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한국 여배우 열전

아직도 ‘엽기적인 그녀’ 전지현

엄앵란-이영옥-강수연 이은 청춘영화 막내 헤로인

  • 오승욱 │영화감독 dookb@naver.com

아직도 ‘엽기적인 그녀’ 전지현

1/4
  • ‘맨발의 청춘’의 엄앵란, ‘바보들의 행진’의 이영옥, ‘미미와 철수의 청춘 스케치’의 강수연. 한 시대를 풍미한 청춘영화 여주인공들이다. 2001년 ‘엽기적인 그녀’의 전지현이 그 뒤를 이었다. 아니, 완벽하게 뛰어넘었다. 미모, ‘너 죽을래?’같은 전지현식 협박, 남자를 주도하는 독립적인 캐릭터에 관객은 매료됐다. ‘엽기적인 그녀’를 추월할 만한 청춘영화는 10년 넘게 안 나오고 있다.
아직도 ‘엽기적인 그녀’ 전지현
2001년 여름. 영화 ‘엽기적인 그녀’(곽재용 감독)가 개봉됐을 때, 나는 솔직히 짜증이 났다. ‘또 엽기냐?’는 생각이 앞섰다. 1990년대 말부터 유행하기 시작한 ‘엽기’는 이미 끝물을 타고 있었다. 2000년에 등장한 ‘엽기토끼’가 자동차 뒷유리창이며 침대와 소파까지 점령한 뒤였다. 인터넷 자유게시판을 도배한 주제도 온통 ‘엽기’였다. 그럴 때 나온 영화라 그런지, 일단 제목부터 식상했다. 그러나 영화를 보고 나온 사람들의 반응은 내 예상과 달랐다. 관객들은 하나같이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리며 웃음을 참지 못했다.

‘엽기적인 그녀’는 바로 몇 해 전 프린터 광고에 나와 섹시한 테크노댄스를 추던 신인 배우 전지현이었다. 영화 ‘2001년 스페이스 오딧세이’의 등장인물이 입었던, 우주복 비슷한 옷을 입고 긴 생머리를 포니테일 스타일로 질끈 동여맨 그녀를 보면서 나는 10여 년 전 심혜진이 등장했던 코카콜라 광고를 떠올렸다.

광고 속에서 그녀들은 당당했다. 세상에 대해 당당했고, 무엇보다 남성에 대해 당당했다. 아니, 당당함을 넘어 비교우위에 선 느낌도 들었다. 그녀들은 남자에게 의존하는 여자들이 아니었고, 무엇이든 혼자서 할 수 있는 독립된 존재로 보였다. 전지현은 지적이고 섹시한 직업여성 이미지의 심혜진에 비해 3배쯤 업그레이드 된, 밀레니엄 여성의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그녀는 SF 영화의 주인공 같았으며, 섹시함과 지적인 느낌은 강인한 여전사와 비슷했다.

코카콜라 CF와 영화 ‘결혼 이야기’로 심혜진이 1990년대 여성의 롤모델이 된 것처럼, ‘엽기적인 그녀’의 전지현은 2000년대 여성들을 사로잡았다. 아름다운 외모, 터프한 행동, 남성을 주도적으로 이끄는 독립적인 여성의 모습에 사람들은 매료됐다.

연기 못하는 배우, 10년 휴업 감독

CF로 얼굴을 알린 전지현은 심혜진이 그랬던 것처럼 영화에 진출했다. ‘화이트 발렌타인’과 ‘시월애’ 였다. 흥행에는 성공했지만, ‘시월애’를 본 사람들은 대부분 전지현의 연기력에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그녀의 세 번째 영화였던 ‘엽기적인 그녀’는 달랐다. 이 영화를 만든 사람은 ‘비 오는 날의 수채화’(1989)를 만든 곽재용 감독이다. ‘비 오는 날의 수채화’는 흥행에도 성공하고 주제가도 히트했지만, 영화의 만듦새가 너무 허술해 비평적으로는 상당히 무시당했다. 전편의 흥행 성공에 힘입어 만든 ‘비 오는 날의 수채화 2’(1993)는 너무나 엉성해 관객에게 철저히 외면당했다. 이후 10년 넘게 곽재용 감독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혔다.

연기가 안 되는 여배우, 흥행에 실패하고 10여 년간 휴업한 감독의 만남에 사람들은 큰 기대를 걸지 않았다. 그러나 결과는 대단했다. 전지현은 물 만난 고기처럼 싱싱했고, 10년간 절치부심한 곽재용 감독의 연출력은 합격점을 받았다.

영화가 시작되면 연분홍색 스웨터를 입은 남자 주인공 차태현이 술을 마시고 있다. 1960~70년대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선술집에서 친구들과 군대 이야기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자신은 ‘전방에서 근무한 공익’이라며 허세를 떨던 차태현의 눈이 갑자기 커진다. 술집 창밖으로 지나가는 한 여자를 봤기 때문이다. 긴 생머리에 늘씬한 키, 투피스 정장 차림의 아름다운 여성이었다. 차태현은 이렇게 말한다.

“제 이상형입니다. 이상형이 지나가면 저는 못 참습니다. 말을 붙여봐야죠.”

소주 한 잔을 입에 털어넣은 차태현이 사냥감을 노리는 사자같이 술집 밖으로 달려 나간다. 그런데 이때 휴대전화가 울린다. 엄마다. 일곱 살 때까지 차태현을 여자 목욕탕에 데려갔던 무서운 엄마의 전화. 야수와 같던 차태현의 눈빛은 분홍색 털을 가진 애완견의 눈빛으로 변한다. 엄마는 외아들 차태현을 지배하는 절대적인 군주로 나온다.
1/4
오승욱 │영화감독 dookb@naver.com
목록 닫기

아직도 ‘엽기적인 그녀’ 전지현

댓글 창 닫기

2018/10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