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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폰스 무하 展

아르누보 거장, 체코의 심장

알폰스 무하 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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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폰스 무하 展

Poster for ‘Gismonda’, 1894

대중예술에서 예술성과 상업성은 성격이 판이한 형제 같은 존재다. 함께 어울리기 쉽지 않지만, 함께 존재할 때 대중예술은 성공했다는 평가를 듣는다. 대중예술가는 예술성이냐, 상업성이냐를 놓고 번민하거나 예술을 상업으로, 상업을 예술로 보이게 하기 위해 오늘도 애를 쓴다.

프랑스 파리의 벨 에포크(La Belle Epoque·19세기 말~20세기 초 풍요와 평화를 누리던 시기) 시절, 일찌감치 예술성과 상업성을 동시에 거머쥔 드문 이가 나왔으니, 바로 체코 출신의 알폰스 무하(Alphonse Mucha·1860~1939)다. 무하는 순정만화 속에서나 나올 법한 스타일리시한 여인들이 화려한 꽃과 자연에 둘러싸인 몽환적인 그림으로 ‘무하 스타일’을 탄생시켰으며 오늘날 아르누보(Art Nouveau)의 정수로 평가받는다.

‘무하 스타일’에 열광한 이들은 비단 귀족에 그치지 않고 일반 대중까지 폭이 넓었다고 한다. 사실 무하가 이름을 얻게 된 것도 광고 포스터라는 대중 장르 덕분이다. 1894년 당시 최고의 스타였던 사라 베르나르가 출연하는 ‘지스몬다(Gismonda)’의 포스터를 그려 일약 최고의 포스터 예술가로 떠올랐고,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의 각종 프로젝트에 참여해 명성을 쌓았다. 이후 그는 포스터, 회화, 일러스트레이션, 디자인, 조각, 건축 등 다양한 분야에서 맹활약했다.

무하의 개인사도 흥미롭다. 가난한 가정형편 탓에 제대로 학교에 다니지 못하던 소년 시절 그는 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선술집에서 초상화 그리는 일을 했고, 이때 자신이 그림에 재능이 있음을 알게 됐다고 한다. 그러나 프라하미술학교로부터 재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입학 허가를 받지 못한다. 오스트리아 빈 등지에서 변변찮은 일자리를 전전하다 우연히 한 귀족의 눈에 띄어 그로부터 재정적인 후원을 받아 밀라노에서 제대로 된 미술교육을 받는다.

무하가 지금까지도 사랑받는 것은 비단 예술성과 상업성을 동시에 거머쥐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오스트리아가 통치하던 지금의 체코 땅에서 태어난 그는 나이 오십에 고향으로 돌아가 슬라브 민족의 독립, 강대국의 위협 없이 약소민족이 더불어 사는 세상을 염원하는 작품 활동을 펼친다. 20점의 거대한 캔버스에 제작한 ‘슬라브 서사시’(The Slav Epic·1911~1928)가 이 시절의 작품이다. 한편 그는 요즘 유행하는 기업과 예술의 협업을 한 세기 앞서 실천하기도 했다. 미국 회사와 자기 이름을 딴 비누를 출시하는가 하면, 프랑스 파리의 보석가게를 디자인했다. 요즘도 그의 작품을 활용한 와인 레이블이 종종 출시되곤 한다.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7월 11일부터 두 달간 알폰스 무하를 국내에 소개하는 대규모 기획전시 ‘알폰스 무하 : 아르누보와 유토피아展’이 열린다. 무하의 손자가 설립한 무하재단의 적극적인 노력 덕분에 포스터, 드로잉, 유화, 장식미술, 서적, 사진 등 235점을 한자리에 모을 수 있었다고 한다.

●일시|7월 11일~9월 22일 ●장소|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3층(서울 서초구 서초동 700번지) ●관람료|성인 1만2000원, 중·고등학생 1만 원, 초등학생 8000원 ●문의|1666-27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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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ng of Bohemia,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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