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세상을 바꾼 책 이야기

세계 ‘대양해군’ 정책의 교과서

  • 김학순│고려대 미디어학부 초빙교수·북칼럼니스트 soon3417@naver.com

세계 ‘대양해군’ 정책의 교과서

1/2
세계 ‘대양해군’ 정책의 교과서

‘해양력이 역사에 미치는 영향’
알프레드 세이어 마한 지음, 김주식 옮김, 책세상, 전 2권

중국의 첫 항공모함 ‘바랴크’가 오는 8월 1일 인민해방군 창군기념일에 정식 취역한다. 6만7000t급의 바랴크는 작전반경이 1000㎞에 달한다. 바랴크는 황해는 물론 동중국해, 남중국해 등 서태평양 지역을 누빈다. 중국은 2020년까지 최다 5척의 항공모함을 포함해 400척의 함정을 보유할 것이라는 보도가 잇따른다.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은 이미 2006년 ‘중국의 대양해군’을 선언했다. 중국 국가해양국도 2010년 ‘중국해양발전보고’에서 해양파워의 구축은 21세기 중국의 역사적 책무이며, 향후 10년은 이 임무를 실현하는 역사적 단계가 될 것이라고 천명했다.

인도는 지난 4월 4일 러시아제 신형 핵잠수함 ‘INS 차크라’를 진수해 핵잠수함을 운용하는 세계 여섯 번째 나라가 됐다. 기존의 해양 초강대국인 미국은 이에 대응해 태평양함대의 전진배치와 강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리언 패네타 미국 국방장관은 2020년까지 해군력의 60%를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배치하겠다고 최근 밝혔다. 일본 역시 중국의 급속한 해양력 팽창에 맞서 헬기 항공모함과 잠수함 건조 등으로 해군력 증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바다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는 국제정치의 격언이 새삼스럽게 다가오는 현상들이다. 이 격언은 “바다를 지배하는 자가 무역을 지배하고, 세계의 무역을 지배하는 자가 세계의 부를 지배하며, 마침내 세계 그 자체를 지배한다”고 했던 영국의 군인 출신 탐험가 월터 롤리의 명언을 축약한 것이다.

이 격언을 누구보다 역설하며 미국을 오늘날의 초강대국으로 올려놓은 주역 가운데 한 사람이 미 해군 제독과 해군대학교장을 역임한 알프레드 세이어 마한(1840~1914)이다. 그가 1890년 출간한 명저 ‘해양력이 역사에 미치는 영향(원제 The Influence of Sea Power upon History)’은 말 그대로 세계 역사를 바꿔놓았다. 이 책은 해양 역사와 전략을 입체적이고 명쾌하게 추적해, 오늘날 세계 어느 곳이라도 지켜낼 수 있는 미국 해양력의 이론적 바탕이 됐다. 일반인에겐 그의 이름과 이 책이 다소 생소할지 모르지만 국제 정치와 현대사에 미친 영향은 실로 어마어마하다.

프랑스의 몰락과 영국의 부상

이 책은 1660년부터 1783년까지 일어난 일곱 번의 전쟁과 30여 차례 해전을 치밀하면서도 생생하게 분석했다.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스페인 등 대서양 연안의 유럽 4대 해양강국과 독립전쟁 당시의 미국 해양사를 꼼꼼하게 해부했다. 마한은 특히 ‘대영제국’이 어떻게 건설됐는지를 되짚으며 미국도 바다로 눈을 돌려 해양력을 새롭게 인식하기를 간절히 희망했다. 프랑스가 영국에 결정적으로 뒤지기 시작하는 과정을 현미경처럼 들여다본 대목이 매우 인상적이다.

