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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었다고 생각될 때

  • 김원곤│서울대병원 흉부외과 교수

    입력2013-06-19 13:2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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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늦었다고 생각될 때

    김원곤 교수가 지난해 발간한 육체미 화보집에 실린 사진. 육체미 가꾸기 외에 술병 미니어처 수집과 외국어 학습을 취미로 즐기는 김 교수는 지적 노익장의 가뭄 현상을 안타까워하면서 “나이를 의식해 지레 겁먹지 말고 긍정적인 마음가짐으로 노익장을 발휘할 수 있는 새로운 일에 도전해보라”고 적극 권한다.

    하늘의 명을 헤아린다는 지천명(知天命)에 이르러서였을까. 우리 나이로 50세가 되던 2003년부터 우연한 계기로 일본어를 배우기 시작해 중국어(2005년), 프랑스어(2006년), 스페인어(2007년)를 공부하는 향학열을 뒤늦게 불태웠다. 이후 ‘50대에 시작한 4개 외국어 도전기’라는 책을 내면서 도전이 내 삶의 새로운 활력소가 됐음을 새삼 깨달았다.

    2011년 봄부터 1년간은 신HSK6급(중국어), JLPT N1(일본어), DELF B1(프랑스어), DELE B2(스페인어) 시험에 응시해 모두 합격하는 기쁨을 맛봤다. 최근에는 네이버 검색 창에 프랑스어, 스페인어, 중국어, 외국어 공부법 등의 단어를 치면 인명으로는 유일하게 내 이름이 연관 검색어로 뜨는 영광(?)까지 누리게 됐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이제는 내가 다니는 학원에도 개인 신상이 알려져 야간 수업 시간에도 졸거나 거드름을 피우기는커녕 질문을 던질 때조차 멍청해 보이지 않으려고 애쓰는 불편함을 감내하고 있다. 그렇다고 마냥 힘든 것만은 아니다. 예를 들어 지금 듣고 있는 중국어 강좌의 경우 수강생이 4명뿐인데 나를 제외한 3명이 모두 중국에서 수년간 거주한 경험을 가진 중학생이다. 이 나이에 그들과 한 교실에서 수업한다는 자체가 무척 흐뭇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여러 학원을 다니다보니 내 또래거나 나보다 연장자인 수강생을 이따금 만난다. 나 자신도 적지 않은 나이에 어학 공부에 매진했지만 그분들을 볼 때마다 ‘대단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저마다 그 나이에 공부를 하는 나름대로의 동기가 있겠지만 어떤 이유이든 간에 쉽지 않은 길을 자청했음은 분명하다.

    이른바 ‘60세 청년, 100세 장수’ 시대를 맞이하면서 20~30년 전만 해도 보기 드물던 노익장의 활약이 여러 분야에서 나타나고 있다. 철인 3종 경기나 마라톤 대회에서 완주하거나 젊은이 못지않은 근육미를 자랑하는 노인도 종종 만난다.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이렇게 육체적이고 외형적인 측면에서 나이보다 젊게 사는 노인이 많아졌음에도 어학 공부 등 머리를 쓰는 분야에서 노익장을 과시하는 이는 드물다는 것이다. 이런 ‘지적 노익장’의 가뭄 현상을 두고 여러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인간의 유전적 특성과도 연관 지어볼 수 있다.

    우리가 몸을 움직이는 데 관여하는 유전자들은 원초적으로 내재된 가장 본능적이고 자연스러운 것이다. 하지만 머리를 써서 애써 외우고 공부하는 데 필요한 유전자들은 인류의 진화와 더불어 뒤늦게 합류한 후차적인 것이다. 이 때문에 공부와 관련된 유전자들은 그만큼 우리에게 부자연스럽게 느껴질 수밖에 없고, 때가 되면 우리에게서 쉽게 이탈되는 것이다.

