 장면.

그런데 베토벤의 생애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는 다르게 그다지 불행하지 않았다. 베토벤은 프리랜서 작곡가로 활동한 최초의 작곡가로 비교적 행운이 따른 인물이었다. 베토벤은 윗세대인 모차르트와 달리 황실이나 귀족에게 소속되지 않고 독자적으로 왕성한 활동을 펼친 작곡가였고, 그럼에도 경제적으로 비교적 안정된 삶을 살았다.

베토벤 시대에는 귀족뿐 아니라 부유한 평민도 피아노와 바이올린 같은 악기를 배울 수 있었기 때문에 그의 휘하에는 레슨을 받으려는 제자들로 넘쳐났다. 게다가 일반대중을 위한 기악 악보출판이 호황이었고, 작곡가에게 주어지는 인세도 정착되는 시기여서 베토벤은 인세를 벌어들인 최초의 세대이기도 했다. 귀족들의 입맛에 벗어난 주제를 선택해 빈곤에 시달렸던 모차르트와 달리 베토벤이 비교적 편안하게 작품생활을 계속할 수 있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같은 시기에 활동했으나, 베토벤보다 나이가 어리고 자신이 작곡한 곡을 직접 연주하지 않았던 프란츠 슈베르트(1797~1928)는 ‘자장가’의 작곡 보수로 겨우 삶은 감자 몇 알과 음식 한 접시를 받았을 뿐이다. 반면 베토벤은 당시 작곡가들 중 대중의 인지도가 높았고 후원하는 귀족도 끊이지 않아 세상 이치에 밝았고, 자신의 곡을 직접 연주해 안정된 삶을 영위할 수 있었다.

베토벤의 삶은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모차르트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아버지가 ‘신동’ 모차르트를 모델 삼아 아들을 세계적인 천재 음악가 반열에 올리고 싶어한 것이다. 아버지의 집착은 대단했다. 할아버지 때부터 음악가 집안이었던 베토벤의 아버지는 아들보다 14세 많은 모차르트 연주를 기억하며, 자신의 아들을 천재로 만들기 위해 혹독하게 교육했다. 베토벤의 데뷔 무대는 이런 왜곡된 아버지의 욕심이 만들어낸 참담한 실패였다. 신동으로 보이기 위해 아들 나이를 두 살 적게 속이고 데뷔 무대에 세웠지만, 베토벤은 손가락이 떨려서 제대로 연주하지 못했다. 어린 베토벤은 모차르트가 가진 그런 천재성을 가지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또 베토벤의 아버지는 모차르트의 아버지처럼 교육자로서의 능력도 없었다.

단조의 어둡고 슬픈 멜로디를 사용해도 따뜻하고 긍정적인 요소를 가졌던 모차르트 음악과 달리 베토벤의 음악은 아무리 장조의 밝은 멜로디를 사용해도 구슬프고 암울하다. 많은 사람은 그 이유를 베토벤이 유년기에 겪은 아픔에서 찾는다.

모차르트의 아버지는 아들을 칭찬과 함께 금이야 옥이야 조심스럽게 교육했다. 반면에 베토벤의 아버지는 잦은 체벌과 학대를 일삼았다. 그 결과 유년기의 공포가 내면에 깊이 각인됐고, 베토벤은 아버지에 대한 미움과 연약한 어머니에 대한 연민을 갖게 된다.

유년기 공포가 만든 암울한 멜로디

모차르트는 음악사에서 전무후무한 천재다. 서양음악사에서 베토벤은 ‘악성(樂聖)’이라며 성인(聖人)에 비유하지만 그를 두고 천재라고는 하지 않는다. 불후의 천재 작곡가로 꼽는 사람은 모차르트 단 한 사람뿐이다. 세상의 모든 사람이 그를 최고의 작곡가로 꼽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오페라, 교향곡, 협주곡, 실내악곡, 종교음악, 가곡에 이르기까지 성악과 기악 거의 모든 분야에서 천재적인 음악성을 발휘해 수많은 명작을 남겼기 때문이다. 그의 음악은 시대를 초월한 진한 감동을 준다. 그래서인지 한국의 많은 임신부는 지금도 자궁 속 아이의 지능지수(IQ)를 높이고 천재성을 일깨울 목적으로 모차르트 음악을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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