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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 에세이

인생의 가을은 왜 이리도 빠른고

  • 김동길│연세대 명예교수

인생의 가을은 왜 이리도 빠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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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가을은 왜 이리도 빠른고
시인 중에 시인이었던 중국의 이태백은 그의 가을을 이렇게 읊었습니다.

침상 머리 비치는 달빛을 보고

서리가 내렸는가 의심했지요

고개 들어 산 위에 달을 보았고

고개 숙여 고향을 생각했다오



牀前看月光(상전간월광)

疑是地上霜(의시지상상)

擧頭望山月(거두망산월)

低頭思故鄕(저두사고향)

동양인의 가슴에만 가을이 서러운 건 아니고 서양인에게도 가을은 슬픈 계절인 듯합니다. 6·25전쟁 뒤에 유행했던 프랑스의 샹송 하나는 애절한 슬픈 노래인데 영어로 옮겨져 가을의 낙엽과 이별의 슬픔이 아우러진 노래가 되었습니다. “내 사랑이여 나 그대를 못 잊어 하네, 가을 나뭇잎이 떨어지기 시작할 때면” (I miss you most of all my darling when autumn leaves start to fall.)

그리고 영국시인 테니슨(Alfred Tennyson)의 유명한 가을의 노래가 있습니다. 그는 절친했던 친구 핼람을 잃은 슬픔 때문에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때는 가을 이었습니다.

눈물이여, 하염없는 눈물이여

나 그 뜻을 헤아리지 못하네,

어떤 거룩한 절망의 깊음에서 생겨나

가슴에 솟구쳐 두 눈에 고이는 눈물

행복한 가을의 들판을 바라보며

다시 돌아오지 못할 날들을 생각할 적에

Tears, idle tears, I know not what they mean,

Tears from the depth of some divine despair

Rise in the heart, and gather to the eyes,

In looking on the happy Autumn-fields,

And thinking of the days that are no more.

고향이 그립고 친구가 그립고 세상 떠난 부모와 형과 누나가 그리운 계절입니다. “인생은 괴로우나 아름다운 것”임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오늘 아침 이 글을 쓰면서도 84회 생일을 며칠 앞둔 이 늙은이의 눈에는 이슬이 맺힙니다. 가을이라는 계절이, 그리고 인생 자체가 서럽게 느껴집니다. 나이 들면 사람이란 어쩔 수 없이 마음이 약해지고 나도 모르게 감상적이 되는 게 아닐까요.

가을을 이야기하면서 나는 조선조의 뛰어난 선비 고산 윤선도를 생각하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가을 윤선도’를 생각하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그는 자신의 가을을 이렇게 읊었습니다.

꽃은 무슨 일로 피면서 쉬 지고

풀은 어이하여 푸르는 듯 누르나니

아마도 변치 않을손 바위뿐인가 하노라

인생의 가을은 왜 이리도 빠른고
김동길

1928년 평남 맹산 출생

1951년 연희대 영문과·미국 에반스빌대 역사학과 졸업, 보스턴대에서 링컨 연구로 철학박사 학위 취득

연세대 교무처장·부총장, 조선일보 논설고문, 제14대 국회의원, 신민당 대표최고위원

(현) 사단법인 태평양시대위원회 이사장, 연세대 명예교수

저서 : 등 80여 권


가을의 해는 짧습니다. 그리고 세월의 템포가 말할 수 없이 빠른 계절입니다. 아름다운 꽃은 피었다 곧 지는 것이고 봄풀의 푸름도 오래가지 않습니다. 억울한 한평생을 살았던 선비 윤선도는 꽃 지고 풀 시든 들판의 큰 바윗돌 하나를 보았을 것입니다. “세상은 다 변해도 너만은 변하지 않는구나.” 몰아치는 비, 바람, 눈, 서리에도 굽힘없이 제자리를 지키는 저 큰 돌은 과연 무엇이겠습니까.

그가 목숨 바쳐 섬기던 그의 임금님과 그 나라, 그 백성이 아닐까요. 고산이 오늘 살아있다면 그에게 ‘변치 않는 바위’는 곧 그의 조국 대한민국일 것이고 그 조국의 자유민주주의일 것입니다. “아 아, 아 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그러나 5000년 지켜온 우리의 조국은 영원합니다. 5000년 뒤에도 여기 이렇게 존재할 것입니다.

신동아 2012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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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길│연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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