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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계 세계은행 총재의 역설(逆說)

  • 김성해│대구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 박사)

한국계 세계은행 총재의 역설(逆說)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는 한족의 명나라를 파죽지세로 쳤다. 임진왜란 당시 명에 도움을 청했던 조선은 명의 원군(援軍) 요청을 거부하지 못했다.

광해군은 강홍립이 이끄는 군사 1만을 보내는 대신 이들로 하여금 청에 투항하게 함으로써 패권 다툼에서 비켜섰다. 그러나 당시 조정의 실권자인 서인들은 분노했고 인목대비 폐위 사건을 빌미로 왕을 내쫓았다.

권좌에 오른 인조는 청을 인정하지 않고 명에 충성하는 정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했다. 대만으로 옮겨가 있던 정성공 세력은 물론 나중에 ‘삼번의 난’을 일으키는 오삼계와 몽골의 준가르 세력에게 사신을 보내 협공을 제안했다.

청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명을 지원한 조선의 산하는 1636년 청의 말발굽에 짓밟혔다. 국익을 무시한 사대주의가 조선의 쇠락과 멸망으로 이어졌음은 물론이다.

미국 중심 질서에 반기 못 들게 돼

2012년 현재 한국의 국제적 위상은 과거와 비할 바 아니다. 국제연합(UN)의 사무총장에 이어 세계은행 총재 후보도 한국인 또는 한국계에 돌아갔다. 2010년 한국은 G20 의장국으로서 서울 선언을 이끌어냈다. 올해 3월에는 핵안보정상회의를 성공리에 마무리했다. 그러나 이 이면에는 드디어 미국으로부터 인정을 받았다는 사대주의가 내포돼 있다.

“한국인 위상 드높인 김용 세계은행 총재 지명” “반갑고 뿌듯한 김용 세계은행총재 후보” “한국인 최초 세계은행 총재…오바마의 히든카드”

김용 후보 지명과 관련된 보도다. 2010년 11월 서울에서 G20 정상회의가 열렸을 때의 반응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한국이 드디어 국제 경제 질서를 주도하기 시작했고, 국격(國格)을 끌어올렸으며, 미국의 가장 든든한 우방이 되었다는 자부심이 팽배했다. 그러나 한국 언론에서 다음과 같은 불편한 진실은 찾기 어려웠다.

1998년 들어 세계적으로 국제통화기금(IMF) 프로그램의 부작용이 본격적으로 드러났다. 고금리 정책으로 인해 대규모 부도가 발생했다. 정부가 긴축재정을 펴자 민간소비는 급속히 위축됐고 경기불황이 뒤따랐다.

인도네시아에선 정부의 석유보조금 철폐로 정치폭동이 일어났다. 당시 IMF 정책이 실수였다는 주장이 자매기관인 세계은행 내부에서도 나왔다.

대표적인 인물이 조지프 스티글리츠였다. 미국 재무부와 IMF는 그를 몹시 꺼렸다. 1999년 재무부의 실력자 로렌스 서머스는 연임을 원한 제임스 올펜손 세계은행 총재를 압박해 스티글리츠를 해고하도록 했다.

로렌스 서머스는 재무부 차관을 거쳐 장관으로 승진했다. 1944년 설립 이후 IMF 총재는 유럽에서, 세계은행 총재는 미국에서 임명한다는 불문율은 깨진 적이 없다. 한국계 세계은행 총재의 탄생에만 흥분한 결과 한국은 이번에도 미국의 과도한 권력 행사, 비민주적인 의사결정 구조, 전문성 부족과 같은 구조적인 문제점을 외면했다. 한국계 세계은행 총재라는 존재가 국가 이익에 손실을 초래할 가능성에 대해선 냉정하게 고민하지 않는다.

한국 정부의 외교적 노력을 부정할 수 없지만 한국이 G20 의장국이 되는 데에 미국의 지원은 결정적이었다. 그렇다면 G20 의장국 자리가 한국에 이익만 준 것일까?

2010년 G20 의장국을 맡음으로써 한국은 투기자본 규제, 국제신용 평가회사 개혁, 아시아통화기금을 포함한 지역 간 금융협력과 같은 ‘한국의 국익에 중요하지만 미국이 원하지 않는 의제’를 제대로 제기하지 못했다.

패권국만 비추는 전조등

월터 리프만은 ‘여론’이라는 책에서 언론을 깜깜한 밤의 전조등으로 비유했다. 국민은 언론이 비춰주는 세상밖에 볼 수 없다는 이야기다. 인터넷을 통해 원하는 정보를 손쉽게 얻는 현대사회에서도 국민 대다수는 여전히 주류 매체가 생산하는 뉴스를 통해 중요 정보를 얻는다. 뉴스라는 공적 지식을 통해 세상의 변화를 이해하고 특정 정책에 대한 찬반 입장을 결정하는 것이다.

17세기 조선의 백성은 사대부가 설정하는 공론을 따랐고 21세기 우리는 언론이 설정하는 의제를 따른다. 예나 지금이나 여론주도층이 패권국의 시각에 경도돼 실질적 국익을 제대로 성찰하지 않는다는 점은 참 많이 닮았다.

신동아 2012년 5월 호

김성해│대구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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