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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철 기자의 건강萬事

조선 침법, 고전 명약 이명 비염 잠재우다

갑산한의원을 칭찬하는 까닭

  • 최영철 기자│ ftdog@donga.com

조선 침법, 고전 명약 이명 비염 잠재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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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침법, 고전 명약 이명 비염 잠재우다

알레르기 비염에 대해 설명하는 갑산한의원 이상곤 원장.

의학·건강담당 기자는 종종 고민에 빠진다. “이명 치료 잘하는 병의원이 어디에요” “알레르기성 비염 속 시원하게 치료하는 곳 어디 없어요?” 기자에게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들은 이미 웬만한 병의원을 거쳐온 ‘찌든’ 환자들이다. 이명과 알레르기성 비염은 치명적 질환은 아니지만 삶의 질을 바닥으로 떨어뜨리는 악성 질환이자 치료하기가 힘든 난치성 질환이다. 병의원을 잘못 추천했다가는 이런저런 공박을 각오해야 한다.

이런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할 때마다 기자는 “치료가 될지 안 될지는 모르지만 믿고 치료를 맡길 수 있는 곳은 있다”고 말한다. 즉, 이 세상에 치료율 100%를 자랑하는 병의원은 양·한방을 합쳐도 없고, 그런 약도 없으며 다만, 의사가 가진 치료 지식과 논리, 술기, 환자를 대하는 태도가 믿을 만한 곳은 있다는 의미다. 특히 자신이 치료하는 환자와 질병에 겸손한 의사라면 금상첨화다.

이명과 알레르기 비염 치료에 대해 기자가 ‘믿을 만하다’고 추천할 수 있는 의사는 서울 서초구에 자리 잡은 갑산한의원 원장 이상곤 박사다. 대구한의대 이비인후과 교수를 지낸 그는 각 매체의 칼럼니스트로 활약하고 있으며 TV 강연도 몇 번씩 했지만 유난스럽게 자신을 광고하지 않는다. 스테디셀러 반열에 오른 그의 저서 제목도 ‘낮은 한의학’이다.

솔직히 선후배 기자를 비롯해 많은 지인에게 추천했지만 욕을 먹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10명이 다녀오면 7, 8명은 고맙다는 인사를 전한다. 이명과 알레르기성 질환 같은 난치성 질환에 이만한 성적표라면 대박이다. 실제 이 박사는 “완치할 수 있다”는 말을 절대 쓰지 않는다.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만 한다.

이런 겸손함과 함께 기자가 그에게 신뢰를 보내는 이유는 이들 질환에 대한 이 박사의 해박한 지식과 열성 때문이다. 그는 동서양을 아우르는 치료법뿐 아니라 해당 질환과 치료법이 나오게 된 역사적 맥락과 배경 철학까지 꿰뚫고 있다. 사라진 치료법까지 복원해내는 그의 철두철미함은 혀를 내두를 정도. 거기에 한방을 과학적으로 증명하려 애쓰고, 한의학과 서양의학의 접점을 모색하려는 그의 ‘오픈 마인드’도 믿음을 더한다.

그럼 지금부터 이명과 알레르기성 비염에 대한 이 박사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워낙 논리와 근거가 확실해 말을 듣다보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우선 이명의 원인과 치료 침법에 대한 부분이다.

이명 잡는 허임 침법

“이명은 한자로 ‘耳鳴’으로 쓴다. 귀에 소리가 나는 증상을 왜 한의학은 귀소리라 하지 않고 귀의 울음이라는 감정적인 말로 표현할까? 울음은 당연히 심신의 고통스러운 상태를 표현한다. 고통은 보통 두 가지로 나뉜다. 정신적 고통과 육체적 고통이다. 정신적 고통은 현대적으로 말하면 스트레스다. 스트레스는 인간관계의 스트레스나 직장의 업무, 고민거리, 고부 갈등 등으로 몸의 싸움이 아닌 마음의 싸움이다. 스트레스가 생기면 우리 몸속에서 투쟁을 주도하는 교감신경계가 흥분하는데 설명하자면, 외부의 적과 싸움하는 것과 같은 긴장 상태에 놓이게 된다.

