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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 산책

아니시 카푸어展

텅 빈 충만

  • 글·송화선 주간동아 기자 spring@donga.com 사진·리움 제공

아니시 카푸어展

아니시 카푸어展

1999년작 ‘Yellow’ 앞에 선 아니시 카푸어.

검붉게 녹슨 쇳덩어리 아래로 길게 드리워진 그림자, 날카로운 칼날에 찢겨나간 벽면의 여백. ‘아니시 카푸어(Anish Kapoor) 展’에서 인상적인 건 이런 것들이다. 쇳덩어리(‘동굴’)와 칼자국(‘도마의 치유’) 같은 오브제보다 그것이 공간과 어우러져 빚어내는 정조(情操)에 더 마음이 간다.

아니시 카푸어(59)는 2012년 런던 올림픽 기념조형물 ‘궤도’를 제작하면서 대중적으로 알려진 작가. 영국 미술계에서는 일찍부터 주목받아왔다. 1990년 베니스 비엔날레 영국관 작가로 선정됐고, 이듬해 영국 최고의 현대미술상인 터너상을 받기도 했다. 인도 뭄바이에서 태어나 자라다 영국으로 이주한 그의 작품에서는 동양철학과 문화의 바탕이 느껴진다. 1980년대부터 이어온 ‘보이드’(void·空) 연작도 그중 하나다.

작가는 ‘보이드’를 “텅 빈 공간이 아니라 어둠으로 가득 찬 공간”이라고 설명한다. 서울 용산구 한남동 ‘리움’ 갤러리에 설치된 지름 8m, 무게 15t 규모의 조형물 ‘동굴’ 아래 서면 이 말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거대한 호박 속을 파고 뒤집어놓은 듯 보이는 작품 내부는 분명 비었다. 그러나 머리 위로 쏟아지는 어둠은 압도적인 존재감을 내뿜는다. 아찔함에 숨이 막힌다.

전시장 바닥에 놓인 검푸른 동그라미 ‘땅’도 마찬가지다. 먼 곳에서는 이 작품이 무엇인지 파악하기 어렵다. 가까이 다가서면 비로소 그 동그라미가 전시장 바닥을 파서 만든 진짜 구멍임을 깨닫게 된다. 채색처럼 보이던 검푸른빛은 심연이 내뿜는 어둠의 기운이다. 추락의 공포에 발끝이 쭈뼛해진다.

카푸어는 이외에도 전시장 흰 벽면을 예리하게 베어내 속살이 드러나게 한 ‘도마의 치유’, 벽체를 임신부의 배처럼 불룩 튀어나오게 만든 ‘내가 임신했을 때’ 등 미술관 공간을 작업 대상으로 삼은 작품을 여럿 내놓았다.

전시는 리움 야외 정원으로도 이어진다. 이곳에서는 73개의 스테인리스 스틸 공(球)으로 이뤄진 15m 높이의 조각 ‘큰 나무와 눈’을 만날 수 있다. 거울 같은 표면의 스테인리스 스틸은 세상의 모든 장면을 담아낸다. 시시각각 달라지는 하늘 풍경과 오가는 이들의 움직임에 따라 매순간 새로운 작품으로 재탄생한다. 카푸어는 이것을 “생성 상태에 있는 오브제”이며, 사물로 실재하면서도 사물성이 사라진 “비-오브제(non-object)”라고 했다. 이번 전시에 맞춰 내한한 작가는 언론 인터뷰에서 “예술은 이면의 이야기를 전하는 것”이라며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라고도 했다. 그의 말처럼 보이지 않는 것에 주목할 때 더 많은 것이 보이는 전시다.

아니시 카푸어展

리움 야외 정원에 설치된 ‘Vertigo’(왼쪽)와 15m 높이의 조각 ‘큰 나무와 눈’.

아니시 카푸어展

‘My Red Homeland’(2003)

아니시 카푸어展

카푸어의 스테인리스 스틸 작품은 주변의 모든 장면을 담아내 매 순간 새로운 작품으로 재탄생한다.

아니시 카푸어展

‘Cave’(2012)

아니시 카푸어展
● 일시 | 2월 8일까지 화~일요일 오전 10시 30분~오후 6시(월요일 휴관)

● 장소 | 서울 용산구 한남2동 747-18

● 관람료 | 성인 8000원, 학생 5000원(상설전 관람 포함된 Day Pass는 성인 1만4000원, 학생 9000원)

● 문의 | 02-2014-6900

신동아 2013년 2월 호

글·송화선 주간동아 기자 spring@donga.com 사진·리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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