“프랑스인은 영국인과 네덜란드인처럼 정열적으로 바다에 나서지 않았으며, 나간다하더라도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다. 프랑스인이 그렇게 된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자연 조건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프랑스 기후가 매우 쾌적했으며 또한 필요 이상으로 많은 것을 생산할 수 있는 비옥한 토지가 많았다는 점이었다. 반면에 영국은 자연으로부터 얻을 것이 거의 없었고, 제조업이 발달하기까지는 수출할만한 것도 변변치 않았다. 그처럼 많은 분야에서 부족한 것이 많았기 때문에 부지런한 국민성과 해양활동에 적합한 다른 조건들이 어울려 영국인은 해외로 눈을 돌리게 되었다.”

또 ‘태양왕’이란 별명을 지닌 루이 14세가 허영과 오만으로 잘못된 해양 정책을 취한 것을 날카롭게 꼬집는다. 루이 14세의 통치 후반기는 해양력 기반의 약화에 이은 무역이 가져다주는 부의 약화가 또다시 해양력을 쇠퇴시킨다는 점을 명징하게 보여준다고 마한은 지적한다. 당시 한 프랑스 해군장교의 촌평이 이를 증언한다. “해군이 보여주었던 경이감이나 위대한 업적은 이미 잊혀버렸다. 누구도 이제 더는 해군의 가치를 믿지 않았다. 그 대신 국민과 훨씬 직접적으로 접촉하고 있던 육군이 국민의 호감과 동정을 받았다. 프랑스의 흥망성쇠가 라인 강 유역에 달려 있다는 잘못된 생각이 널리 퍼졌으며, 해군에게 등을 돌린 반감은 영국을 강국으로, 우리나라를 약소국으로 만들었다.”

프랑스는 1672년 대륙확장노선을 선택했다. “프랑스 정부는 국민이 개인적인 노력으로 바다를 다시 차지하려고 애쓰던 바로 그 순간에 바다를 포기해버렸다”는 말이 한층 아프게 다가온다. 만약 1743년 이후 20년 동안 영국 함대 대신 프랑스 함대가 인도 주변의 해안, 인도와 유럽 사이의 바다를 지배했더라면 역사가 달라졌으리라는 견해도 마찬가지다. 프랑스는 멀리 떨어진 지역에서 해양력을 행사하는 데 실패함으로써 인도와 캐나다를 잃었다.

프랑스를 비롯한 다른 나라와 달리 영국은 한동안 경쟁자 없이 해군함정으로 대양의 통상로를 지배했다. 이 점을 마한은 눈여겨봤다. 영국의 막강한 해군력은 멀리 떨어지고 풍요로운 지방과 교역하는 어떤 나라도 통제할 수 있게 했다. 이 힘은 아우크스부르크 동맹전쟁 바로 직전 형성되기 시작해 스페인 왕위계승전쟁 동안에 완성됐다. 이때부터 영국군함은 세계적인 분쟁이 가능한 곳이면 어디에서나 활동할 수 있도록 해주는 확고하고 강력한 기지를 갖게 됐다고 한다.

네덜란드를 풍전등화의 위험에서 구한 것도 바로 해양력이라고 지은이는 말한다. 영국 프랑스 양쪽보다 인구가 적은 네덜란드는 이 두 나라의 단독 공격과 2년간 계속된 두 나라의 연합공격 속에서도 파멸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유럽에서의 지위도 잃지 않았다. 마한은 이에 대해 ‘정말 놀랍다’고 찬탄한다. 그러나 네덜란드 정부의 정책은 해양력을 꾸준히 뒷받침해주지 못했다고 비판한다.

한때 무적함대로 불리던 스페인이 지브롤터를 잃음으로써 지브롤터 해협에 대한 통제력을 빼앗겼고, 스페인의 지중해 함대와 대서양 함대도 합동작전을 쉽게 수행할 수 없게 됐다고 지은이는 애석해 한다. 이 책은 근대 세계에서 힘깨나 쓰던 나라는 세계의 바다를 장악하고 해상무역으로 부를 축적했음을 증언한다.
1/2
김학순│고려대 미디어학부 초빙교수·북칼럼니스트 soon3417@naver.com
목록 닫기

세계 ‘대양해군’ 정책의 교과서

댓글 창 닫기

2018/12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