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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률·권태균의 오지기행

작약은 낯설어도 여름은 깊어간다

경북 의성군 양지리 일대

  • 글·김동률|서강대 MOT대학원 교수 yule@empas.com|사진·권태균|사진작가 photocivic@naver.com

작약은 낯설어도 여름은 깊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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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약은 낯설어도 여름은 깊어간다
그제 5월 고향집의 오래된 싱크대를 바꿨다. 지난 설날 선심 쓰듯 한 설거지가 계기가 됐다. 우연히 접한 싱크대는 낡고 물이 새는 등 남루했다. 내친김에 부엌 식탁도 바꾸고 화장실의 양변기와 세면기도 그 좋다는 ‘아메리칸 스탠다드’ 브랜드로 교체했다.

여든이 가까우신 부모님, 특히 어머니의 반대는 완강했다. 살면 얼마나 더 살겠느냐며 마다하시는 것을 거의 우격다짐으로 밀어붙였다. 공사가 끝난 뒤 서울로 돌아오려고 집을 나서는 일요일 오후, 고향집 뜨락에 무더기로 핀 꽃을 발견했다. 바빴던 공사 중에는 미처 보지 못했던 무척 탐스러운 꽃들이다. 어머니가 알려주기 전에는 그 꽃이 작약꽃인 줄 몰랐다.

가장 동양적인 꽃

작약꽃을 보신 적이 있는가. 작약은 영어로 ‘피어니’(paeony 또는 peony)다. 모란과 비슷해 선뜻 구별하기가 힘들다. 영어 이름도 모란과 같은 것으로 봐서 서양인들도 제대로 구별하지 못했나보다. 기성세대가 ‘피어리스 피어니’라는 화장품 브랜드 정도로 기억하는 영어 꽃 이름이다.

작약은 산삼처럼 오랜 세월 동안 피기와 지기를 거듭한다. 보통 13~15년을 살다 스스로 말라 죽는 묘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꽃도 아름답지만 뿌리는 월경통· 무월경 같은 부인과 질환 약재로 유용하다. 중국에서는 진(晉)나라와 명(明)나라 때 이미 재배됐으며 그 역사는 모란보다 앞선다고 한다.

한국과 중국 일부에서 분포하는 작약은 가장 동양적인 꽃이기도 하다. 고향집 뜰 앞에서 만난 작약은 화려한 자줏빛의 묘한 색감과 풍성한 초록잎 등 간단히 표현하기 어려운 그 무엇을 지니고 있었다. 그래서 사진을 찍는 권태균 선생이 작약꽃이 만발한 오지로 가자고 말을 꺼내자 마음이 고향의 부모님께 향하는 기분으로 내내 설레ㅆ다.

작약은 낯설고 드물다. 장미는 어디에든 널려 있다. 섬마을 등 해변 백사장에만 피는 흔치 않던 해당화조차 요즈음엔 곧잘 눈에 띈다. 하지만 정작 작약꽃은 접하기 어렵다. 모란이야 이미 김영랑 시인의 시 ‘모란이 피기까지는’ 덕에 ‘국민꽃’이 된 지 오래다.

“꽃피는 동백섬에 봄이 왔건만, 형제 떠난 부산항에 갈매기만 슬피 우네”로 시작하는 가왕(歌王) 조용필 오빠의 데뷔곡 ‘돌아와요 부산항에’로 동백꽃 또한 한국인에게 익숙하다. 실체는 몰라도 당연히 아는 것처럼 여기는 꽃이 모란이고 동백이다. 그래서 오지랖 넓은 팔방미인 조영남까지 ‘모란 동백’을 노래하지 않았던가.

반면 작약은 모란보다 훨씬 기품 있지만 그 쉽지 않은 발음만큼이나 여전히 외롭고 낯설다. 작약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 가봐야 할 곳이 있다. 경북 의성군 사곡면 양지리, 신감리 일대 작약 마을이다. 의성군은 안동과 청송, 상주 등과 접하고 있는 경북의 중심으로 1개 읍과 17개 면을 거느린 제법 규모가 큰 군이다. 너른 들판이 있어 일찍부터 번창한 안계와는 대조적으로 이름이 의미하듯 사곡면은 골짜기에 위치한 외딴 마을이다. 이 존재감 없는 사곡에서 작약꽃 향기가 초여름 바람에 날린다. 10여 년 전만 하더라도 면 마을 대부분이 약재용 작약 재배로 성가를 올렸다. 하지만 값싼 중국산이 밀려오는 바람에 대부분 사라졌다가 최근에 다시 재배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중국산 약재가 중금속에 오염됐다는 얘기에 조금씩 찾는 사람이 늘고 있다는 게 뙤약볕에 들깨 모종을 손질하던 이학선 할아버지(78)의 설명이다.

작약은 낯설어도 여름은 깊어간다

작약은 뿌리가 약재로 쓰이고 꽃은 비싼 값에 팔린다.

‘일해백리’ 마늘 세상

할아버지는 이곳이 고향이 아니다. 본디 대구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나 나이 들어 자식들 눈치 보기도 그렇고 해서 할머니를 요양원에 입원시킨 뒤 남은 재산을 몽땅 털어 이곳에서 400여 평의 밭과 폐농가를 구입해 홀로 산 지가 10년이 훌쩍 지났다고 한다. 젊어서는 구멍가게 등 안 해본 것이 없었다는 할아버지의 손등 주름에는 외로움과 간난의 역사가 깊이 파여 있다.

“사람들하고 잡담하는 것보다 흙하고 노는 것이 훨씬 재미있다”는 할아버지는 연 소출이 참깨 1가마다. 하지만 “나 혼자 생활하기에는 부족하지 않다”고 한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작약꽃을 재배하지는 않는다. 약재로 쓰이는 작약은 대개 4~5년은 자라야 하는데 그때까지 살 수 있을지 자신이 없기 때문이란다. 할아버지의 무심한 넋두리에 맘이 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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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김동률|서강대 MOT대학원 교수 yule@empas.com|사진·권태균|사진작가 photocivic@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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