싸울 때 사람들은 주먹을 움켜쥔다. 그러면 손발의 혈관은 긴장되어 좁아지거나 굳어진다. 심장박동이 빨라지면서 흥분하거나 열 받는 상태가 된다. ‘열 받은 상태’라는 것은 한방적 해석의 핵심이다. 귀 건강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뜻이다. 사람들은 불에 손을 데 뜨거워지면 귓불을 만지면서 식힌다. 귀는 본래 찬 성질을 지니기 때문에 이런 본능적 반응이 나온다. 따라서 귀가 더워진다는 것은 병적인 상태로 진행되고 있다는 증거다.‘동의보감’ 귀울음 조문은 이렇게 표현한다.

‘스트레스를 주관하는 경락은 간담이다. 간담이 열을 받으면 기가 치밀어 오르면서 귓속에서 소리가 난다’

이런 사실은 역사적으로도 증명된다. 선조는 중종의 정비가 아닌 창빈 안씨 사이에서 난 둘째 아들 덕흥군 이초의 아들이다. 조선에서는 처음으로 후궁의 자손으로 왕위에 오른다. 선조의 할머니인 창빈 안씨의 능이었던 동작릉이 풍수가들의 연구대상이었던 점을 생각하면 얼마나 파격적인 왕위 추대였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바야흐로 왕권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신권의 시대가 시작되면서 선조는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이명증상이 생긴다.

조선 최고 침법의 부활

조선왕조실록은 선조의 이명을 치료하기 위해 조선 최고의 침의(鍼醫) 허임이 침을 놓았다고 전하고 있다. 스트레스로 인해 기가 치밀어 올라 귀로 집중된 것을 손발에 침을 놓아 손발 끝으로 기를 분산하고 조화롭게 균형을 잡아 귀울음을 해소했다. 선조를 치료한 허임 침법은 특징이 있다. 일반적인 침법이 득기(得氣)를 위주로 한 번 찌르는 반면 허임의 침법은 세 번에 걸쳐 돌리고 기의 방향에 따라 득기를 하면서 침의 효과를 극대화한다. 이면에 천지인(天地人)이라는 철학적 원리를 내포한 조선 고유의 심오한 침법이다.”

조선시대 최고의 한의사라 하면 대부분 허준을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허준조차 인정한 조선시대 최고의 침의는 따로 있다. 허임(1570~1647년 추정)이 바로 그다. 허임은 선조와 광해군 때 활약한 침의로 공식적인 직함은 종기를 치료하는 ‘치종교수’였다. 조선왕조실록(선조 35년 6월 12일)은 그에 대해 “의관 허임은 모든 침을 잘 놓는다. 일세를 울리는 사람으로 고향에 물러가 있다”고 기록해놓았다. 선조 37년 9월 23일 조선왕조실록에는 허준이 허임에 대해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신은 침을 잘 놓지 못합니다만, 허임이 평소 말하기를 경맥을 이끌어낸 다음에 아시혈에 침을 놓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때 어의였던 허준의 나이 58세, 허임은 34세. 허임의 침 실력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는 자신의 침법을 ‘침구경험방’과 ‘동의문견방’에 남겨놓았다. 백과사전도 ‘조선 제일의 침의’로 인정하는 그의 ‘침법’은, 그러나 경전과 혈(穴)자리, 오행(五行)이라는 유교적·관념적 철학에 빠진 조선의 풍토에서 대를 잇지 못한 채 사장됐다. 400년이 흐른 지금 허임의 침법인 ‘허임 보사법(補瀉法)’을 각종 문헌과 구전을 종합하고 자신의 치료 경험을 더해 복원시킨 이가 바로 이 박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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