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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꾼 책 이야기

덕치주의 理想 뒤엎은 정치사상사의 혁명

  • 김학순│고려대 미디어학부 초빙교수·북칼럼니스트 soon3417@naver.com

덕치주의 理想 뒤엎은 정치사상사의 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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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치주의 理想 뒤엎은 정치사상사의 혁명

‘군주론’
니콜로 마키아벨리 지음, 강정인·김경희 옮김, 까치, 267쪽, 8000원

“니콜로 마키아벨리는 눈을 뜨고 이 세상에 태어났다. 소크라테스처럼, 볼테르처럼, 갈릴레오처럼, 칸트처럼….”

100세를 맞을 때까지 명석한 두뇌를 잃지 않았던 이탈리아 작가 주세페 프레촐리니는 그의 저서 ‘니콜로 마키아벨리의 생애’를 이렇게 시작한다. 500여 년 전의 마키아벨리를 서슴없이 ‘나의 친구’라고 부르는 베스트셀러 작가 시오노 나나미는 여기에 한마디 덧붙인다.

“그러나 그 당시 눈을 뜨고 태어난 것은 마키아벨리 한 사람만이 아니었다. 그리고 후세는 그 시대 유럽의 다른 나라들을 중세라고 부르는 것과 구별해 같은 시대의 이탈리아를 르네상스라고 부르게 된다.”

걸출한 정치사상가 마키아벨리(1469~1527)가 정치를 윤리와 도덕에서 분리한 혁명적인 사색은 르네상스가 신에서 인간을 독립시킨 일과 무관하지 않음을 적확하게 꿰뚫은 통찰이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이래 오랜 세월 동안 정치는 윤리나 도덕과 같은 것이었다. 최선의 정치형태는 철학자가 다스리는 ‘철인정치’라고 설파한 플라톤의 말이 신봉대상인 시대였다. 중세에 접어들어 토마스 아퀴나스 같은 철학자들이 기독교의 생각까지 덧붙이자 정치사상은 점점 더 하늘에 떠 있는 이상주의로 변해갔다. 마키아벨리와 동시대인인 토머스 모어조차 “정치란 인간의 본성에 뿌리박은 ‘비르투스(덕)’의 문제”라고 했을 정도다.

공자와 맹자 이래의 동양사회도 정치를 도덕 아래에 두긴 마찬가지였다. 보다 더 도덕적인 사회를 만드는 것이 정치의 요체이자 사명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군주의 최고 미덕은 덕치였다. 누구나 너그럽고 어진 왕을 이상적으로 묘사했다. 그 같은 사회 분위기 속에서 ‘정치 행위가 윤리적 가치나 종교적 규율로부터 결별해야 한다’며 반기를 들고 나온 이가 마키아벨리다. 그의 대표작 ‘군주론’(원제 Il Principe)은 냉혹한 현실에 바탕을 둔 정치를 역설하며 근대 정치학의 문을 연 저작으로 꼽힌다. 마키아벨리가 현실주의 정치사상의 아버지로 불리는 것도 바로 ‘군주론’때문이다. 이상적인 군주는 착하고 어진 군주가 아니라 때로는 냉혹하고, 필요하다면 군주 스스로 약속을 어기기도 해야 한다는 점을 마키아벨리는 부각시켰다. 이 때문에 그는 ‘권모술수의 화신’이라는 달갑잖은 별명을 얻었다. 동양에서는 ‘서양의 한비자’란 별칭도 따라다닌다.

확실한 권력자

‘군주론’에서 가장 유명한 말은 ‘군주는 여우의 지혜와 사자의 힘을 동시에 갖춰야 한다’는 비유일 게다. 널리 알려진 18장의 핵심은 이 대목이다.

“나는 야수 중에도 여우와 사자에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자만으로는 덫으로부터 몸을 지킬 수 없고, 여우만으로는 이리로부터 몸을 지킬 수 없으나, 여우임으로써 덫을 피할 수 있고, 사자임으로써 이리를 쫓아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여우적인 성질은 교묘히 사용되어야 한다. 아주 교묘히 속에 감추어놓은 채 시치미를 뚝 떼고 의뭉스럽게 행사할 필요가 있다.”

마키아벨리는 국민에게 사랑받는 것보다 무섭게 여겨지는 편이 군주로서 안전한 선택이라고 권한다. 인간은 무서운 사람보다 사랑하는 사람을 사정없이 해치는 성향이 있기 때문이란다. 두려운 지도자는 엄격하게 법을 적용하고, 사랑받는 지도자는 국민정서에 부합해 인기를 얻고자 한다. 마키아벨리는 군주가 엄중하게 경계해야 할 일은 경멸당하거나 얕잡아보이는 것이라고 상기시킨다. 기억해둘 만한 부분을 몇 가지만 더 간추려보면 이런 것들이 있다.

군주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여러 가지 좋은 성질을 다 가질 필요는 없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그런 여러 가지 덕목을 가진 것처럼 보일 필요는 있다. 온정이 넘치고, 신의를 존중하고, 인간성이 풍부하고, 공명정대하고, 신앙심이 두터운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면서도 그것을 버려야 할 때는 완전히 정반대의 것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지도자는 지옥으로 가는 길을 잘 알고 있어야 대중을 천국으로 이끌 수 있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는 신의에 어긋나는 행위도 해야 하는 경우가 있고, 자비심을 버려야 할 때도 있다. 인간성을 한쪽에 밀쳐놓고, 깊은 신앙심도 부득이 잊어야 하는 경우가 많은 법이다.

‘좋은 일을 하면 사람들의 질투심도 자연히 사라지겠지’ 하고 바라서는 안 된다. 사악한 마음은 아무리 많은 선물을 해도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측근이 유능하고 성실하면 그 군주도 총명하다고 할 수 있다. 신중하기보다는 과감한 편이 낫다. 운명의 신은 여신이라 그녀에 대해 주도권을 쥐려면 난폭하게 다룰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민중의 기분은 매우 동요하기 쉬운 것이 특징이다. 그래서 그들의 지지를 얻는 것은 그리 힘든 일이 아니나, 그 지지를 유지하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 특권층의 지지는 서민층의 지지보다 약하다. 오로지 선의만 가지고서는 결코 백성들을 다스릴 수 없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힘이 없는 선은 악보다 못하다.

세심하게 따져보면 마키아벨리가 군주에게 요구하는 건 냉혹함과 잔인함이 아니라 확실한 권력이었다. 인간의 심성, 군중심리의 본질, 조직의 성격, 리더십, 통치기술 등에 걸쳐 핵심을 꿰뚫는 마키아벨리의 통찰력은 비범하다. 중요한 사실은 이 같은 지혜가 추상적인 사유가 아니라 현실 체험에서 나왔다는 점이다.

사실 마키아벨리는 메디치가(家)에 잘 보여 관직에 다시 진출하기 위한 개인적 욕구 때문에‘군주론’을 썼다. ‘니콜로 마키아벨리가 로렌초 데 메디치 전하께 올리는 글’이라는 헌정사가 붙어 있다. 불행하게도 로렌초 데 메디치는 ‘군주론’을 들춰보지도 않았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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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순│고려대 미디어학부 초빙교수·북칼럼니스트 soon341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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