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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염 시대에 ‘소금건강론’? ‘죽염 명가’ 인산家의 실체

“많이 먹으면 암도 치료…”

  • 최영철 기자 │ftdog@donga.com

저염 시대에 ‘소금건강론’? ‘죽염 명가’ 인산家의 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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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김윤세 인산가 대표 “나트륨 저감 운동은 한심한 캠페인”
  • ● “천일염, 죽염은 많이 먹을수록 보약”
  • ● “환자는 하루 50~60회, 한 달 1kg 이상 죽염 먹으면 효과”
  • ● 의·과학자·정부 “질병 치료는 낭설 … 죽염 많이 먹으면 위험”
  • ● 식약처 “인산가 죽염 ‘항암효과’ 허위과대광고 조사”
저염 시대에 ‘소금건강론’? ‘죽염 명가’ 인산家의 실체
정부가 성인병을 줄이기 위해 전 국민적 ‘나트륨 저감 운동’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짜게 먹어야 건강하다’고 역설하는 이가 있다. 인산죽염을 판매하는 (주)인산가 김윤세 대표가 그 주인공. 인산가는 “죽염은 일반 정제염과 달리 미네랄이 많아 많이 먹을수록 건강에 좋다”고 주장한다. 나트륨 저감 캠페인을 벌이는 정부와 언론, 의료계에 대해서는 “‘싱거운 이야기’를 하고 있다” “생명과 자연의 법칙을 어기고 역주행하고 있다”고 공박한다. “좋은 소금, 즉 죽염은 먹을 수 있는 만큼 양껏 먹어야 건강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인산가와 김 대표는 자신들이 발행하는 건강저널 ‘인산의학’과 각종 강연, 일간지 전면광고를 통해 이런 논리를 설파하고 있다. ‘인산의학’에는 암을 비롯한 각종 난치병, 불치병을 인산죽염과 인산가의 각종 식품을 먹고 치료한 사례들이 소개돼 있으며, 인산가는 이를 광고에 활용하고 있다.

‘죽염 창시자’ 仁山

경남 함양 삼봉산 자락에 위치한 인산가 본사에는 죽염건강법을 가르치고 체험하는 수련원도 있다. 죽염 등 인산가에서 생산하는 제품을 먹고 각종 질환을 치료한 사람들이 나와 강연을 한다.

김 대표는 2012년 11월 광주대 대체의학과 ‘산학협력 중점교수’로 위촉됐다. ‘인산의학이나 강연회 등에서 소개할 때는 ‘겸임교수’라는 직함을 사용한다. 광주대 측은 “의학적 지식이 많거나 학위가 있어서가 아니라 지역에서 건강 관련 식품 판매로 일가를 이룬 점을 인정해 위촉했다”고 밝혔다. 인산가는 죽염과 관련 제품, 각종 식품 등을 팔아 2011년 매출 168억 원, 영업이익 20억 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11월에는 지식경제부 장관이 주는 대한민국 벤처기업 대상을 수상했다.

인산가에 따르면 회원은 12만 명이다. 회원으로 가입하면 인산죽염, 쑥뜸, 구운마늘, 유황오리, 찜질기, 된장, 간장, 김윤세 대표와 그의 선친 인산(仁山) 김일훈 선생(1909~1992)의 저서를 할인된 가격에 구입할 수 있다. 회원으로 가입하거나 제품을 구매하면 ‘인산의학’ 잡지가 무료로 배달된다. 인산가는 “우리는 단순히 죽염 같은 건강식품만 파는 식품회사가 아니라 민족 전통의학을 계승한 하나의 의학체계를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한의학, 서양의학 외에 인산의학이라는 학문체계를 이뤘다는 것.

인산 김일훈 선생은 죽염을 처음 만든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두산백과사전은 죽염을 ‘대나무통에 넣어 아홉 번 구움으로써 몸에 해로운 성분을 없앤 소금’이라고 정의하고, 그 유래에 대해선 ‘1300년 전부터 불가(佛家)에서 민간요법으로 전승되어온 것’ 또는 ‘근대에 인산 김일훈이 새롭게 발명한 것’ 등 2가지 설을 제시하고 있다.

저염 시대에 ‘소금건강론’? ‘죽염 명가’ 인산家의 실체
‘기적과 같은 일들’

김 대표의 글과 광고, 인산가 홈페이지에서 소개하는 인산은 신의(神醫)에 가깝다. 그가 쓴 책 제목도 ‘신약’(神藥·1986년)이다. 김 대표가 말하는 죽염 및 각종 제품의 효능도 이 책과 인산의 사후에 그의 강연 내용을 옮긴 ‘신약본초’(神藥本草·1998년)가 이론적 기반이다. 인산가와 김 대표가 작성한 자료에 나타난 인산의 행적을 요약하면 이러하다.

‘부친, 조부, 증조가 모두 이름난 유학자이자 의학자이고 평생 가난하고 병든 자들을 돌봐 ‘가난한 이들의 의황(醫皇)’이라 칭해졌다. 일제시대 독립운동을 하다 감옥에 갇혔으나 탈출해 백두산, 묘향산 등지에서 우리나라 자연물의 약리작용을 연구하는 한편 병자들을 구제했다. 오핵단, 삼보주사와 같은 전설적인 신약을 제조하는 실험에 몰두했다.

‘신약’은 고교를 졸업한 후 불교신문 기자로 있던 김 대표가 인산과 인터뷰한 내용을 책으로 펴낸 것이고, ‘신약본초’는 인산의 강연 녹음을 푼 것이다. 김 대표는 이 책들을 ‘불멸의 명저’라고 칭한다. ‘신약’이 출시되자 몇몇 잡지에서 책 내용과 인산의 행적을 대서특필했고 난치병 환자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한 잡지는 인산의 자택을 ‘난치병 환자들의 종착역’이라고 표현했다. 1986년 6월부터 전국 순회강연을 시작해 1991년 5월까지 30차례에 걸쳐 신약과 신방(神方·신의 처방)이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김 대표는 인산의학 4월호에 ‘의사들이 모두 병을 고친다고 부산하지만 병의 뿌리를 뽑는 이는 거의 없다. 병이 나은 것처럼 보이지만 일시적인 효과일 뿐이다. 인산 선생은 동서양을 통틀어 전무후무한 상의(上醫)였다. 전 세계 의료진이 못 고친다고 결론 내린 환자들을 살려내는 기적과 같은 일들을 펼쳤다’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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