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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수의 힐링 healing 필링 feeling

‘깊이의 공간’이 꿈틀대는 도심 속 힐링캠프

오래된 성당

  • 정윤수│문화평론가 prague@naver.com

‘깊이의 공간’이 꿈틀대는 도심 속 힐링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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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주교인도 아니고 그 무슨 종교도 갖지 못한 자로서 이 한반도의 크고 작은 종교 건물을 통해 어떤 마음의 위로를 받는다고 하면 필시 그것은 해당 종교의 교리와는 전혀 무관한 일이지만, 그래도 그러한 공간이 교리의 가르침과는 무관하게 혹은 그에 반해 세속에서 거칠게 살아가던 사람에게 한순간이나마 성찰과 위로를 건넨다면 그것만큼 그 종교 공간이 갖는 각별한 의미는 달리 없을 것이다.
‘깊이의 공간’이 꿈틀대는 도심 속 힐링캠프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

더위를 잠깐 피하려고 강화도에 갔다. 돌아오는 길이 꽉 막혀 때 이른 더위를 이기기 위해 차의 에어컨을 틀 수밖에 없었다. 강화도에 미안한 얘기지만, 언제나 강화도는 가까우면서도 먼 곳처럼 여겨진다.

아무래도 분단의 공간 지리학 때문일 것이다. 분단된 지 언제이며 또한 통일을 염원한 지 언제이던가. 돌이켜 생각해보면 강화도로서는 억울한 일이 아닐 수 없는데, 서울 도심지에서 생활하는 사람에게 강화도와 춘천의 거리를 물어보면 마음의 거리는 실제와 다르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서울에서 직선거리로 강화도는 40㎞ 남짓이고 춘천은 그 갑절에 가까운 70㎞가 넘는데, 마음의 거리는 경춘선의 풍경이 훨씬 가깝다. 북쪽의 도시 연천이나 철원은 더 아득하다. 서울과 이 두 곳의 거리는 70㎞ 남짓이지만 그 갑절이 되는 대전이나 안면도, 충주나 평창은 업무와 피서로 인해 훨씬 더 가까운 듯 여겨진다. 분단으로 인한 군사적 이미지가 강화도나 철원 같은 산자수명하고 역사문화가 흘러넘치는 지역을 멀고 아득한 곳으로 여겨지게 했다.



1906년 건립한 한옥 성당

‘깊이의 공간’이 꿈틀대는 도심 속 힐링캠프

강화도 온수리성당.

그래도 주말이면 강화도는 차량으로 붐빈다. 귀갓길 정체에 시달리기는 했지만, 어쨌든 나도 때 이른 무더위를 잠시 잊기 위해 강화도에 이르는 국도를 내달렸다. 원래 계획은 초지대교를 건너 우익이든 좌익이든 꺾어 지르려고 했으나 꽉 막힌 김포와 대곶의 국도를 벗어났다는 안도감에 그만 직진으로 서두르다보니 전등사 입구를 거쳐 온수리까지 들어가고 말았다.

길은 원래 그런 법이다. 긴 여정이든 짧은 산책이든 그렇게 가게 된 데에는 우주의 운행에 버금가는 어떤 비밀이 있다. 이곳 온수리로 내처 달려오게 된 까닭이 어딘가 있을 터이므로 우선 한갓진 곳에 차를 버리고, 잠시 걸어보자. 그런 생각이 절반쯤 담배를 태웠을 때 떠올랐다. 그래서 그렇게 하기로 했다.

마침 차를 세운 곳은 온수리의 끄트머리였다. 차에서 내려보니, 마치 저 유럽의 작은 도시에서나 볼 수 있는 근엄한 성채 혹은 수도원 같은 건물이 보였다. 아하! 그제야 생각이 났다. 강화도는 성공회의 땅이다.

구한말, 황해를 거쳐 내습해 온 대영제국의 행렬 사이에 선교사들이 있었다. 그들은 인천으로 들어와 기운을 살폈고 강화도에 뿌리를 내렸다. 강화도를 세거지로 한 유력한 집안이 성공회를 받아들였고 신자가 됨으로써 지금까지 강화도는 낮은 자리로 헌신하는 성공회의 종교 기풍이 배게 되었다. 1930년 이곳 길상면 온수리의 성공회 신자 집안에서 태어나 평생을 가난한 사람을 위해 헌신한 김성수 주교 같은 분이 강화도의 대표적 인물이다. 그러한 물리적 유산이 강화읍에 있는 성공회 성당이고 또한 이곳 온수리의 성공회 성당이다. 언덕을 우회해 온수리성당으로 올라가본다.

온수리성당은 1906년 건립된 한옥이다. 이 성당의 주보성인(主保聖人)은 성 안드레아. 그래서 성 안드레아 성당이라고도 한다. 정면 3칸, 측면 9칸의 이 한옥 성당은 2003년 10월 27일 인천시 유형문화재 52호로 재(再)지정된 중요한 공간이다. 한옥 지붕의 용마루 양쪽으로 십자가 장식이 있고 지붕 양쪽 끄트머리의 합각 벽면에도 십자가 장식이 새겨져 있지만, 그러한 장식 요소를 빼놓고 보면 옛 지방 관청의 형태다.

그래도 이 소읍의 오랜 유산으로 그 언덕과 그 나무와 그 건물이 자연스럽다. 조금 전 차에서 내리면서 보았던 건물은 신축 성당으로 장대하고 우람한 기운으로 이 정족산의 한 언덕을 압도하고 있지만, 그래도 잔디 마당의 대각선에 위치한 옛 성당 건물의 대칭으로서만 의미를 갖는다. 세월은 흘렀지만 시간은 소멸되지 않은 것이다.

강화도에서 귀가하면서 잠시 들른 김포성당 또한 고졸하면서도 반드시 기억해야 할 만한 소중한 곳이다. 이 일대는 신도시 개발 붐으로 인해 아파트가 새로 서고 길도 새로 나고 마트도 새로 생기고 심지어 교회며 포교당이며 성당도 다 새로 지은 것 일색인데, 그래도 그 한쪽에 김포성당의 옛 본당 같은 건물이 남아 있어 마을 전체의 테마파크화를 방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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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수│문화평론가 pragu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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