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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꾼 책 이야기

사회주의 독재 예견 신자유주의 파도의 마중물

  • 김학순│고려대 미디어학부 초빙교수·북칼럼니스트 soon3417@naver.com

사회주의 독재 예견 신자유주의 파도의 마중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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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인스 對 하이에크

이 책은 이런 말로 마무리한다. “만약 자유로운 사람들의 세상을 창출하려는 첫 번째 시도에서 실패했다면, 우리는 다시 시도해야 한다. 실로 개인의 자유를 위한 정책이 유일한 진보적 정책이라는 핵심적 원리는 19세기에 진리였듯이 현재에도 여전히 진리다.”

분석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의 사촌동생이기도 한 하이에크는 이 책에서 경제학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반박하는 말도 남겼다. “‘경제학을 저주하고 멋진 세상을 건설하자.’ 이렇게 말하면 고상하게 들릴지 모른다. 그러나 이것은 실제로는 그저 무책임한 말일 뿐이다.”

이 책은 흥미로운 일화를 남겼다. 강성 노조와 공공부문 방만이라는 ‘영국병(病)’을 고친 대처리즘의 숨은 공신으로 알려진 영국 경제문제연구소와 관련된 얘기다. 이 연구소를 창설한 앤서니 피셔는 ‘노예의 길’을 읽고 자유주의의 중요성을 깨달은 뒤 하이에크를 찾아갔다.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제가 정치에 입문하면 어떨까요?” 하이에크는 “아니오. 사회의 진로는 오직 사상의 변화에 의해서만 이뤄집니다. 당신이 먼저 합리적 주장으로 지식인, 교사, 작가들을 설득하고 이런 사상이 그들의 영향으로 보편화될 때 정치인들은 따라올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이 말을 들은 피셔는 1955년 양계사업으로 번 돈을 세상을 바꾸기 위해 연구소 만드는 데 투자했다.

‘노예의 길’은 출간되자마자 영국은 물론 미국 등지에서도 하이에크가 순회강연을 해야 할 만큼 주목받았다. 당대 최고의 경제학자 케인스도 깊은 공감의 뜻을 전했다. “도덕적으로나 철학적으로나 당신의 견해에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어느새 내가 당신의 견해에 전적으로 동의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하지만 이 책과 하이에크는 케인스라는 거목의 그늘에서 30년 넘게 찬밥 신세로 지내야 했다. 1930년대 말 세계 대공황 이후 케인스가 자본주의 세계의 정책과 지식 분야를 온통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대착오적이고 극단적인 자유시장 옹호자로 냉대받으면서도 하이에크는 자신의 생각을 세밀하게 가다듬고 세상을 설득해나갔다.

1970년대 초 경제불황 속에서 물가상승이 동시에 발생하는 스태그플레이션 현상이 나타나 케인스 이론이 더 이상 효험이 없어지자 하이에크의 경제철학이 양지로 나오기 시작했다. 이후 태동한 신자유주의 물결은 하이에크의 ‘노예의 길’이라는 수원지에서 나온 것이다. 이 공로로 그는 1974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대처리즘, 레이거노믹스 견인

하이에크의 사상은 1980년대 영국의 대처리즘과 미국의 레이거노믹스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노예의 길’은 당시 옥스퍼드대 학생이던 마거릿 대처 영국총리의 손에 들어가 40년 뒤 세상을 바꾸는 결정적인 촉매가 됐다. 대처 총리는 1989년 하이에크의 90회 생일에 보낸 편지에서 “당신의 작업과 사상이 우리에게 준 지도력과 영감은 절대적으로 결정적인 것이었으며, 우리는 당신에게 큰 빚을 지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동유럽 공산권 붕괴 이후 그곳의 민영화 정책도 ‘노예의 길’과 만난다. 케인스가 그랬듯이 하이에크도 30여 년간 세계경제 흐름을 주도했다.

2008년 미국발 세계 금융위기가 불거지면서 신자유주의의 종말을 알리는 나팔소리와 더불어 하이에크의 성가가 다소 가라앉고 케인스가 복권됐다. 하지만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2010년 주요 선진국들의 정부 부채위기가 몰아치자 하이에크 진영의 반격이 재개됐다. 이처럼 케인스의 ‘정부’ 대 하이에크의 ‘시장’ 전쟁은 쉽사리 끝이 보이지 않는다. 케인스주의자들이 시장 기능이 작동하지 않아 생긴 시장의 실패를 들먹이면, 하이에크주의자들은 금융위기는 정부 개입에 따른 정책의 실패라고 맞받는다. 하이에크는 생전에 케인스와 자신의 차이를 익살스럽게 설명한 적이 있다. “케인스가 많은 것을 아는 여우라면, 나는 오직 한 가지 큰 사실만 아는 고슴도치다.”

하이에크에 대해서 두 가지 시각이 병존한다. 보수 진영은 자유시장경제의 옹호자로서 그를 환영한다. 좌파 진영은 전체주의에 맞서기 위해 개인의 존엄성을 강조한 나머지 공동체적 기반마저 허무는 우를 범한 ‘시장 근본주의자’라고 비판한다. 하이에크를 더욱 아프게 하는 건 나쁜 정부의 개입과 좋은 정부의 개입이 어떻게 다른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 아닐까 싶다.

이제 나치나 공산주의 같은 극단적 형태의 전체주의는 북한을 제외하곤 찾아보기 어렵다. 그럼에도 ‘노예의 길’은 여전히 정부의 역할과 시장, 자유의 중요성에 많은 시사점을 안겨준다.

신동아 2013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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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순│고려대 미디어학부 초빙교수·북칼럼니스트 soon341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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