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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 에세이

나만의 여름 인사법

  • 정찬주│소설가

나만의 여름 인사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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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여름 인사법

1990년 여름 전남 순천시 송광사 불인담에서 대화하는 법정스님(왼쪽)과 정찬주 씨.

얼마나 더운지 호박잎이 무서리 맞은 것처럼 시들하다. 개똥을 두서너 광주리나 묻어준 힘으로 네댓 줄기가 기세 좋게 뻗어나가던 호박덩굴도 숨죽인 채 엎드려 있다. 올해는 꽃이 피기는 하지만 호박이 열리지 않아 나를 실망시키고 있다. 벌들이 줄어 꽃가루받이가 안 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여름을 관통하고 있는 요즘 나만의 인사법을 소개하고 싶다. 숨쉬기조차 힘든 무더위 속에서도 여유를 가져보자는 단순한 바람에서다. 나만의 인사는 전화로 직접 안부를 묻지 않고 휴대전화로 문자를 보낸다. 목소리는 사람을 감성으로 이해시키지만 문자는 이성으로 성찰케 하는 데 효과적이다.

“더위 안에 있습니까? 더위 밖에 있습니까?”

성격이나 직업에 따라 대답은 천차만별이다. 곡성 관음사 주지인 대요 스님부터 소개하자면 이렇다. 나의 질문에 스님은 곧 답을 보내왔다. 답이 아니라 질문이다.

“더위가 뭐지요?”

“쏟아지는 잠.”

“아! 그렇구나.”

나는 더위를 기상학적인 단어로 말한 게 아니라 집중이나 몰입 혹은 삼매로 말한 것이고, 내가 완벽하고 순수한 삼매를 ‘쏟아지는 잠’으로 표현하자 스님은 금세 알아채고 맞장구를 치고 있는바 나로서는 스님에게 청향(淸香)의 차 한 잔을 권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찻잔 속에 풍덩 빠져보자고요.”

“시원합니다.”

“그러실 줄 알았습니다. 제 말을 훔쳐갔습니다. 이제 돌려주세요.”

“개울가 물소리가 사람을 웃기네.”

“사람이 개울가 물소리를 울리네.”

곡성 관음사나 내 산방 앞에는 맑은 개울물이 흐른다. 눈앞의 실재를 얘기하지 않으면 공허한 메아리가 되기 십상이다.

“한 점 맑은 바람 시원한 자리를 전합니다.”

“맑은 바람이 한자리 차지함을 탓하지 않으리.”

이와 같은 선문답을 하고 나면 실제로 청량한 바람이 이마를 스치는 느낌이다. 이심전심으로 상대의 재치와 근기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선문답이 선방 울타리 안에서 정진하는 선사들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에 쾌감마저 든다. 이번에는 사진작가 유동영 씨와 문답을 나눈 것이다.

“더위 안에 있는가? 더위 밖에 있는가?”

“안도 밖도 아닌데요, 선생님은 어떠신가요?”

“배고파 밥 먹고 있다네!”

“역시 밥이 최곱니다. 누룽지도 먹고 있습니다. 편안한 시간 보내세요.”

“누룽지까지 먹어야 밥 먹었다고 할 수 있지.”

선문답이라고 하니 현실을 뛰어넘는 관념적인 말장난으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실제로 유동영 작가와 얘기할 때는 서로 저녁을 먹고 있었고, 실제로 요즘의 나는 하루 한 끼만 먹고 있으므로 배가 너무 고파 밥 먹는 동안에는 더위를 잠시 잊어버린 채 누룽지까지 해치울 기세였던 것이다. 선가(禪家)에 ‘바다에 가려면 바다 밑까지 가고, 산을 오르려면 산봉우리까지 가라’는 말이 있는데, 같은 맥락이 아닐까 싶다. 어설프게 굴지 말고 절절하게 살라는 금언이다.

바쁘신 분과는 마치 목례만 하고 지나치듯 간단하게 끝낸다. 펜화가 김영택 화백과의 인사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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