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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함께하는 우리 산하 기행

시인이 꽃을 불렀다 바람이 바다의 시간을 채웠다

전북 고창

  • 최학 │우송대 한국어학과 교수 hakbong5@hanmail.net

시인이 꽃을 불렀다 바람이 바다의 시간을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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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운사 골짜기로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안했고

막걸리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 것만 상기도 남었습니다

그것도 목이 쉬어 남었습니다

- 서정주 시 ‘선운사 동구’ 전문

고창 선운사에 가면 동백꽃이 생각나고 저절로 미당 선생이 떠오른다. 이렇듯 절간 하나에 꽃과 시인의 이미지가 한꺼번에 버무려지는 데가 선운사밖에 또 있을까 싶다. 산이 절간을 품고 절간이 꽃을 울타리 삼으며 그 꽃이 시인을 부르는 내력쯤이야 쉬 요량할 수 있지만, 선운사처럼 그것이 역순이 되어 시인이 꽃을 불러와 절간을 차리고 절간이 산을 휘두르는 듯한 감상을 갖게 하기는 쉽지가 않다.

위에 예 든 짧은 시 한 편에서도 보듯 미당 서정주의 시문에 등장하는 선운사 동백꽃은 이처럼 개개 독자들을 후려칠 만큼 색과 향이 강하다. 시의 이야기를 따져 보면 간단하다. 선운사 골짝으로 꽃을 보러 갔는데 꽃은 못 보고 술집에서 육자배기를 들었다. 그런데 그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 동백꽃이 목 쉰 채로 남아 있더라…. 흔히 시각과 후각으로 인지되는 꽃이 이 시에서는 청각으로 전해진다는 데 그 절묘함이 있다. 동백꽃을 쉰 목청의 육자배기로 바꿔치기 함으로써 동백꽃은 동백꽃대로, 육자배기와 술집 여자는 또 그것대로 온전하게, 아니 더 생생하게 살아나는 데 이 시의 묘미가 있다.

꽃무릇 피는 골짝으로

‘춘백’으로도 불리는 선운사 동백은 동백류 중에서도 꽃이 가장 늦게 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흔히들 하동의 매화가 지고 난 4월부터 꽃봉오리를 터뜨린다고 하는데 절정은 4월 하순이라고 한다. 선운사 뒤쪽 산비탈의 동백숲이 바로 그 꽃잔치의 현장이다.

선운사를 보러 가서 그 골 안쪽의 도솔암 둘레를 보지 않고 돌아 나옴은 잔칫집가서 신랑신부의 얼굴을 보지 않고 떠나옴과 같다. 선운사에서 도솔암까지, 냇물과 함께하는 반 시간가량 걸리는 이 평탄한 산길은 곱고도 고요하다. 요즘엔 절 어귀에 차밭이 꾸며지고 길 양쪽으로 꽃무릇을 많이 심어놓아서 사시사철 볼거리도 다양해졌다.

원추리 꽃을 닮았으면서도 그보다 훨씬 색이 짙고 꽃술이 많은 꽃무릇은 근래 몇 년 사이 동백꽃을 압도하면서 선운사를 대표하는 꽃이 됐다. 뿌리를 빻아 물감에 섞어 탱화를 그리면 방부 효과가 뛰어나기 때문에 절간 주위에 많이 심는다는 얘기가 있다. 무리를 지어 핀다 해서 꽃무릇이란 이름이 유래했다는 설명도 있지만, 무리 지어 피는 꽃이 한둘이란 말인가. 아무튼 농염한 여인네의 속눈썹 같은, 가늘고 짙은 꽃술에다 붉디붉은 점박이 꽃잎을 가진 이 꽃이 숲길의 나무 그늘을 점령하면서 산세와 어우러진 도발적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음은 분명하다.

선운사를 빙 두르고 있는 산이 선운산인데 선운사 뒤편 봉우리가 주봉이 되며 구황봉, 경수산, 도솔산 등의 이름을 가진 산봉우리들을 주위에 거느리고 있다. 선운산은 가장 높은 봉우리조차 해발 500m가 못 되지만 산세가 우람하고 계곡미가 빼어나다. 특히 도솔암 주변의 깊은 골과 깎아지른 암벽들에서는 자못 이국적인 자연미마저 느낄 수 있다.

도솔암에서 절벽을 오르면 제비집처럼 벼랑에 붙어 선 내원궁에 이르는데, 이곳에서 마주하는 경관이 압권이다. 내원궁을 내려와 골짝으로 들어가기 직전 그윽한 자태의 마애석불을 쳐다보게 되고 여기서 용문굴을 거쳐 산 능선에 오르면 이내 낙조대에 선다. 황해 곰소만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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