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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 에세이

제복(祭服)과 땔감

  • 최성각│작가·풀꽃평화연구소장

제복(祭服)과 땔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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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좀 들어 시골에서 겨울을 맞이한 게 벌써 아홉 번째, 50대 초반부터 시작된 내 시골살이를 나는 청복(淸福)으로 여기고 있다. 변변찮은 사람에게 비록 주중이지만 시골살이를 할 기회가 주어졌으니 말이다. 그러나 늘 땔감이 걱정이었다. 그렇다고 장작을 돈 주고 사서 쌓아놓고 겨울을 난다는 것은 왠지 옳지 않은 일로 여겨졌다. 농사야 텃밭 수준이지만, 땔감만은 어떻게든 내 힘으로 해결하고 싶었다.

길을 가다가도 땔감으로 쓸 만한 것들이 보이면 차로, 리어카로 열심히 실어 나르곤 했다. 어디 산비탈에 간혹 넘어진 나무가 눈에 띄었다 하면 어김없이 멈춰 서서 옮겨 나를 궁리를 하곤 했다. 마을 사람들에게 잘라가도 괜찮다는 허락을 받은 뒤에 때로는 도끼로, 때로는 엔진톱에 기름을 넣고 산으로 들어가곤 했다. 엔진톱을 쓰든, 도끼질을 하든 텅 빈 산속에서 혼자 나무를 자를 때에는 그 노동만큼의 소음이 나는데, 도끼날이 나뭇결에 제대로 박혔을 때 나는 소리는 아주 맑고 아름답다.

여덟 번째 겨울까지는 어떻게든 한 해 내내 모아 토막 내고 쪼개어 쌓아놓은 잡목들을 때는 것으로 그럭저럭 견뎌냈다. 그러다 지난가을에는 그만 복이 터졌다. 전봇대보다 큰 잣나무 두 그루, 오동나무 한 그루가 거저 생긴 것이다. 작은 트럭으로 네댓 번쯤 실어 날라야 했던 그 엄청난 땔감은 산속 호숫가 옆 개활지에 서 있던 것들인데, 땔감 욕심이 많기로 소문난 내게 마을에서 선물을 한 것이다.

“소장님, 요즘도 땔감 모으시지요? 저 위 호숫가 털풀님네 오두막 가는 모퉁이 있잖아요! 거기 오동나무 하고 잣나무랑 세 그루가 있는데, 그거 잘라 가세요.”

어느 날 좁은 마을길에서 서로 차를 비켜주다가 만난 이장이 차창을 내리고 말했다.

“아, 거기 오동나무라면 아주 오래된 놈인데…그걸 잘라 가지라고요?”

“예, 며칠 전에 마을회의에서 최 선생님한테 선물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우하핫!”

나보다 열 살쯤 아래인 우리 마을 이장은 늘 한잔 걸친 것처럼 볼이 발그스레하다.

“마을회의?”

“아, 그렇다니깐요.”

그러고 이장은 휑하니 사라져버렸다.

그길로 나는 마을 꼭대기에 있는 호숫가의 현장으로 치달렸다. 오래전에 누군가 호숫가 옆에 집을 지으려고 기초공사만 해놓은 공터 가장자리에 잣나무 두 그루, 그리고 오동나무가 나란히 서 있었는데, 그것을 마을에서 통째로 내게 선물을 한 것이다. 우와, 그때의 감격이라니. 사시장철 온 마을을 헤집으며 부러지고 버려진 나뭇가지나 주워 모으던 내가 멀쩡한 나무를, 그것도 세 그루나 얻었으니 어찌 감격스럽지 않았겠는가.

며칠 뒤, 이장을 다시 만났다.

“그거 멀쩡한 나무들인데, 정말 잘라 써도 되는 거요?”

“그 땅이 본시 우리 마을 김씨네 땅인데, 어차피 거기 집을 짓자면 잘릴 것들인데, 이번에 마을회의에서 김씨가 기분 좋게 최 선생님한테 내놓았지요. 그러니 신경 쓰지 말고 잘라 가세요.”

며칠간 나는 흥분 상태로 보냈다. 그 나무를 어떻게 잘라 연구소로 실어 나를 것인가, 앉으나 서나 그 걱정뿐이었다. 내 지프로는 어불성설의 작업이었고, 그렇다고 호수까지 리어카로 작업하기에는 부지하세월의 작업량이었다. 트럭이 한 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눈만 뜨면 그 생각뿐이었다. 마침 그즈음 마을 입구에서 마농사를 짓는 후배가 건넛마을 골짜기에 사는 한 친구가 20만km쯤 굴렸다는 고물 트럭을 팔려고 한다는 정보를 줬다. 그 소식을 듣자 댓바람에 트럭이 있다는 곳으로 달려갔다. 나는 흥정엔 누구를 만나도 ‘봉’인지라 한푼도 못 깎고 고물 트럭을 100만 원에 구입했다. 나로선 트럭 값이 매우 무리였으나 나무를 실어 나르자면 그 수밖에 없었다.

트럭은 폐차 직전 상태였다. 정기검사를 하고, 타이어를 바꾸고, 머플러까지 교체하는 데 든 돈이 트럭 값보다 더 많았다. 우리는 그 트럭을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는 말을 줄여 ‘배배꼽’이라 불렀다. 무리해서 배배꼽을 구하고, 차가 제 구실을 하는 데 적잖은 돈이 들었지만, 그 비용을 불사한 것은 오로지 거저 얻은 다량의 땔감 때문이었다.

겨우 세 그루였지만, 나무를 자르고, 얼추 토막을 내서 싣고, 다시 연구소 마당에 내리고, 내린 나무들을 다시 짧게 토막을 내어 처마 밑에 쌓는 데 자그마치 한 달여가 걸렸다. 날품으로 사는 제자가 와서 며칠 도와줬지만, 만만찮은 작업이었다. 그러나 그 시간 내내 땔감 욕심이 없는 사람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행복에 겨워 곤한 줄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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