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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마추픽추

태양의 도시, 하늘의 도시, 잃어버린 도시

  • 김홍락│한국가스공사 고문·전 주(駐)볼리비아 대사

마추픽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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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침내 마추픽추로 여행을 떠나는 날이다. 생각해보니 30여 년 전 칠레에 첫발을 디디며 중남미 근무를 시작할 때부터 잉카문명의 비밀을 간직한 그곳을 꼭 한 번 보고 싶었지만 기회가 닿지 않아 실행에 옮기지 못하다가 오늘에야 이곳 볼리비아 라파스에 근무하면서 드디어 마추픽추를 구경하게 된 것이다. 따지고 보면 오히려 페루의 리마에서 마추픽추로 가는 것보다 이곳 볼리비아의 라파스에서 가는 것이 더욱 가깝고 경비도 덜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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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카의 비밀을 안고 있는 마추픽추 전경(왼쪽). 티티카카 호에서 자라는 갈대를 엮어 만든 섬 ‘이슬라 플로탄테’.

아내가 아침 일찍 일어나 도중에 먹을 김밥을 싸느라고 부엌에서 부산하게 움직인다. 우리는 오전 7시 15분 짐을 챙겨 집을 나섰다. 7시 반에 버스터미널에서 다른 일행을 만나기로 한 것이다. 버스터미널로 가려면 시내 중심가 센트로를 지나가야 한다. 산 프란시스코 성당 앞 광장 일대는 언제나 노점상과 행인으로 북적거린다. 버스터미널에서 푸노행 표를 사고 나니 시간이 좀 남는다. 푸노는 라파스에서 차로 2시간 반 정도 걸리는 티티카카 호수 페루 쪽 연안에 있는 관광도시다. 그곳에는 토토라(totora)라고 하는 티티카카 호에서 자라는 갈대를 엮어서 만든 떠다니는 섬 ‘이슬라 플로탄테’가 있다. 가는 길에 그곳을 구경하기로 했다.

대합실 텔레비전에서는 이른 아침부터 대통령궁 앞 무리요 광장에서 거행되는 종교 의식을 생방송으로 중계하고 있었다. 모랄레스 대통령과 주요 각료들이 참석한 행사였다. 가만히 보니 라파스 대주교뿐만 아니라 인디언 고유 의상을 입은 주술사도 함께 나와 있다. 광장 한가운데에는 장작불을 놓았다. 연기가 피어오른다. 가톨릭과 인디언의 전통 종교가 혼합된 ‘신크레티즘’이다. 모랄레스 대통령은 처음에는 가톨릭 신자였으나 지금은 가톨릭에 반대한다. 그는 종교가 인민을 마취시켜 판단을 흐리게 한다고 말한다.

퓨마를 숭상한 잉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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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 있는 섬 ‘이슬라 토토라’에서 우리 일행을 맞아준 인디언 처녀들.

오전 8시 정각 라파스를 출발한 버스는 잉카 이전 시대 인디언 문화를 꽃피운 티우와칸 유적지를 지나 오후 1시 30분 페루 국경도시 데스아과데로에 도착했다. 페루와 시간차가 한 시간이니 현지시각은 12시 30분이다. 데스아과데로는 스페인어로 ‘물이 빠져나가는 곳’이라는 뜻이다. 티티카카 호는 안데스 산맥의 눈 녹은 물을 모아 유일하게 이곳 한 곳을 통해 물을 내보낸다. 이곳에서 흘러나간 물은 멀리 남쪽에 있는 또 하나의 호수 포오포(Poopo)로 향한다. 국경 노점에서 알파카 실로 짠 각반을 샀다. 오늘 밤 쿠스코행 야간 버스에서 발이 시리지 않도록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국경에서 수속을 마친 후 버스는 계속 북쪽으로 달려 3시간 만에 푸노에 닿았다. 푸노는 티티카카 호반에 자리한 관광도시로서 인구가 20만 명이나 되고 대학도 있는 제법 큰 도시이자 푸노 주의 주도(州都)다.

