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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플로베르의 스타일을 만나다

  • 함정임│소설가·동아대 문예창작과 교수 etrelajiham@empal.com

파리, 플로베르의 스타일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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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플로베르의 스타일을 만나다

‘감정 교육’
G.플로베르 지음, 김윤진 옮김, 펭귄클래식코리아, 전 2권

프랑스 북부 노르망디 해안 도시 트루빌은 지난해 여름 열흘간의 프랑스 순례 중 마지막 행로의 출발지였다. 도빌과 트루빌을 여정에 넣은 것은 그곳이 영화제의 도시이고, 실제 영화 ‘남과 여’의 무대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의미심장하게 플로베르의 족적이 뚜렷이 찍혀 있는 곳이기 때문이었다. 플로베르의 족적이란, 곧 그의 소설 현장, 소설 주인공들의 동선과 무관하지 않다. 도빌과 트루빌, 이들은 한 나무에서 자란 줄기처럼 나란히 바다를 향해 함께 있는데, 트루빌 인근에는 퐁-레베크와 아름다운 포구마을 옹플뢰르가 위치해 있다. 옹플뢰르에서 한때 세계에서 가장 긴 사장교(斜張橋)로 유명했던 노르망디 대교를 건너면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모항이자 최근 동명의 영화로 한국에도 알려진 르아브르다. 플로베르의 걸작 중편 ‘소박한 마음’에 이 지명들이 별처럼 박혀 있다.

트루빌에 가려면 삼십 분 더 가야 했다. 몇몇 동행인이 에콜 절벽에 가기 위하여 걸음을 재촉했다. 그곳은 바로 밑에 배를 내려다볼 수 있는 절벽이었다. … 모두들, 왼쪽에 도빌 마을과 오른쪽에 르아브르 항구가 있고 정면에 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휴식을 하였다. 바다는 햇살에 빛나 거울처럼 매끄러워 그 출렁이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로 고요했다. -G.플로베르, ‘단순한 마음’ 중에서

모파상을 비롯해 아니 에르노, 파스칼 키냐르 등의 노르망디 지역이 현대 소설사에서 성좌를 이루는 것은 플로베르라는 거목의 영향임을 부인할 수 없다. 루앙 근처의 리(Ry)라는 작은 마을에서 실제 일어난 가정비극사건을 소재로 창작된 ‘마담 보바리’(1857)는 문외한의 눈으로 보면 통속소설 이상도 이하도 아니지만, 세계 소설사를 플로베르 이전과 이후로 나눌 정도로 획기적인 작품이다. 보통 여자보다 예민하고 지적 허영심이 강한 엠마라는 여인의 꿈(욕망)과 환상의 비극으로 요약되는 이 소설에서 ‘보바리즘’이라는 신조어가 탄생했고, 보바리즘은 ‘욕망의 화신’, 곧 현대인의 초상을 설명할 때 필수적인 참고점이 돼왔다. ‘마담 보바리’의 대성공 이후 플로베르는 사랑을 기저로 한 회심의 역사 장편에 돌입하는데, 이름 하여 ‘감정 교육(L‘Education sentimental)’(1869)이다.

마침내 배가 출발했다. … 갓 대학입학 자격시험에 합격한 프레데릭 모로는 노장-쉬르-센으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법학 공부를 하러 떠나기 전까지 그는 그곳에서 두 달 동안 지내기로 되어 있었다. 그의 어머니는 여정에 딱 필요한 돈만 주며 행여 유산 상속이라도 받을 수 있을까 하는 희망에 그를 르아브르에 있는 백부에게 보냈고, 그는 겨우 전날에야 그곳에서 돌아온 터였다. 그래서 가장 먼 길을 돌아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수도에 머물 수 없었던 아쉬움을 달랬다. - G. 플로베르, ‘감정 교육’ 중에서

주인공 프레데릭 모로는 플로베르 소설의 여느 주인공처럼 노르망디 출신이다. 그의 고향 트루빌은 플로베르가 14세 때 방학을 맞아 가족과 함께 갔다가 열 살 연상의 유부녀 엘리자 슐레징거를 처음 만난 곳. 플로베르는 루앙의 크루아세라는 센 강가의 한적한 별채에 평생 은거하며 소설에 몰두했는데, 몇몇 노르망디의 고장 중 트루빌을 끔찍이 사랑했다. 트루빌 해안가에 있는 플로베르의 멋진 동상에는 이렇게 새겨져 있다.

‘그(플로베르)가 지닌 감상적인 정서와 너무나 생생한 미학은 트루빌 사람들의 것이었다.’

트루빌 옆 동네 도빌의 롱샹 경마장 맞은편 언덕에는 플로베르 가문의 별장이 있는데(이후 시에 기증했다), 그곳은 루앙의 명문가 플로베르네가 바캉스 때 머무는 곳이었다. 소년 플로베르는 트루빌로 가족 소풍에 나섰다가 누군가의 아내이자 갓난아이의 엄마, 20대 중반의 매혹적인 여인인 엘리자 슐레징거를 보았고, 그때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기묘한 감정에 사로잡혔다. 소년 플로베르가 여인의 아름다움에 처음 눈뜨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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