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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들렌 효과 프루스트를 만나는 겨울 오후

  • 함정임│소설가·동아대 문예창작과 교수 etrelajiham@empal.com

마들렌 효과 프루스트를 만나는 겨울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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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들렌 효과 프루스트를 만나는 겨울 오후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Ⅰ’
마르셀 프루스트 지음, 김희영 옮김, 민음사, 324쪽, 1만500원

무엇보다 홍차를. 그리고 프티 마들렌 한 조각. 겨울로 가는 길목, 10여 년 전 잠시 체류했던 파리의 11월을 회상한다. 박쥐가 검은 두 날개를 펼친 듯 컴컴하고 음울한 11월 오후를 잘 보내기 위해 나는 때로 특별한 티타임을 준비하곤 했다. 돌이켜 보니, 평소와는 다른 사치스러운 시간이었다. 따뜻한 홍차에 비스킷도 아니고 카스텔라 빵도 아닌, 그 중간 형태의 프랑스 전통 과자 마들렌 한 조각을 준비하는 것이다. 더불어 오렌지 불빛의 조명을 켜고 찻잔 옆에는 보티첼리의 화집을 펼쳐놓고, 실내에는 비발디의 사중주곡을 흐르게 했다. 유별난 듯 보이는 이 모든 것은 오직 한 편의 소설, 잠 못 드는 한 사내의 거대한 회상을 따라가기 위한 일종의 의식(儀式)이었다.

오랜 시간, 나는 일찍 잠자리에 들어왔다. 때로 촛불이 꺼지자마자 눈이 너무 빨리 감겨 ‘잠이 드는구나’라고 생각할 틈조차 없었다. 그러다 삼십여 분이 지나면 잠을 청해야 할 시간이라는 생각에 잠이 깨곤 했다.…나는 잠을 자면서도 방금 읽은 책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했는데, 그 생각은 약간 특이한 형태로 나타났다. 마치 나 자신이 책에 나오는 성당, 사중주곡, 프랑수아 1세와 카를 5세와 경쟁관계라도 되는 것 같았다.…이 믿음은 윤회설에서 말하는 전생에 대한 상념처럼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되어버렸다. - 마르셀 프루스트 지음, 김희영 옮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중에서

이것은 현대소설사에서 가장 많이 연구 대상이 되는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첫 대목, 제 1권 ‘스완네 집 쪽으로’의 출발점이다. 첫 문장부터 범상치 않다. 나는 일찍이 제목만큼이나 소설의 첫 문장을 주목할 것을 주문해왔다. 번역자의 각주처럼 ‘오랜 시간’은 단순히 ‘오랫동안(longtem-ps)’이라는 부사로 쓰인 것이 아니다. ‘오랜(long)’과 ‘시간(temps)’이 결합된 합성어 형태. 번역자의 안내에 따르면, 이는 총 7부로 구성된 방대한 소설의 끝에 배치돼 있는 ‘시간 속에서(dans le temps)’와 연계해 읽어야 한다. 이처럼 시간을 소설 전체에 부각시킨 이 작품은 결국 문학 장르를 넘는 시간에 대한 탐구서라고 할 수 있다. 과장해서 말하면, 시간을 매개로 짜인 세상의 모든 소설은 이 한 편으로 귀결된다고 할 정도다.

회상이라는 마법

소설은 인간을 중심으로 펼쳐지지만, 인간을 둘러싼 사건은 시간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절대적인 관계다. 극단적으로 말해 거대한 상념으로 이뤄진 회상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등장한 이래 소설에서 더 이상 새로운 시간은 필요하지도, 존재하지도 않게 된 셈이다. 오직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상념과 회상만이 시간의 제국을 형성하며 우뚝 솟아날 뿐이다.



잠을 자러 올라갈 때 내 유일한 위안은 내가 침대에 누우면 엄마가 와서 키스해주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저녁 인사는 너무도 짧았고 엄마는 너무도 빨리 내려갔기 때문에, 엄마가 올라오는 소리가 들리고 뒤이어 문짝이 두 개 달린 복도에서 밀짚을 엮어 만든 작은 술이 달린 푸른빛 모슬린 정원용 드레스가 가볍게 끌리는 소리가 들릴 때가 내게는 정말 고통스러운 순간이었다. … 그래서 난 그렇게도 좋아하는 저녁 인사가 되도록 늦게 오기를, 엄마가 아직 오지 않은 이 유예 기간이 더 연장되기를 바라는 것이었다. - 마르셀 프루스트, 앞의 책 중에서

어린 소년의 엄마를 향한 애틋한 그리움이 회상을 통해 예민하고도 세밀하게 제시돼 있다. 인물의 행동과 그것에서 비롯된 심리가 읽는 이에게 그대로 감지되는 듯하다. 이러한 효과는 작가의 정밀한 시간 의식, 곧 시간에 대한 작가의 자의식이 강할 때 가능하다. 소설가이자 탁월한 소설 연구자인 E M 포스터에 따르면, 소설가마다 서사를 이끄는 중추적인 역할인 시간을 운용하는 방식이 다르다. 크게 세 가지 범주로 나누어볼 수 있다. 첫 번째는 시간을 숨기는 경우이고, 두 번째는 시간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뒤엎는 경우이고, 마지막 세 번째는 끊임없이 시곗바늘을 뒤로 뒤돌려놓듯이 과거를 현재의 눈으로 뒤돌아보는(회상) 경우다. 광기의 사랑을 통해 인간의 영역을 실험한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1847)은 첫 번째 경우에 해당하고, ‘어느 신사의 견해와 생애’라는 소설의 부제로 어떤 내용과 형식이든 수용가능하게 장치한 로렌스 스턴의 ‘트리스트럼 섄디’(1759)는 두 번째 경우, 그리고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1913)는 세 번째 경우에 해당한다. 회상이라는 마법으로 시곗바늘을 계속 뒤로 돌리는 지연의 서사이자 유예의 서사라고 할 수 있다. 이때 시간은 다양한 지류, 다양한 층위로 세분화되는데, 이러한 시간 운용은 기존 소설이 지향해온 기본 요소-인물, 플롯, 주제-를 와해시키는 결과, 아니 경지를 연다. 인물의 비밀, 동시에 세상의 신비를 푸는 열쇠는 파편적인 기억, 그 기억을 환기시키는 접촉들이다. 스쳐지나가면서 언뜻 보았던 누군가의 모습과 풍경, 또는 들리는 소리, 또는 혀에 닿는 감촉과 맛. 찰나적인 미세한 움직임이 과거에 매몰됐던 기억(삶)을 생생하게 불러일으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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