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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률·권태균의 오지기행

노릇노릇 산수유꽃 봄바람에 살랑살랑

경기 양평군 내리마을

  • 글·김동률 | 서강대 MOT대학원 교수 yule@empas.com 사진·권태균 | 사진작가 photocivic@naver.com

노릇노릇 산수유꽃 봄바람에 살랑살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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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릇노릇 산수유꽃 봄바람에 살랑살랑

양평 주읍리 산수유.

청소년 시절, 국어 교과서의 현대시에 등장하는 열매 중 도대체 상상이 되지 않는 것이 있었다. 이름도 묘한 열매가 오랜 세월 동안 한 번도 잊히지 않은 채 가슴이 저리게 남아 있다. 나는 지금도 해마다 봄이 되면 늘 궁금해지지만 정작 이 열매를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산수유 열매는 가슴이 짠해지는 시 속에 등장한다.

산수유에 담긴 父情

빠알간 숯불이 피고, 외로이 늙으신 할머니가 애처로이 잦아드는 어린 목숨을 지키고 계시었다. / 이윽고 눈 속을 아버지가 약을 가지고 돌아오시었다. / 아, 아버지가 눈을 헤치고 따오신 그 붉은 산수유 열매. / 나는 한 마리 어린 짐승, 젊은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에 열로 상기한 볼을 말없이 부비는 것이었다. / 이따금 뒷문을 눈이 치고 있었다. / 그날 밤이 어쩌면 성탄제의 밤이었을지도 모른다. / 어느새 나도 그때의 아버지만큼 나이를 먹었다. / 옛것이라곤 거의 찾아볼 길 없는 성탄제 가까운 도시에는 이제 반가운 그 옛날의 것이 내리는데, 서러운 서른 살, 나의 이마에 불현듯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을 느끼는 것은, 눈 속에 따오신 산수유 붉은 알알이 아직도 내 혈액 속에 녹아 흐르는 까닭일까.

이쯤 되면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며 자식을 키워본 이 땅의 어머니, 아버지의 코끝이 이미 찡해지리라. 김종길의 ‘성탄제’라는 시다. 그러나 대저 도시 사람은 물론이고 시골 사람조차 산수유 열매를 아는 이는 드물다. 이 나무는 은행나무나 뽕나무같이 한반도 곳곳에 서식하지는 않는다. 이상하게 특정 지역에만 주로 자라 우리 눈에는 익숙지 않다.

이런 산수유가 유명해지는 데는 김종길의 시가 아마 한몫을 했을 것이다. 최근엔 상업광고 문안도 조금 기여하지 않았을까. “남자한테 참 좋은데, 어떻게 표현할 방법이 없네”라는, 산수유를 원료로 만든 건강식품 광고 말이다.

그러나 일각에선 ‘산수유 열매가 이뇨작용에 효능이 있긴 하지만, 광고가 주장하는 남자의 정력과는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다’고 본다. 산수유가 이 광고로 인해 오해를 받고 있다는 게, 옆에서 열심히 셔터를 눌러 대던 권태균 선생의 분노다. 속물적(?) 남성들을 제외하고 정작 산수유가 대중에게 유명해진 것은 봄날 몇몇 마을이 펼치는 산수유 축제 행사 때문이리라.

그래서 산수유 마을을 찾아보기로 했다. 반도 남쪽에 산수유 축제로 유명한 마을이 서너 곳 있다. 지리산이라는 어머니 같은 큰 존재를 곁에 둔 덕분에 전남 구례 산수유가 봄의 전령사쯤으로 가장 유명하다. 이어 경기도 양평 일대가 손꼽힌다. 양평군 개군면과 여주군 이포나루 부근의 외딴 골짜기 마을들이 그곳인데 특히 서울 사람들에게 친숙하다.

노릇노릇 산수유꽃 봄바람에 살랑살랑

대파 모종 심기에 나선 마을 여인네들.

산수유 축제로 이름을 날리는 양평 개군면과 강 건너 여주 이포읍 일대는 조선시대엔 물산의 왕래가 잦아 상당히 번화했던 곳이다. 이포나루에서 황포돛배를 타고 남한강 상류로 거슬러 오르자면 여주, 충주, 탄금대를 거쳐 문경새재에 닿았다. 하류 쪽으로는 양평, 양수리, 서울 마포를 지나 서해로 빠져 나간다. 따라서 조선시대의 이곳은 요즈음으로 치면 고속도로 교차로쯤 된다고나 할까.

남한강의 중간쯤 되는 이 일대는 산수유 꽃으로 노랗게 물들어 있었다. 산수유 꽃은 개나리, 진달래, 자귀나무, 동백나무처럼 꽃이 먼저 핀 뒤 지고 나면 잎이 돋아나는 이른 봄에 피는 꽃나무의 특징을 고스란히 지니고 있다. 개군면의 골짜기 마을들은 산수유 축제라는 이름 아래 서울 사람들의 눈길을 끌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곳곳에 내걸어놓은 울긋불긋한 플래카드가 봄바람에 펄럭인다. 서울과 가까운 경기도 땅이지만 젊은 사람들 찾기가 쉽지 않다. 봄기운이 완연한 마을에서 허리 굽은 노인들의 검은 얼굴빛이 노란 산수유 꽃과 묘한 대조를 이룬다.

양평 땅은 겨울 혹한으로 뉴스에 가끔 이름을 내민다. 남한강을 끼고 있는 까닭에 맥주, 소주병이 쩍쩍 갈라지는 영하 30도의 추위가 이곳에서는 낯설지 않다. 그러나 지금처럼 봄이 되면 야트막한 산허리는 황금빛 물감을 뿌려놓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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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김동률 | 서강대 MOT대학원 교수 yule@empas.com 사진·권태균 | 사진작가 photocivic@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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