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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 에세이

매니페스토 7년의 슬픔

  • 강지원│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 상임대표, 변호사

매니페스토 7년의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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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니페스토 7년의 슬픔

2010년 4월 민주당 지도부가 국회에서 강지원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장에게 당 정책공약집을 전달하고 있다.

이번 19대 국회의원선거에서 새누리당 출신이 호남에서 당선되고 민주통합당 출신이 영남에서 당선되면 어떨까. 이번 선거의 최대 이변이 되지 않을까. 많이 당선되는 것은 바라지도 않는다. PK(부산·경남) 쪽에 바람이 약간 불고 있다고 하니 두고 볼 일이다. 그러면 범위를 좁혀서 지역색이 가장 강하다는 광주 전남과 대구 경북에서 딱 1명씩이라도 당선될 수는 없을까. 그럼 사람들이 세상이 바뀌기 시작한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나쁜 방향이 아니라 좋은 방향이므로 그 소식은 우리에게 희망으로 다가오지 않을까.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곧잘 잊어버리고 지내지만 이 나라의 지역주의 선거풍토는 실로 고질적이다. 벌써 수십 년 된 이 풍토에 변화의 바람이 불 듯하다가도 결정적 순간이 되면 딱 벽에 부딪힌다. 재작년 지방선거 때 전국을 두 차례 순회 방문했다. 그때 변화의 낌새를 약간은 챌 수 있었다. 먼저 호남에 가서 “이제 호남에서도 민주당만 찍어서야 되겠어요”라고 물었다. 그러자 대부분이 동의했다. 그러면서도 다음 대답이 걸작이었다. “네, 그렇지만 한나라당까지는 못 찍겠고요. 무소속은 찍어줄 거예요” 했다. 영남으로 이동했다. 그곳에서도 똑같이 질문했다. “이제 영남에서도 한나라당만 찍어서야 되겠어요?” 대답도 똑같았다. “네, 옳은 말씀인데요. 그래도 아직까지는 무소속은 몰라도 민주당까지는 아니에요”였다.

실제 투표 결과 무소속의 약진이 돋보였다. 지자체장이 무소속으로 당선된 곳도 나왔다. 그러나 상대 당은 아니었다. 다만 투표율이 10~20%까지 올라갔을 뿐이다. 이번 19대 총선은 어찌될까. 양쪽 모두 당명까지 갈아치웠는데 영·호남에서 각기 상대 당 후보를 국회의원으로 뽑아줄까. 아닐 것 같다. 어쩌다 이변이 있을지 모르나 이번에도 싹수가 없어 보이기는 마찬가지다.

우리 매니페스토 정책선거운동을 벌여온 운동가들은 올해를 ‘유권자 반란의 해’로 정했다. 우리 유권자들이 반란을 일으키듯이 정책투표 형태를 하자는 것인데, 그중 가장 중요한 부분의 하나는 지연, 혈연, 학연 등 연고투표를 타파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기대가 난망이다. 우리가 유권자에게 아무리 호소해도 정치의 당사자인 정치인들이 단숨에 고춧가루를 뿌리고 불을 지르기 때문이다.

석패율 제도라는 것이 있다. 예컨대 새누리당의 A 후보를 광주의 지역구 후보로 공천함과 동시에 비례대표 후보로도 공천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광주의 지역구에서는 새누리당 출신의 당선 가능성이 낮기 때문에 낙선할 터인데, 그 득표율이 높아서 애석한 경우에 그를 비례대표로 당선시키는 것이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민주통합당의 B 후보를 대구의 지역구 후보와 비례대표 후보로 동시에 공천하고 지역구에서 애석하게 낙선했을 때는 비례대표로 당선시켜주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고질적인 지역주의를 조금이라도 타파할 수 있는 석패율 제도의 도입안(案)을 지난 2월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가 폐기했다.

그간 이 제도의 도입 필요성은 간헐적으로 주장돼왔다. 2010년에 대통령소속 사회통합위원회가 발족하면서 나는 지역분과위원장을 맡아 우리나라의 고질적인 지역구도 정치를 개선할 방안을 모색했다. 여러 학자와 함께 몇 개월 동안 토의하다가 결국 이 제도가 지역구도 탈피의 돌파구를 찾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고는 그 의견서를 각 정당의 대표자들과 국회 및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등 관계기관에 제공하고 사회통합위원을 그만두었다. 그 후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정당 및 선거관련법 개정안에 석패율 제도를 포함시켰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고, 국회의 정치개혁특별위원회가 이 제도를 도입하기로 여야 간사들이 합의했다는 소식도 들었다.

그런데 선거를 두 달도 남기지 않은 상태에서 최종적으로 채택 불가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실로 기가 찼다. 저런 정치인들에게 지역구도 타파를 기대해? 바보 아니야? 하는 생각이 치밀어 올랐다. 이유는 간단했다. 먼저 군소 정당이 반대하고 나섰다. 전국단위 정당득표율로 비례대표 의석을 하나라도 더 건져야 하는 군소정당으로서는 피해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다 양대 정당이 편승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속셈은 뻔했다. 말뚝만 박으면 1석을 건지는데, 그 금싸라기 같은 1석을 왜 적에게 굳이 내주느냐는 것이다. 지역구도 선거가 그들에게는 독이 아니라 약이었던 것이다. 약도 그냥 약이 아니라 보약이었다. 지역주의에 편승해서 자기들 챙길 것을 신나게 챙겨 먹은 사람들이 지역주의를 타파해? 차라리 나무에 올라가서 물고기를 찾는 것이 나을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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