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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승경의 ‘눈으로 듣는 음악’

‘대체 불가능 아티스트’ 영원한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

  • 황승경 | 국제오페라단 단장·공연예술학 박사 lunapiena7@naver.com

‘대체 불가능 아티스트’ 영원한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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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려한 스타일과 현란한 리듬으로 40년간 팝 음악계를 이끌었던 마이클 잭슨. 그의 독보적 명성 뒤에는 성추문, 약물중독, 성형중독 같은 어두운 그늘이 있었다.
  • 세상을 떠난 지 4년. 그를 짓누르던 오명의 진상이 하나하나 벗겨지면서 마이클 잭슨은 진정한 팝의 황제로 다시 자리매김하고 있다.
‘대체 불가능 아티스트’ 영원한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
무중력 상태에서 뒷걸음질치는 것 같은 문워크(moonwalk) 댄스, 화려한 제복에 긴 곱슬머리와 선글라스, 흰 양말, 변치 않는 미성(美聲)과 현란한 고음…. 40년 동안 대중문화의 핵심 아이콘이었던 마이클 잭슨(1958~2009)은 총 7억5000만 장의 앨범을 판매했고 400여 개의 상을 받았다.

이탈리아 유학 시절 나는 마이클 잭슨의 공연을 보기 위해 공연장 담을 뛰어넘을 정도로 그에게 열광했다. 그의 음악은 클래식 음악학도인 내게도 그만큼 큰 울림이 있었다. 그는 4년 전 우리 곁을 떠났지만 여전히 살아 있는 전설이다.

서울 여의도 면적 3배에 달하는 대저택 네버랜드를 야생동물의 천국으로 만든 그는 아무도 늙지 않는 동화 속 나라 네버랜드의 피터팬이 되길 바랐다. 그러나 현실의 삶은 그렇지 못했다. 그는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동시에 약물중독 성추문 등으로 신문 사회면에 단골로 오르내리며 평탄하지 못한 삶을 살았다. 그러다 뜻하지 않은 죽음을 맞고서야 비로소 영원한 피터팬으로 네버랜드에 안식하게 됐다.

장례식도 ‘지상 최대의 쇼’

2009년 7월 7일 오전 10시. 2만 명의 군중이 모인 미국 로스앤젤레스 스테이플스 센터에 세계의 이목이 집중됐다. 머라이어 캐리, 브룩 실즈, 스티비 원더, 라이오넬 리치, 어셔 같은 톱스타와 농구선수 매직 존슨, 코비 브라이언트 등이 붉은 꽃으로 장식된 관(棺)의 주인공과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미국 팝 역사상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했던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과의 영원한 이별을 보도하기 위해 주요 방송사들도 정규 방송을 미루고 인기 앵커들을 투입했다. 이날 장례식 중계방송은 12억 명의 세계인이 시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생전에 마이클은 자신의 장례식 또한 ‘지상 최대의 쇼’가 되길 원했다. 그의 바람대로 장례식은 멋들어진 무대가 됐다. 중앙 스크린에는 다양한 영상이 수놓아져 그가 연출한 감동적인 장면들을 재현했다. 흑인인권운동가 앨 새프턴 목사는 “그에게 안녕을 고하려고 온 게 아니라 고맙다고 인사하러 왔다”며 자신을 향한 부당한 공격에 굴복하지 않았던 마이클의 강인한 면모를 되새겼다. 추모사와 추모공연을 한 인사들과 유가족은 ‘We Are The World’ 등의 노래를 함께 불렀다. 베일에 가려졌던 마이클의 열한 살 난 딸 패리스는 “아빠는 내게 최고의 아빠였다. 너무나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다”며 울먹이더니 말을 끝맺지도 못하고 눈물을 쏟아내 보는 이들의 눈시울을 붉히게 했다.

황제의 탄생

‘대체 불가능 아티스트’ 영원한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

마이클 잭슨 사후 1년6개월 만에 나온 앨범 ‘마이클’.

그의 이력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은 ‘5세 때 데뷔’라는 문구다. 이 때문에 어릴 적 그의 모습은 기타리스트 아버지의 영향으로 탄생한 가족 밴드의 귀염둥이 막내 보컬리스트쯤에 한정된다.

하지만 사실은 좀 다르다. 학창 시절 권투선수였던 그의 아버지 조지프는 불같은 성격에 강한 카리스마를 갖고 있었다. 반면 어머니 캐서린은 소아마비로 16세 때까지 목발을 사용했고 평생 걸음이 불편했던 장애인으로 한없이 자애롭고 여리고 부드러웠다. 정열적인 실용주의자 조지프와 이성적인 낭만주의자 캐서린은 물과 불처럼 서로 조화하지 못했다.

두 사람은 모두 결손가정에서 자랐기 때문에 행복한 가정을 꾸려 여러 아이를 낳고 오순도순 살고 싶어 했다. 부부는 인디애나 주 개리 시(市)에서 결혼한 이듬해인 1950년 첫딸 리비를 낳았고, 1958년 8월 29일에는 손가락이 유난히 긴 사내아이 마이클을 여덟째로 얻었다. 바로 전해에 쌍둥이 형 브랜든이 태어나자마자 사망했지만 마이클이 태어난 뒤에도 두 명의 동생이 더 태어나 잭슨가에선 아홉 명의 아이가 무럭무럭 자랐다.

밴드 기타리스트로 활동했던 아버지 조지프는 박봉에 시달리면서도 철강회사의 트레인 운전사로 교대근무를 했다. 그런데 퇴근 후 집에 들어오면 녹초가 되어 아이들에게 강압적이고 권위적으로 변했다. 아이들은 아버지가 들어오기 무섭게 숨어버리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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