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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률·권태균의 오지 기행

그리운 임은 아니 보이고 갈꽃만 날리네

전남 완도군 노화도

  • 글·김동률│ 서강대 MOT대학원 교수 yule21@empas.com 사진·권태균│ 사진작가 photocivic@naver.com

그리운 임은 아니 보이고 갈꽃만 날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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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구들의 소굴

지금의 노화도의 가장 큰 특징은 여느 섬답지 않은 풍요로움에 있다. 노화도 선착장에 가서는 돈 이야기 하지 말라는 말이 있고 노화도에서는 지나가는 개도 5만 원짜리 한 장 물고 다닌다는 우스갯소리도 등장한다. 다소 과장이 있긴 하지만 완전한 허풍은 아니다.

오랫동안 가난에 허덕이던 이 곤고했던 섬은 이제 국내 최고의 전복 양식장으로 이름을 드날리고 있다. 조수간만의 차가 큰 데다 수심이 얕고 거기다가 전복의 먹이가 되는 미역과 다시마가 지천에 널려 있다. 전복 양식의 최적지라는 것이 해돋이양식장을 운영하는 이포리 주민 서병식(58) 씨의 설명이다.

대한민국 섬 중에서 도회로 나갔던 젊은이들이 돌아오는 유일한 섬이라고 한다. 서 씨의 말에도 돈의 힘이 들어가 있다. 막상 얘기를 듣고 보니 섬의 곳곳에 생기가 있어 보인다. 집 지붕과 담장은 벽화로 장식되어 있는 등 다양한 모양으로 한껏 멋을 내고 있다.

그러나 전복은 섬 노인들이 키우는 수산물이 아니다. 쌀알만한 크기의 전복 종패가 경매장으로 나가는 주먹만한 상품으로 크기까지는 대개 5~6년 걸린다. 그렇다 보니 나이가 칠십에 가까워오면 섬사람들이 서서히 전복 양식을 포기한다고 서 씨가 전한다. 하기야 민요 한오백년의 한 자락처럼 명년 봄에 다시 피는 해당화 진다고 설워할 필요는 없겠지만 칠십이 넘은 마을 노인에게는 한 해가 가는 것이 어찌 서럽지 않겠는가. 그래서 전복 양식은 이제 돈 많은 서울 사람이 주로 자본을 대고 섬에 연고가 있는 귀향민이 일손을 부치는 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전복과 갈대의 섬

그리운 임은 아니 보이고 갈꽃만 날리네

조선내화 창립자 이훈동 회장상.

갈대가 흐드러지게 많은 노화도에서 귀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갈대의 막내 동생쯤 되는 잔디다. 섬사람들은 죽음이 가까워지면 집 마당에 잔디떼를 가꿔왔다고 한다. 그래야 죽은 뒤 자신의 무덤 봉분에 최소한의 떼라도 입힐 수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마당마다 잔디 키우기에 열심이었다고 하니 남녘 바닷가 작은 섬이 갖는 특별한 의식이었다고 할 만하다.

노화도를 둘러보노라면 노천 광산이 눈길을 끈다. 제철고로나 원자로에 사용되는 납석 광석을 캐내는 곳이다. 지천에 널려 있는 납석을 가공해 제철소에 파는데 생산물량의 90% 이상이 일본으로 수출된다. 목포 부자인 조선내화㈜ 설립자 이훈동 선생의 내화공장도 여기서 생산되는 납석을 주원료로 쓴다고 한다. 노천 광산 사무실 앞에는 이훈동 선생의 좌상이 우뚝 서 있다. 예전에 서너 번 찾아간 목포 유달산 기슭 그의 집은 그가 세상을 떠난 후 이훈동정원으로 이름을 바꿔 일반인에게 개방하고 있었다. 얼마나 아름다운지 박정희 전 대통령이 호남지방으로 나들이할 때마다 만사를 제쳐두고 이훈동 자택에서 잠을 청했다고 한다. 그 이훈동정원의 모태가 이름 없는 작은 섬 노화도의 납석 광산이라고 하니 세상의 이치는 참으로 묘하다.

섬에서 보낸 새벽은 적막하다. 전날 낮에 보았던 풍경은 간 데 없고 갑자기 바다는 낯설기만 하다. 새벽 바다는 스테판 말라르메의 표현처럼 몽환적이다. 말라르메는 ‘바다의 미풍’이라는 시에서 “오! 육체는 그저 슬프기만 하고 그래서 떠나버리자, 그리하여 뱃사람들의 노랫소리를 들어라”라고 노래하고 있다. 그러나 노화도를 뒤로하고 돌아오는 연락선에 뱃사람의 노래는 없다. 처량한 트로트 유행가 가락만 되돌이표로 반복되고 있다. 연락선은 바다 안개에 온몸이 촉촉이 젖어 있었다. 선미 쪽으로 의자를 돌려놓고 바라다보는 먼 바다는 외로워 보였다. 후텁지근한 날씨, 노화도가 거느리고 있는 크고 작은 무인도들이 눈앞에 다가왔다 사라진다.

나의 단골 ‘섬’ 술집

섬이라는 말은 한 시절 내가 가졌던 동경, 막연한 고독함, 외로움이 절절이 배어 있는 상징이다. 그래서 서울 신촌 골목 어디와 이화여대 후문 고가도로 옆에 있던 섬이라는 술집은 나의 단골집이었다. 그 술집 벽에는 장 그르니에의 퀭한 얼굴을 그려놓은 천이 걸려 있었다. 그 천에 새겨진 시구가 떠오른다.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정현종의 시 ‘섬’이다. 단 두 줄이 전부인 시다. 사람들 간의 단절과 소통을 섬을 통해 형상화한 것으로 보인다. 알베르 카뮈의 스승인 장 그르니에의 얼굴과 정현종의 시를 통해 섬이 갖는 단절, 외로움, 숙명 또는 운명쯤을 어슴푸레 짐작하게 된다.

노화도를 떠나는 이른 아침, 마음은 안개 짙은 포구를 떠나지 못한다. 적막한 갯벌을 바라보며 스스로를 되돌아본다. 나는 이 짧은 여행을 통해 노화도 앞바다의 소금 냄새와 짙은 해당화 향기를 문신처럼 몸에 새기게 된다. 그리운 모든 것은 갈꽃 섬이라는 센티멘털한 말 한마디에 고스란히 담겼다. 초대하지 않은 가을이 뱃전에 와 맴돈다.

그리운 임은 아니 보이고 갈꽃만 날리네

포구 안 마을 풍경(왼쪽). 아름다운 돌담.



신동아 2012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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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김동률│ 서강대 MOT대학원 교수 yule21@empas.com 사진·권태균│ 사진작가 photocivic@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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