    이 같은 현상은 특히 암기력의 급격한 저하를 야기하는데, 문제는 어학 공부를 할 때 암기력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사실 어학 공부에는 오랜 인생의 경륜이나 깊은 사색의 힘이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한다. 바로 이것이 오늘날 도처에서 목격되는 수많은 ‘꽃중년’과 ‘청년 노인’들이 정작 어학 공부만은 ‘이렇게 늦은 나이에 공부라니…’ 하면서 지레 포기하고 마는 중요한 이유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를 때다’라는 격언을 되새겨보자.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매사에 미리 준비하는 태도의 중요성을 강조한 격언이지만, ‘망양보뢰(亡羊補牢)’라는 표현에 담긴 속뜻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망양보뢰는 직역하면 ‘양을 잃고 우리를 고치다’라는 말로, 요즘에 와서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와 비슷한 뜻으로 쓰이고 있지만 원래는 ‘양을 잃고 나서 우리를 고쳐도 결코 늦지 않다’는 의미다.

    이 말은 중국 고전 ‘전국책(戰國策)’에서 유래했다. 옛날 전국시대에 초(楚)나라 대부 장신(莊辛)이 방탕한 양왕에게 정사에 노력할 것을 충언했는데 왕이 매우 화를 내자 조(趙)나라로 몸을 피했다. 그 후 진나라가 초나라를 침공하자 양왕은 어쩔 수 없이 망명하는 처지에 놓인다. 그제야 그는 과거 장신의 충고가 옳았다는 것을 깨닫고 장신을 불러 ‘이제 어떻게 해야 좋은가?’라고 묻는다. 그러자 장신이 대답한다. “토끼를 보고 나서 사냥개를 불러도 늦지 않고, 양을 잃은 뒤 우리를 고쳐도 늦지 않습니다(見兎而顧犬, 亡羊而補牢). 초나라에는 아직도 수천 리 땅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늦었다’라는 말을 놓고도 ‘늦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를 때다’와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상반된 시각이나 ‘망양보뢰’와 같은 다른 해석이 가능한 이유는 무엇일까.

    동일 사안에 대한 해석의 양면성은 ‘반이 빈 잔과 반이 찬 잔(glass half empty or half full)’의 논쟁에서 더욱 극명히 나타난다. 이런 인식의 차이는 어떤 일을 할 때 긍정적이면서 낙관적인 태도를 가진 경우와 부정적이면서 비관적인 태도를 가진 경우를 구별하는 훌륭한 지표가 되기도 한다. 두 견해 가운데 어느 쪽이 더 바람직한지는 더 설명할 필요가 없을 터. 이순신 장군이 명량해전에서 “아직도 12척의 배가 남아 있다”는 말로 부하들의 사기를 북돋워 일본의 배 133척을 물리친 일화를 굳이 거론하지 않더라도, ‘잔에 물이 아직 반이나 차 있다’라든지 ‘늦었다고 생각될 때가 가장 빠를 때다’와 같은 낙관적인 사고방식이 그렇지 못한 사고방식보다 어학 공부를 포함한 우리 실생활에 훨씬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렇다고 해서 ‘잔이 반이나 비어 있다’는 인식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을 결코 잊어서도 안 된다. 아무리 자신이 낙관적으로 마음을 다잡더라도 늦었다는 객관적인 사실이 변하는 것은 아니다. 잔에 물이 반이 있다는 것은 가득 찬 것보다 물의 양이 적듯이, 노인은 어떤 일을 하더라도 자신의 마음가짐과 상관없이 젊은이에 비해 늦은 게 사실이다. 이러한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면 중요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더 늦기 전에 지금부터라도 남은 시간을 헛되이 보내서는 안 된다’는 깨달음 말이다.

    늦었다고 생각될 때
    김원곤

    1954년 경남 마산 출생

    서울대 의대 졸업, 동 대학원 석·박사(흉부외과학)

    저서 : ‘50대에 시작한 4개 외국어 도전기’ ‘Dr. 미니어처의 아는 만큼 맛있는 술’ 등

    現 서울대병원 흉부외과 교수


    이 글을 읽는 동안 만일 ‘이미 늦었다’고 생각한 이가 있다면 ‘아직 잔이 반이나 차 있다’는 야멸친 도전정신과 함께 ‘벌써 잔이 반이나 비었다’는 위기의식을 함께 느끼면서 더 늙기 전에 노익장을 발휘할 수 있는 새로운 일에 도전하기를 적극 권한다. ‘인생은 짧지만 명예롭고 건강하게 살기에는 충분하다’고 설파한 고대 로마의 철학자 키케로의 말처럼 포도주가 오래됐다고 해서 반드시 모두 맛없게 시어지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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