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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 에세이

가슴 떨리는 추억의 ‘은교’에게 띄웁니다

  • 조영남│가수

가슴 떨리는 추억의 ‘은교’에게 띄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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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떨리는 추억의 ‘은교’에게 띄웁니다

영화 ‘은교’의 한 장면

보내주신 편지는 잘 받았습니다. 편지의 시작이 인상적이었습니다.“조영남 선생께. 안녕하세요? 강은교입니다. 시를 끼적거리고 있죠.”

그래서 나도 답장의 머리글을 이렇게 써봅니다.

“시인 강은교 선생께. 안녕하세요? 조영남입니다. 노래를 흥얼대고 있죠.”

강 선생의 편지를 받아 들고 얼마나 가슴 떨렸는지 모릅니다.

도대체 이게 얼마만입니까. 우리의 첫 인연부터 따지면 굉장합니다. 내가 중학교를 졸업한 열여섯 살, 당신이 중학교 1학년 열네 살 무렵부터니까 무려 50년이 넘어가네요. 수치로 반세기 만에 받은 편지라서 크게 놀랐고 반가웠습니다.

나는 늘 강 선생에 대해 듬성듬성 생각하면서 잘살고 있나 궁금했는데 편지봉투에 명함처럼 찍혀 있는 ‘동아대학교 인문과학대학 문예창작학과 명예교수’라는 직함을 보고 아! 먹고는 살았겠구나, 안심이 되었습니다.

내가 강 선생의 뜬금없는 편지를 받고 가슴 설레는 걸 봐서 ‘사람은 몸이 늙지 마음은 늙지 않는구나’ 하는 과장 섞인 생각까지 하게 됐습니다. 진도가 더 나가기 전에 한 가지 양해를 구할 게 있는데 강 선생께서 편지 말미에 답장을 기다린다고 써놨기에 물론 답장을 쓰겠다고 맘먹고 있었는데, 무슨 조화인지 공교롭게도 월간지 ‘신동아’로부터 원고지 20장의 신년수필 원고청탁을 받아놓고 있던 터라 나는 불현듯 강 선생에게 보내는 답문의 전문을 ‘신동아’ 쪽으로도 띄우는 방법을 생각해낸 것입니다. 한 통의 편지가 강 선생과 ‘신동아’ 쪽으로 동시에 배달되는 거죠. 요컨대 우리의 관계를 세상에 털어놓는 겁니다. 강 선생이나 나나 이제 살 만큼 다 살았고 또 어차피 강 선생의 시를 내가 노래로 만들어 부를 경우 세상에 알려지는 건 마찬가지일 테니까요.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우리 얘기는 10대 때부터 시작됩니다.

아! 우리에게도 10대 시절이 있었군요. 내가 충청도 시골에서 중학교를 막 졸업하고 서울로 밀려가야 했던 때가 있었죠. ‘밀려간다’는 뜻은 벌써 몇 년 전부터 아버지가 중풍으로 반신불수의 몸이 되어 병석에 누워 계셨기 때문에 시골집에선 고등학교에 올라갈 엄두를 못 내고 서울에 먼저 가 있던 누나네 집으로 쫓겨가야 했다는 겁니다.

그즈음 나를 친동생처럼 대해줬던 강연희라는 이름의 우리 중학교 예쁜 영어선생님이 나한테 쪽지 한 장을 내밀며 이런 식의 설명을 해줬죠.

“영남아, 서울 올라가면 얘를 좀 만나보거라. 이름은 강은교, 내 사촌여동생이다. 이번에 경기여중을 수석으로 입학한 아이야. 은교가 나폴레옹을 몹시 좋아하니까 네가 나폴레옹 초상화를 멋지게 그려서 선물을 하렴.” 대강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처녀 영어선생님이 열댓 살 소년 제자한테 열서너 살 소녀를 중매해준 셈이죠. 이런 걸 보통 쿨-이라 하죠.

나는 물론 장항선 기차를 타고 서울에 올라와 누나가 취직해서 일하는 을지로 6가 수구문 근처 쪼그만 약방 구석방에 짐을 풀고, 전화 거는 방법과 서울 말씨를 습득해 난생처음 전화를 걸어본 것이 혜화동 강은교네였죠. 달달 떨리는 손가락으로 전화번호를 돌렸고 저쪽에서 따르릉 소리가 들리며 신호가 갔고 “여보세요” 하는 소녀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나는 얼른 연습해두었던 서울 말씨로 전화통화를 이어나갔죠.

“여보세요. 저는 충청도 삽다리 중학교 강연희 선생님의 소개로 나폴레옹 초상화를 그려서 들고 온 조영남인데요” 하자 저쪽에서 “네에 제가 강은굔데요. 아! 이걸 어쩌나” 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내 입에선 다음 대사가 튀어나오질 않았습니다. 다음 대사를 연습해두지 않았던 거죠. 그것으로 전화통화는 끝이 났죠.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달빛이 어쩌구 새벽별이 어쩌구 하는 멋진 대사 한 구절 없이 그날 우리의 첫 접선은 맥없이 끝났습니다. 다시 시도하는 뭐 그런 것도 없이 말입니다. 서울 소녀와 시골 소년이 가까운 거리에서 쌍방 전화통화를 실현한 것만도 굉장한 사건이었죠.

그 후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세월은 흘러갔고 내가 고3 때던가, 대학에 들어가서던가, 내가 다니던 동대문 근처 동신교회 학생 성가대원 중에 경기여고에 다니는 학생이 몇 명 있기에 문득 생각나서 이렇게 물었죠.

“얘들아, 니네 학교에 강은교라는 학생 있니?”

그런데 이름도 기억나는 도건옥이라는 애가 “영남 오빠! 걔 우리 반 반장이야” 하고 알려주더군요.

“그럼 학교 가서 강은교한테 내 얘길 해보렴” 했더니 다음 주일 아침 바로 도건옥을 따라 여고생 강은교 당신이 나를 보러 동신교회엘 나온 겁니다. 아! 내 생애에 강은교를 최초로 보게 된 순간이었죠. 당시 내가 본 여고생 강은교의 인상은 유난히 눈이 큰 예쁜 얼굴에 부티가 주르르 흐르는 소녀였습니다. 그 후 우리는 자연스럽게 오빠 동생이 되어 매주 교회에서 만났고 예배가 끝나면 교회가 있던 동대문에서 혜화동 로터리, 어린 강 선생이 손을 흔들며 사라지곤 했던 주유소 뒤 골목 입구까지 바래다주곤 했죠.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이 우리들 젊은 날의 데이트였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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