우리는 부두에서 배를 타고 ‘로스 안데스’라고 불리는 ‘떠 있는 섬(isla flotante)’으로 출발했다. 부두를 떠나 호수 안으로 한참 들어가니 큰 섬 한가운데에 하얀색으로 외벽을 칠한 제법 큰 관광호텔이 보인다. 섬 입구에 도착하니 입장권을 수거하는 관리인이 우리 배가 방문할 섬을 할당해준다. 이곳에 있는 40여 개의 섬에서 관광 수입에 의지해 살아가는 원주민을 위해 입구에서 방문할 섬을 공평하게 배분해준다고 했다. 우리에게 할당된 섬은 이슬라 토토라였다.

섬에 도착하자 원색의 전통 복장을 한 다섯 명의 인디언 처녀가 우리를 맞아준다. 캄미사라키!(kammisaraq·안녕이라는 뜻의 케추아어)를 연발하면서. 이에 대한 답은 왈리키(waliqi·감사합니다)다. 티티카카 호수의 명칭에서 ‘티티(Titi)’가 퓨마라는 의미고, ‘카카(Kaka)는’ 바윗돌 혹은 회색이란 뜻이란다. 그러므로 티티카카는 원래 ‘회색 퓨마’라는 의미다. 어떻게 해서 이런 이름이 나오게 됐는지 가이드에게서 설명을 들었는데 사연이 흥미롭다. 티티카카 호를 제일 처음 항공사진으로 찍은 것은 제미니 8호 우주선이라고 한다. 이 사진에 나타나 있는 티티카카 호를 거꾸로 보면 마치 퓨마가 토끼를 잡으려고 달려가는 것 같은 모양이라고 한다. 그런데 제미니 8호가 우주를 날기 이전인 잉카 시절부터 사람들이 이 호수를 티티카카라고 부른 것이다. 당시 이 호수 주변에 퓨마 무리가 서식하고 있다고 전한다. 잉카인들은 퓨마를 힘의 상징으로 숭상한다. 그런 잉카인들이 야간에 산에서 물을 먹으러 호숫가로 내려오는 회색 퓨마를 목격했을 것이며, 이로 인해 이 호수를 회색 퓨마를 가리키는 티티카카라고 불렀으리라는 추측이다.

우리 일행은 원주민의 권유에 따라 토토라 갈대배를 타보기로 했다. 이 배는 갈대배 두 척을 나무박스로 연결한 것인데 두 사람이 노를 저어 나아가는 구조다. 뱃머리에는 퓨마의 형상을 달아놓았다. 배를 탈 때 인디언 여인들이 케추아어로 노래를 불러준다. 한 여인이 한국인 관광객이 많이 오고 있어 한국어로도 노래를 불러주고 싶다며 가르쳐줄 것을 요청했다. 시간이 없어 노래를 일러주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우편물이 전달되는지 물으니 주소를 알려준다. 코레오 센트랄 푸노, 페루, 이슬라 토토라, 마르틴 차르카 코일라(Correo Central Puno, Peru, Isla Totora, Martin Charca Coila). 나중에 적당한 한국노래를 골라 카세트테이프를 보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떠날 시간이 되어 우리는 아쉬움을 뒤로한 채 그녀들과 작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쿠스코로 가고자 푸노 버스터미널로 되돌아왔다. 대합실은 인디오와 관광객으로 북적거렸다. 부스에서 여행객을 부르는 소리까지 뒤섞여 왁자지껄한 시장통 같았다. 가만히 들어보니 아레키파(Areguipa), 훌리아카(Juliaca), 나스카(Nasca) 등 페루의 관광지와 라파스(La Paz), 코파카바나(Copacabana), 데사과데로(Desaguadero) 등 볼리비아로 가는 버스도 있다. 일군의 젊은이들이 둘러서서 맥주를 마시면서 농담을 건네며 흥겨워한다. 어떤 이들은 푸노 시장에서 산 알록달록한 인디언 바지를 보여주며 무슨 전리품이나 되는 듯 서로 자랑한다. 브라질에서 온 듯한 사람도 있고 아르헨티나에서 온 듯한 젊은이도 있다. 서로 모르는 이들이 백년지기나 된 듯 친숙하다. 여행은 낯선 사람을 친숙한 관계로 만들어주는 신기한 매력이 있다. 분위기를 보니 이들도 우리와 함께 쿠스코로 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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