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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꾼 책 이야기

위기의 자본주의를 구한 경기침체기 ‘만병통치약’

  • 김학순│고려대 미디어학부 초빙교수·북칼럼니스트 soon3417@naver.com

위기의 자본주의를 구한 경기침체기 ‘만병통치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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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자본주의를 구한 경기침체기 ‘만병통치약’

고용, 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
존 메이너드 케인스 지음, 조순 옮김, 비봉출판사, 485쪽, 2만5000원

‘뉴욕타임스’는 1929년 1월 1일 신년 사설에서 미국 경제의 장래를 장밋빛으로 그렸다. “미국은 지난 12개월 동안 유사 이래 최고의 번영을 구가했다. 과거를 바탕으로 미래를 예측한다면 새해는 축복과 희망의 해가 될 것이다.”

하지만 열 달도 지나지 않은 10월 24일 뉴욕 증권시장의 주식 가격이 폭락하면서 세계 대공황의 서막이 올랐다. 이른바 ‘검은 목요일’은 자본주의 국가들을 엄청난 경기침체와 대량 실업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었다. 여파는 1939년까지 이어졌다. 급기야 식민지 시장에 의존하는 경제블록과 군국주의권으로 나누어진 자본주의 국가들의 대립이 제2차 세계대전을 불러왔다. 카를 마르크스가 주장한 자본주의 파멸의 조짐까지 보였다.

경기를 회복하기 위해 정부가 무슨 일이든 해야 하지 않느냐는 절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럼에도 경제학자나 관료, 정치가 어느 누구도 대공황의 원인 분석과 뽀족한 회생 방안을 내놓지 못했다. 대다수 주류 경제학자는 정부가 경제에 개입해도 별다른 효과를 내지 못하는 것은 물론 사태를 악화시킬 뿐이라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다.

대공황의 와중에 영국의 중견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가 ‘유효수요이론’을 비방(秘方)으로 내놓았다. 1936년 2월이었다. 처방전은 ‘고용·이자·화폐의 일반이론’(원제 The General Theory of Employment, Interest and Money)이라는 명저에 담겨 있었다. 유효수요이론은 소비와 투자로 이루어지는 유효수요의 크기에 따라 경제활동의 수준이 정해진다는 견해다. 케인스의 묘방은 정부의 과감한 개입으로 유효수요를 인위적으로 늘리는 것이었다. 주류 고전경제학자들의 지론인 자유방임주의로는 완전고용의 실현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정부의 개입이나 재정 정책으로 유효수요를 창출해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케인스 경제이론을 흔히 유효수요이론이라고 일컫는 것도 이 때문이다. 케인스는 흥미로운 비유로 유효수요이론과 정부 지출의 필요성을 설명한다.

“재무부가 낡은 병에 은행권(지폐)을 가득 채워 폐탄광에 적당한 깊이로 묻은 뒤 도시의 쓰레기를 표면에 이르기까지 덮어라. 그 뒤 온갖 시련을 이겨낸 ‘자유방임주의’의 원칙에 따라 개인 기업에 그 은행권을 다시 파내는 일을 맡긴다면 더 이상 실업이 존재해야 할 이유가 없다. 그 파급효과 덕분에 공동체의 실질소득과 그 자본의 부(富)도 훨씬 더 커질 것이다. 사실 주택 같은 것을 짓는 게 더 합리적이겠지만, 그렇게 하는 데 정치적이거나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케인스는 정부의 책무를 강조했지만, 정부가 전지전능하다는 뜻은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국가가 개입하느냐 않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국가의 개입이냐의 문제다.

야성적 충동

그는 이 책에서 경제가 나빠졌을 때 임금을 깎는 것은 최악의 정책이라고 일갈했다. 수요를 늘려야 하는데 임금을 깎으면 역효과가 나기 때문이다. 케인스는 완전고용도 자동적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정책적으로 실현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공공사업 같은 국가투자로 완전고용을 실현할 수 있다는 논리다.

당시 경제학을 지배하던 고전경제학파는 “공급은 스스로 수요를 창출한다”는 ‘세이의 법칙’에 따라 일시적인 마찰 실업은 있을 수 있지만 대체로 완전고용을 실현한다고 주장했다. 이와는 달리 케인스는 노동시장이 화폐임금의 하방경직성(下方硬直性)이나 노동자의 화폐환상 때문에 완전고용에 실패할 수 있으며, 기업의 사업 전망이 비관적이어서 기대이윤이 지나치게 낮을 때는 자본시장이 실패할 수도 있다고 판단했다. 하방경직성은 수요공급법칙에 따라 본래 내려야 할 가격이 내리지 않는 경우를 말한다.

케인스는 수학적 기대치가 아닌 인간의 심리적 요인이야말로 경제를 움직이는 원동력이라면서 이를 ‘야성적 충동’(Animal Spirits)이라고 이름 지었다. 인간의 비경제적 본성을 가리키기 위해 케인스가 이 책에서 처음 사용한 개념이다.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이 고전 경제학의 핵심 용어이듯 케인스의 ‘야성적 충동’은 자본주의에 내재된 불안정성을 설명하는 새로운 시각의 핵심 용어다. 케인스는 대부분의 경제활동이 합리적인 경제적 동기에 따라 이뤄지지만, 한편으로는 ‘야성적 충동’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고 파악했다. 케인스는 “비합리적인 세상에서 합리적인 정책을 추구하는 것보다 더 큰 재앙을 가져오는 것은 없다”고 쓴소리를 했다.

이 책은 주식투자를 미인투표에 비유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전문적인 투자자는 100장의 얼굴 사진을 제시하고 시합의 참여자들에게 얼굴이 예쁜 순서로 6장씩 골라내게 한 다음 참여자 전체의 평균적인 선호에 가장 부합하는 선택을 한 참여자에게 상금을 주는 신문지상의 시합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이 경우 각 참여자는 자신이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얼굴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참여자들의 취향에 가장 잘 맞을 것으로 생각되는 얼굴을 선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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